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유사 읽는 호텔’
소설의 한 대목처럼 우리도
‘가슴 속 꽃가지 여자’ 만들고
모두 품속에 꽃가지 같은
사랑 하나 품고 살면 어떨까

고운기

윤후명 씨의 장편소설 <삼국유사 읽는 호텔>은 아주 특이한 작품이다. 남북교류가 활발하던 시절, 작가는 문인 방문단의 일원으로 평양에 가게 되고, 거기 머무는 3박4일간 밤이면 호텔에서 <삼국유사>를 읽으며, 새삼 발견하는 우리 이야기의 소중함을 음미하는 내용이다. 요컨대 소설로 풀어 읽는 <삼국유사>이다. 

그는 <삼국유사>를 다시 만나, ‘단순히 머리로 읽는 먼 이야기가 아니라 가슴으로 읽는 지금 이야기’임을 깨닫는다. 그러면서 “마침내 허름한 고향집으로 돌아와서 내가 그토록 찾아 헤맨 진실, 행복이 처마 밑에 제비집처럼 붙어있는 걸 발견한 사람인 셈이었다”고 고백하였다. 행복한 만남이 아닐 수 없다. 

그 가운데 그에게 감동적으로 다가오기로는 거타지와 서해 신의 딸이 나오는 장면이다. 신라 진성여왕 때 아찬 양정(良貞)은 왕의 막내아들이다. 당나라에 사신으로 가는데, 후백제의 군사가 뱃길을 막고 있어서, 활 쏘는 병사 50인을 뽑아 지키게 하였다. 거타지는 그 50인의 궁사 가운데 한 사람이다. 배가 곡도(鵠島) 곧 지금의 백령도에 이르자 바람과 파도가 크게 일었다. 양정이 근심스러워 점을 치게 하였다. 신하는 섬 안의 신의 연못에 제사를 지내면 된다고 했다. 

그래서 연못 앞에 제수를 갖추었더니, 연못의 물이 한길 높이나 치솟아 올랐다. 그날 밤 꿈에 한 노인이 양정에게, “순풍이 불게 할 터이니, 활 잘 쏘는 사람 하나를 이 섬 안에 남겨두시오”라고 부탁하는 것이었다. 그 한 사람에 거타지가 선택되었다. 

다음 날 아침, 연못에서 노인이 나타났다. 그는 자신을 서해의 신이라 소개하고, 매일 괴승 하나가 해 뜨는 시각에 하늘에서 내려와 다라니를 암송하며 연못을 세 바퀴 돌면, 주문에 걸린 노인의 식구 모두 물 위로 떠오르고, 그 때 괴승이 한 명씩 잡아먹었다고 하였다. 이제 남기로는 노인 부부와 딸 하나뿐, 활로 쏴서 이 괴승을 잡아 달라 부탁하는 것이었다. 

활쏘기로는 자신 있는 거타지였다. 과연 주문을 외우며 연못을 도는 괴승이 나타나자 거타지는 정확히 활을 쏘았다. 괴승은 곧 늙은 여우로 변해 땅에 떨어져 죽었다. 그러자 노인이 나와 감사하며, 은혜를 갚는 셈으로 자신의 딸을 아내로 삼게 하였다. 불감청(不敢請)이나 고소원(固所願), 거타지는 이런 행운이 자신에게 오나 싶었다.

그런데 참 아름답기는 그 다음 장면이다. 노인은 자기 딸을 꽃가지 하나로 변하게 만들어 거타지의 품속에 넣어 주었다. 집으로 돌아온 거타지가 꽃가지를 꺼내 다시 여자로 변하게 하고 함께 살았음은 물론이다. 

윤후명 씨는 <삼국유사 읽는 호텔>에서 이 대목을 두고 다음과 같이 쓴다. “제비뽑기든 늙은 여우든 문제가 아니었다. 마지막 두 줄에서 나는 그만 눈을 환히 떴다. 덧없는 인생살이를 잊고 나는 가슴 속에 품고 온 꽃가지의 여자를 보는듯 하여, 꽃 한 송이 없는 양각도 호텔일망정 내 가슴속에 꽃가지 하나를 넣어 가지고 있다고 여긴다면 더없는 사랑을 안고 있는 거라고 외치고 싶은 마음이었다.”

소설의 이 한 대목처럼, 우리도 ‘가슴 속에 품고 온 꽃가지의 여자’를 만들고, 모두 품속에 꽃가지 같은 사랑 하나 품고 살면 어떨까. 올 여름에는 백령도에도 한번 가봐야 겠다. 

[불교신문3504호/2019년7월17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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