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차 산업혁명에 대한 불교계 관심이 식을 줄을 모른다. 본지에 실린 해인사승가대학 학감 보일스님의 글 ‘제4차 산업혁명과 불교’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화제에 올린다. 승가대학에서 학인을 가르치는 강사의 글이라 세간의 관심이 더 큰 듯 하다. 교수불자연합회도 제4차 산업혁명을 주제로 학술대회를 연다.

지난해는 특히 이 주제에 대해 관심이 뜨거웠다. 본지가 지난해 전문가를 초빙하여 좌담회를 연 것을 비롯 불광미디어, 대한불교진흥원 등 여러 기관에서 학술토론회 강연을 개최했다. 총무원장선거에서 공약으로 제기되기도 했다. 불교계가 한 주제를 놓고 이처럼 뜨거운 반응을 보인 적이 있었나 싶다. 

불교계가 제4차 산업혁명에 전에 없는 관심을 갖고 활발히 연구 토론하는 이유는 과학이 인간에 관한 규정을 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 제4차 산업혁명은 인간 수명을 무한대로 연장시킬 것이라고 과학자들은 주장한다. 병고(病苦)로부터 해방, 죽음의 극복은 질병과 유한한 생명체를 전제로 출발한 종교 기반을 흔들 것이다.

보일스님도 기고에서 “현재 최고의 과학기술로 평가받는 유전자가위 기술을 통해 출생 이전에 유전자 정보를 바꿔서 선천적 질병에 대한 발병 우려를 사전에 차단하는 것이 가능해지고 있다. 이 기술들이 결국 새로운 인공생명을 탄생시키고 기존의 인간 생명에 대한 가치와 존엄성마저 위협하게 된다. 머지않아 인간 개념이 재정립될 필요성도 제기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불교계가 제4차 산업혁명이 가져올 변화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갖고 탐구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그러면 질병으로부터 해방되고 생명이 무한하게 연장되면 모든 번뇌와 고통이 사라지는가? 그렇지 않다는 것이 불교계의 대답이다.

불교는 결코 영원한 생명을 추구하지 않는다. 진정한 행복은 인간을 비롯한 모든 생명이 평화롭게 공존하는데 있다는 것이 불교 가르침이다. 인간이 아무리 무한한 생명을 건강하게 누린다 해도 인간 관계가 파탄나고 사회관계에서 파생되는 문제가 존속하는 한 고통은 사라지지 않는다. 불교는 또 행복이 사후(死後)에 있다거나 원하는 것을 성취함으로써 달성되는 것이 아니라 좋은 인간관계를 통해 찾을 수 있다고 가르친다.

<수타니파타>에 이르길 “최상의 행복은 공덕을 쌓고 바른 서원을 하며, 부모를 섬기고, 처자를 사랑하고 보호하며, 일에 질서가 있어 혼란하지 않고, 보시와 이치에 맞는 행위와 악을 싫어하고 멀리하며, 인내하고 온순하며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데 있다”고 했다. 고요한 마음과 깨끗한 생활, 자비행에서 진정한 행복이 있다는 가르침이다. 보일스님도 기고에서 “공존과 상생을 받아들일 수 있는 ‘자비’라는 마음의 힘이 더욱 중요해질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러므로 제4차 산업혁명에 접어드는 시기에 우리 불자들이 해야 할 일은 부처님 가르침을 충실히 실행하고 있는지 살피는데 있다. 욕심을 버리고 이웃과 더불어 사는 지혜와 자비를 갖추었는가 성찰하는 수행은 과거에도 그랬고 현재도 그러하듯 미래도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차지할 것이다.

[불교신문3503호/2019년7월13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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