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자가 먹고 쓰는 것 오직 道닦기 위함인데…”

종단도 자본주의 경제체제
함께 걸식하고 함께 나누던
부처님 당시 공동체 사라져
탈종단, 선거만연, 종단정치
모두 빈부격차가 만든 폐단

함께 걸식하고 함께 발우를 펴고 공양했던 승가공동체는 적어도 한국의 불교계에서는 볼 수 없다. 자본주의 영향을 받아 빈부격차가 승단에도 깊이 자리했기 때문이다. 사진은 걸식하는 남방의 스님들 모습. 불교신문 자료사진
함께 걸식하고 함께 발우를 펴고 공양했던 승가공동체는 적어도 한국의 불교계에서는 볼 수 없다. 자본주의 영향을 받아 빈부격차가 승단에도 깊이 자리했기 때문이다. 사진은 걸식하는 남방의 스님들 모습. 불교신문 자료사진

함께 걸식하고 함께 나누었던 부처님 당시의 물질 분배 방식은 더 이상 우리 교단에 존재하지 않는다. <사분율> 등의 율장은 보시로 받은 승물이나 심지어 자연에서 얻은 수확물조차 수행 정진하는 승가의 도반들과 함께 나누고 공양해야 한다고 규정한다. 절을 지을 때도 신도가 자신을 위해 지어준다고 해도 도반들과 함께 하라는 것이 율장의 가르침이다. 

왜냐하면 “시주가 본래 보시한 하나의 털과 한 알의 낱알도 시방세계의 출가한 범부와 성인에게 공양하여 그들로 하여금 그것을 먹고 쓰도록 하여 밤낮으로 도를 닦게 하기 위한 것이지 속인(俗人)에게 공양하려고 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율장에만 존재한다. 차라리 약육강식의 정글에 가깝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약육강식의 정글?

돈이 많은 스님과 그렇지 않은 스님의 생활은 모든 면에서 많은 차이가 난다. 부처님 당시의 공동생산 공동 분배는 현실에 맞지도 않고 바라지도 않지만 적어도 생활은 비슷해야 하는데 우리 종단은 삭발염의 외형만 같고 삶은 천양지차다. 

1990년대 한 중앙종회의장 스님은 공개석상에서 이런 하소연을 했다. “내가 품위 유지비로 들어가는 돈만 한 달에 천만원이다.” 취재를 하던 기자들은 깜짝 놀랐다. 스님은 뒤이어 “종회의장을 맡고 보니 절에 가더라도 그냥 나올 수 없다. 한 돈 100만원은 놓고 와야 한다. 원로스님을 뵈러가도 빈손으로 갈 수 없고, 각종 경조사도 빠질 수 없다. 종회의장이니 당연히 성의표시 하겠지라고 생각한다”며 거액의 ‘품위 유지비’가 필요한 배경을 설명했다. 

지금보다 물가가 훨씬 낮았던 1990년대 이야기다. 지난해 국회 상임위원장에게 지급되는 판공비가 사회 문제가 됐을 때 나왔던 해명과 거의 같다. 취재하던 기자들은 종회의장이 아니라 정치인의 모습을 떠올렸다. 

특정 스님이 소유한 재산을 파악한 자료가 없어 부의 편중이 얼마나 심한지 수치로 확인된 것은 없다. 간혹 스님 입적 후 속가와 상좌간의 분쟁으로 인해 통장의 금액 수치가 드러나기도 한다. 30여년 전 승재가를 막론하고 많은 존경을 받던 스님이 입적 후 남긴 재산 때문에 속가 조카들과 상좌들 사이에 분쟁이 벌어져 충격을 던졌었다. 조카 중에 목사가 있어 그 충격은 더 컸다. 결국 많은 재산이 조카인 목사에게 넘어갔다. 

사회 민주화와 종단개혁에 헌신했던 한 스님도 사후(死後)에 수십억원이 들어 있는 통장이 나와 종단 안팎에 큰 충격을 던졌다. 종단은 이후 스님들 사후 재산을 종단에 위탁한다는 서약서를 쓰게 했다. 지난해 입적한 한 원로 스님도 예금 통장을 놓고 문도와 조카 사이에 분쟁이 일어났다. 타종단에서는 외국에 사는 입양한 아들이 예금을 전부 갖고 나갔는데 그 중에는 다른 스님들과 함께 모은 돈까지 들어있어 낭패를 겪은 일이 있었다. 

