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민

몇 주 전부터 새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작년에 구상했는데 올들어 본격적으로 인물을 형상화시키고 플롯을 가다듬었다.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려고 뭔가를 끊임없이 소유하려는 우리 현대인들의 모습을 써보려고 한다. 대부분의 소설이 그렇듯이 결국엔 삼독에 빠진 인간의 비애이다. 그나저나 장편분량이라서 걱정이 앞선다. 직장생활하면서 써야하니 얼마나 밀도 있게 쓸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집에 있는 컴퓨터와 USB엔 예전에 썼던 소설들과 플롯들이 저장돼 있다. 심지어 이메일 임시보관함에도 있다. 무슨 중요한 보물이라도 되는 듯이 잊어버리면 큰일이라도 날 것처럼 여기저기에 살뜰히 보관해놓았다. 

책꽂이 한쪽엔 몇 년에 걸쳐 써서 제본까지 해놓은 장편소설도 있다. 그 장편소설을 쓸 땐 탈모까지 생겼다. 처음엔 몰랐다. 미용실에 머리 깎으러 갔더니 주인 여자가 탈모가 있다며 거울을 뒤통수에 대고 보여줬다. 오백 원짜리 동전만한 크기의 허연 탈모자국이 눈에 들어왔다.

나중에 집에 와서 다시 보니 무슨 돼지껍데기가 달라붙은 느낌이었다. 손으로 만지니 비닐표면처럼 만질만질했다. 탈모뿐만 아니라 글을 쓰면 감기를 달고 살고 심한 노역을 한 듯이 몸이 저려오곤 한다. 그렇게 쓴 소설들이지만 단편은 모두 신춘문예 탈락이었고, 장편은 출판사 두 곳에서 거절당했다. 

내 옛 소설들을 들여다보면 함량미달이란 걸 깨닫는다. 그래도 심사가 복잡해지는 건 어쩔 수가 없다. 도대체 내가 뭘 쓰려고 한 것이었을까. 그 당시 청춘을 쏟아 부어 썼던 나는 어디로 가고 있었던 것일까. 사람은 자기가 좇던 것에 오히려 자신이 사로잡혀 옴짝달싹 못하는 존재구나 하는 생각마저 든다. 소설 속 인물들처럼. 

다시 장편소설을 쓰기 시작한 지금, 여러 감정들이 교차한다. 원형탈모쯤은 아무렇지도 않지만 나중에 이 소설도 임시보관함에만 묵혀 있으면 어떡하나. 단편을 쓰면 한 계절이 획 지나가고 장편을 쓰면 한 시절이 훌쩍 지나가는데, 이번 소설을 끝맺을 땐 난 몇 살이 돼 있는 건가.

지금 내게 필요한 것? 신년계획을 A4용지에 적을 때마다 항상 맨 밑에 달았던 한 줄, 그래서 그 신년계획의 각주처럼 보이던 아이작 디네센의 말을 다시 곱씹어본다. ‘아무런 희망도 절망도 없이 매일 조금씩 쓴다.’ 

[불교신문3504호/2019년7월17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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