초기불교, 불타 열반 후 100년까지 역사
초기불교를 연구한다는 개념은 가능해도

초기불교가 현대 존재한다 주장은 불가능
과도한 천착과 정당성 부여 또 다른 오류

우리가 사는 세상 부처님 계신 시대 아닌
지금 이곳 현재라는 사실 제대로 직시해야

자현스님

남방불교를 폄하하는 말에 소승불교라고 칭하는 것이 있다. 소승불교는 대승에서 부파불교를 낮춰 부르는 말이다. 모든 종교전통에는 자신의 우월함을 강조하는 측면이 존재한다. 때문에 이타주의를 강조한 대승에서는 개인의 수행을 중심으로 하는 부파불교를 소승이라고 비판했던 것이다.

오늘날의 남방불교는 부파불교 중 서북 인도를 거점으로 했던 분별설부가 스리랑카로 전파되면서 시작된다. 이런 점에서 남방불교 역시 소승불교에 포함되는 것은 맞다. 그러나 소승이라는 말에 폄하의 의미가 존재한다는 점에서, 오늘날 이런 용어는 지양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런데 최근 들어서는 남방불교를 초기불교로 이해하는 분들도 존재한다. 그러나 초기불교는 부처님이 열반하신 후 100년까지를 지칭하는 불교사적인 표현이라는 점에서, 이는 타당하지 않다. 초기불교보다 후에 발생하는 분별설부를 초기불교라고 하는 것은 이성계의 조선을 고조선이라고 주장하는 것처럼 어이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또 초기불교는 분명히 존재했던 역사이다. 그러나 초기불교는 현재에 존재할 수 없다. 마치 고구려나 백제가 오늘날 존재할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다만 과거의 고구려나 백제에 대한 현대적인 연구가 가능할 뿐이다. 이런 점에서 초기불교를 연구한다는 개념은 가능해도 초기불교가 현대에 존재한다는 주장은 불가능하다.

또 불교에서 가장 오래된 문헌인 <숫타니파타>와 <법구경>, 그리고 <장로게·장로니게>와 율장의 <건도부> 등도 모두 기원 전후에 기록된 것이니 초기불교의 원자료는 아니다. 이것보다 변형이 심한 <아함경>은 더 말할 나위도 없다. 이런 상황이니, 이런 문헌을 본다고 해서 초기불교를 공부한다는 주장도 성립되지 않는다. 이는 고려 중기에 찬술된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를 가지고, 삼국시대의 역사를 공부하는 것과 같은 양상이기 때문이다.

676년 신라가 당나라를 몰아내고 삼국통일을 완수한 후 1145년 <삼국사기>가 완성된다. 양자 사이에는 무려 470년의 세월이 존재하는 셈이다. 부처님께서 열반하신 100년 뒤까지가 초기불교고, 불경이 문자화되는 것은 기원전 1세기에 스리랑카의 알루비하라 사원에서다. 이런 점에서 고층(高層)의 자료를 통한 초기불교의 연구 역시 <삼국사기>의 성립에서와 비슷한 시차를 가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삼국이 사라진 지 500여 년 후에 모아진 자료로 삼국시대를 연구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이겠는가? 이 같은 어려움이 초기불교 연구에도 그대로 존재한다. 또 모든 종교전통에는 오리지널이야말로 좋다는 막연한 판단이 서려있다. 그러나 우리는 발생의 타당성만큼 중요한 것이 시대적 타당성이라는 점을 인지할 필요가 있다.

비행기를 만든 것은 라이트 형제고, 아이폰은 스티브 잡스가 발명했다. 그러나 우리가 현재 사용하는 것은 보잉기와 팀쿡의 아이폰일 뿐이다. 즉 라이트 형제와 잡스에게 상징성은 존재해도 현재적 필연성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이런 점에서 초기불교에 대한 과도한 천착과 정당성 부여는 자칫 또 다른 오류를 만들어낼 개연성이 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부처님이 계시는 시대가 아닌 지금 이곳의 현재이다. 부처님의 진정한 가르침의 의미는 바로 이런 현재를 직시하라는 것이 아닐까!

[불교신문3504호/2019년7월17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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