그러나 개인 명의 금융재산이라고 해서 개인 소유로 단정할 수 없다. 스님들은 돈을 모아 불사 등 사중에 회향하거나 종단에 시주한다. 상좌들이 주는 약값 차비 신도들이 주는 법문비를 모아 종단 불사나 사중에 내놓는 스님들이 많다. 종정을 지낸 월하스님은 1990년대 초반 조금 씩 모은 돈 1억원 가량을 위안부 할머니들 집을 짓는데 내놓았다. 그 돈을 기반으로 위안부 할머니 보금자리를 만들었으니 바로 경기도 광주의 나눔의 집이다. 호국 유족에게 나오는 보훈비를 모아 불사에 시주하는 스님도 있다. 그러므로 예금을 갖고 있다고 해서 무소유 정신을 위배했다고 단정짓는 것은 맞지 않다. 

수십억 예금 통장의 정체

문제는 부의 편중으로 인한 다수의 빈곤과 종단 혼란이다. 대다수 스님들은 기본 생활에 필요한 돈이 부족할 정도로 가난하다. 얼마나 가난할까? 보통 경제 수준을 가늠할 때 거주상태, 생활비, 의료비 등을 살핀다. 송광사가 몇 해 전 재적승을 상대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재적 스님의 83.5%가 노후(65세 이후) 대비책이 없었다. 송광사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선원, 강원에서 정진하는 69%의 스님이 해제나 방학 때 따로 거처할 곳이 없었다. 도반 절이나 속가 심지어 시골 폐가에 머무는 스님도 있다. 세속에서 말하는 ‘집도 절도 없는’ 스님들이 많은 것이다. 

의료비는 더 심각하다. 스님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설문에 따르면 평상시 수행생활에 필요한 최소한의 용돈이 부족하고, 예기치 않은 질병이나 사고를 맞았을 때는 대부분이 대책이 없는 무방비 상태다. 그래서 종단의 승려복지회는 스님들에게 일정액의 국민연금과 의료비를 지원한다. 

그렇다 해도 거주공간 문제는 당장 해결하기 어렵다. 거주문제는 승가공동체를 훼손하는 가장 큰 주범이다. 특히 나이가 들어 선원생활도 어렵고 거동도 불편한 노스님들은 기거할 사찰이 없으면 큰 낭패를 겪는다. 이러한 스님들 모두 국가 차원에서 보면 보호 대상자다. 최소한의 생계 유지도 힘든 최하층인 것이다. 

절이 부족한 것이 아니다. 그 반대로 절이 남아 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절은 남아 도는데 막상 스님들 갈 곳이 없는 불균형이 일어나는 원인은 여러가지다. 문중이 다르면 갈 수 없고, 절은 크지만 신도수가 적어 여러 명의 스님이 살 수 없는 경우도 있다. 대중 생활에 필수인 헌신 배려 양보 등의 성품이 부족해 스스로 고립을 자초하는 스님도 있다. 

가장 큰 이유는 승가공동체 문화의 파괴다. 대중이 어울려 함께 사는 공동체 문화가 사라지면서 사찰은 있지만 살 절은 부족한 불균형이 일어난 것이다. 그래서 오늘도 한 편에서는 주지 보낼 스님이 없어 빈 절이 생기고 다른 한편에서는 혼자 사는 토굴이 늘어나는 기현상이 벌어진다.  

최소한의 거주처도 없는 스님들이 많은 반면 많은 사찰을 소유하거나 오랫동안 유지하는 스님도 있다. 모 교구본사 종무실의 한 책임자는 “교구 차원에서 노스님들이 거주할 공간을 만들었는데 일부 스님 중에는 사찰도 있고 개인 토굴도 있어 굳이 방사가 필요하지 않고 1년에 한 두 차례 오시는데도 방을 비워둔다”고 말했다. 

10여개의 사찰을 소유한 스님도, 교구에서 막강한 권한을 행사해 사실상 인사를 주도하는 스님도 있다. 몇 해 전 영남 지역의 한 교구장 스님은 중진 스님들이 오랫동안 장악하고 있는 공찰을 원칙대로 처리하려다 엄청난 저항에 부딪혔다. 이 스님이 재임에 실패한 이유가 중진 스님들이 차지한 사찰을 건드렸기 때문이라는 소문이 파다했다. 

그렇다고 중진 스님들의 사찰 소유욕을 비판할 수 없다. 종단이 종도의 일생을 책임지지 않고 교구도 외면하는 현실에서 기댈 곳은 사찰밖에 없는데 이를 내놓으라는 것은 일반인으로 치면 해고와 다름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평생을 일군 사찰에서 밀려나 외로운 처지로 전락한 노스님들이 적지 않다. 선학원 보문종 등 조계종 승적을 가진 스님들이 다른 법인에 사찰을 귀속하거나 별도 종단을 만든 원인도 최소한의 보루인 사찰을 지키려는 고육책이었다. 종단이 소속 스님을 보호하기는커녕 애써 일궈놓은 사찰을 빼앗는 약육강식의 정글에서 힘없는 비구니 스님들은 안전한 곳을 찾아 떠난 것이다. 

