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멜표류기’를 통해 본 조선불교
장정태 ‘…하멜의 종교체험’ 발표
‘표류기’에서 가장 큰 비중 ‘불교’

“스님들은 관대하고 우리 좋아해”
“어떤 사찰은 스님 5~600명 넘어”
“깨달음을 얻으면 고승으로 추앙"
조선 불교 서구사회에 처음 알려

'하멜표류기'에 실린 삽화의 한 장면.
'하멜표류기'에 실린 삽화의 한 장면.

“우리는 스님들과 사이가 가장 좋았다. 그들은 매우 관대하고 우리를 좋아했으며, 특히 우리가 우리나라나 다른 나라의 풍습을 말해주면 좋아했다.”

조선을 서구에 처음으로 소개한 <하멜표류기>에 실린 불교 관련 내용의 일부이다. 효종 4년(1653) 23살의 나이에 제주 부근에서 난파해 13년간 조선에 머물며 20대~30대를 보낸 네덜란드 선원 하멜(Hendrik Hamel, 1630~1692)이 남긴 <하멜표류기>에 실린 종교적 내용을 조명한 연구 결과가 나왔다.

지난 4일부터 7일까지 열린 ‘제10회 전국해양문화학자대회’에서 장정태 한국민속종교연구소장이 발표한 ‘하멜표류기에서 하멜의 종교체험’이란 주제의 논문이 그것이다. 장정태 소장은 불교, 민간신앙, 하멜 일행의 신앙 생활 등을 중심으로 진행한 연구 성과를 발표했다.
 

하멜과 그 일행의 항로와 제주 도착, 그리고 13년만에 일본 나가사키로 가는 항로를 표시한 지도.
하멜과 그 일행의 항로와 제주 도착, 그리고 13년만에 일본 나가사키로 가는 항로를 표시한 지도.

하멜은 표류기에서 스님들이 외부세계에 대한 깊은 호기심이 있었음을 밝히고 있다. 그는 “만약 그들(스님들)이 원하기만 했다면, 그들은 밤을 새도록 우리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였을 것이다”라고 했다.

하멜과 그의 일행의 눈에 비친 조선 불교의 모습은 어떠했을까? “그들은 착한 일을 한 사람은 보답을 받을 것이며 나쁜 짓을 한 사람은 벌을 받을 것이란 믿음을 가지고 있다. … 조선에는 암자와 사찰이 많았으며 수많은 종파가 있다. 어떤 사찰에는 5~600명 이상의 수도승이 있다.”

조선시대 천민(賤民)으로 고초를 겪은 스님들에 대한 언급도 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승려들은 노비들과 비슷한 취급을 받는다. 승려들은 군역을 면제받지 않으며 대다수가 번갈아 가며 성이나 요새를 경계하는 일에 복무한다.” 그렇지만 하멜은 “만약 그가(스님이) 깨달음을 얻으면 고승으로 추앙된다”면서 수행력이 뛰어난 스님들이 존경 받은 사실도 기록으로 남겼다.
 

'하멜표류기'에 실린 삽화의 한 장면. 하멜과 그 일행들은 네덜란드를 출발해 일본으로 향하다 난파패 표류하다 제주 인근 해안가에 도착했다.
'하멜표류기'에 실린 삽화의 한 장면. 하멜과 그 일행들은 네덜란드를 출발해 일본으로 향하다 난파패 표류하다 제주 인근 해안가에 도착했다.

무려 13년 28일 동안 조선에 억류됐다가 겨우 탈출해 일본에 도착한 하멜과 동료들은 나가사키(長崎) 총독에게 신문 받는 과정에서 조선불교를 언급했다. 그들은 “산에는 많은 사찰과 불상이 있다”면서 “그들은 일도 하고 탁발도 하며 생계를 꾸린다”고 전했다.

또한 “조선인들이 어떤 신앙을 갖고 있고, 개종(改宗)을 요구했는가”라는 질문에는 “그들은 중국인과 똑 같은 신앙을 가지고 있다”면서 “종교를 강요하지 않았고 각자의 생각에 맡긴다”고 답변했다.

장정태 한국민속종교연구소장은 “<하멜표류기>의 분량과 내용면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 것은 불교”라면서 “이는 일행이 평소 승려들과 가깝게 지냈고 그 만큼 불교에 대한 친화력도 높았음을 시사해주고 있다”고 분석했다.

왕실과 성리학자들의 배불(排佛)에도 불구하고 산중에는 크고 작은 사찰이 있었고 스님들의 숫자도 상당수에 이른 조선불교를 보여준다고 했다. 또한 교리와 의식을 비롯해 법도와 불교의 실태를 다각적으로 조명하고 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하멜표류기>는 프랑스, 영국, 독일 등 유럽 각국으로 빠르게 퍼지며 ‘미지의 세계’ 조선에 대한 호기심을 한껏 자극시켰다. 17세기 서구인의 시각에서 조선과 조선불교의 실상을 서양 사회에 최초로 알렸다는 점에서 <하멜표류기>가 더욱 주목받을 것으로 보인다.
 

제주대 등에서 7월4일부터 7일까지 전국해양문화학자대회 참가자들이 ‘이슈 융합 토론’후 기념촬영을 했다.
제주대 등에서 7월4일부터 7일까지 열린 제10회 전국해양문화학자대회 참가자들이 ‘이슈 융합 토론’후 기념촬영을 했다.

한편 제주대와 제주 해안 일대에서 250여 명의 학자가 참석한 가운데 열린 제10회 전국해양문화학자대회에서는 이밖에도 △통일신라시대 울산 항구와 사찰 △경주 분황사탑의 오키나와산 조개 이모가이 △제주 수정사지 출토 청석탑의 제작지 검토 △운주사 석불석탑군에 숨겨진 역사 △혜심과 일연으로 보는 고려대장경 판각지 남해 등 다양한 논문이 발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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