사찰이탈이 늘어나자 종단은 탈종단화로 규정하고 강력한 금지책을 발동했다. 1994년 종단개혁 후 탈종단화를 막기 위해 사설사암을 갖고 등록하지 않으면 사찰 주지 등 종단 공직에 취임할 수 없게 하고 선거권 피선거권을 박탈하는 강경책을 도입했다. 그러나 원인은 승가공동체 붕괴인데 그 결과인 탈종단화만 막으려니 문제가 생기고 해결은 되지 않는 악순환이 벌어진다. 

거의 모든 스님들이 위험에 노출

이러한 현상은 빈부격차가 돈 없고 힘없는 스님 뿐만 아니라 사찰 주지나 종단 공직을 지낸 스님들의 안전까지 위협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절대 변하지 않는 강고한 권력을 보유한 극소수 스님을 뺀 모든 스님이 ‘원하지 않는 상태’로 전락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종단정치의 화수분으로 작용한다. 

종책모임이라는 ‘계파’를 형성하고 종회의원에 집착하는 배경도 따지고 들면 ‘현재 상태’를 유지하는데 필요한 힘을 갖기 위해서다. 교구에서부터 시작하는 ‘정치행위’의 종착점은 ‘안전’이다. 일반인으로 치면 안전하며 오랫동안 유지되는 좋은 직장과 같다. 승가공동체의 붕괴는 이처럼 거의 모든 스님들의 생존과 안전을 위협한다. 

빈부격차는 결국 종단 혼란으로 이어진다. 한 중앙종회의원 스님은 “출마하는 스님들 입장에서는 무투표 당선이 가장 좋다. 선거는 불교적이지도 않고 후유증도 심각하다. 가장 큰 문제는 금권선거다. 신도들과 사회로부터 얼마나 많은 비난을 받았나. 선거는 종단 망하는 길이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종단은 ‘돈 선거’ 오명에서 벗어나기 위해 선거법에 금권선거 시 10년간의 피선거권을 제약하는 강력한 장치를 두었다. 또한 많은 교구가 선거 대신 각 문중이 순서대로 주지와 종회의원을 맡도록 규약을 정했다. 교계 안팎에서 이같은 변화를 칭송한다. 

그런데 반대하는 스님들도 있다. 이 스님들은 선거는 돈 없는 수좌나 스님들이 돈 많은 스님들로부터 대우받을 수 있는 유일한 기회로 본다. 한 재가종무원은 “그 스님들 입장에서 보면 한 곳에 쏠린 돈이 승단 안에 골고루 돌 유일한 기회다. 분배라는 측면에서 보면 선거 없는 조용한 선거는 힘 있고 돈 있는 몇몇 스님들만 더 돈과 권력을 집중하는, 경제적으로는 독과점을 더 강화하는 잘못된 문화로 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일부러 선거를 유도하는 스님들이 나타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교구본사 출마 준비를 하는 한 스님은 “당선될 가능성이 전혀 없는데도 출마를 강행하는 스님이 있다. 자리나 돈을 요구하기 위해서라는 것을 다들 안다”고 말했다.

해제비 논란은 잘못

해제비를 많이 주는 사찰에 수좌들이 몰린다는 지적도 마찬가지다. 몸이 아파 선원생활을 접고 사찰주지를 맡은 한 스님은 “밖에서는 해제비 많은 선원에 수좌들이 몰린다고 비판하지만 수좌들 복지나 의료혜택 준비가 전혀 되지 않은 상태서 그나마 기댈 데라고는 해제비밖에 없는데…”라고 말했다. 한 수좌스님도 “몇 백만원의 해제비 갖고 3개월 산철 나기 어렵다. 그래서 해제했는데도 안 나가려는 스님들이 있다. 결제하면 돈 한 푼 안들이고 먹고 자고 할 수 있으니 그 마음을 이해한다”고 말했다. 

이러한 종단 내 비승가적 비불교적 모습은 모두 빈부격차가 원인이다. 승단의 빈부격차를 해소하지 않는 한 승가공동체는 계속 기이한 형태로 움직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빈부격차가 일어난 원인과 배경은 무엇일까? 발단을 따라가면 해결책도 보이지 않을까?

[불교신문3503호/2019년7월13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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