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전법과 교화에도 ‘인권’이란 렌즈를 끼워 봅니다”

국가인권위는 사회의 저울
차별받는 삶의 애환에 공감
수행자로서 진정한 자비심
끊임없이 묻고 고민한 시간

지난 7월4일 서울 원교사에서 스님을 만났다. 3년여간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위원직을 수행하면서 겪은 일들을 가감 없이 쏟아낸 스님은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책상 위 자료들을 가리키며, “이젠 밤새워 회의 준비를 하지 않아도 되니 섭섭하기보다 시원하다”면서 아이처럼 웃었다. 사진=김형주 기자.
지난 7월4일 서울 원교사에서 스님을 만났다. 3년여간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위원직을 수행하면서 겪은 일들을 가감 없이 쏟아낸 스님은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책상 위 자료들을 가리키며, “이젠 밤새워 회의 준비를 하지 않아도 되니 섭섭하기보다 시원하다”면서 아이처럼 웃었다. 김형주 기자 cooljoo@ibulgyo.com

30년간 동국대에서 대승불교교학을 지도해온 한국불교 비구니 강백 계환스님이 지난 20166월부터 활동해온 국가인권위원회(이하 인권위)’ 비상임위원직을 원만히 수행하고 지난 78일자로 3년의 임기를 마감했다. 스님은 1990년부터 동국대 교수로 재직하며 학생들과 호흡하면서 겪은 다양한 경험과 교수로서 학식과 지혜를 토대로 인권위 회의에 임했다. 법조계 출신이 아니어서 일반 국민의 입장을 대변하는데 더욱 진력한 스님이다. 조계종 중앙종회에서 비구니 최초 교육분과위원장을 맡고 전국비구니회 운영위원장을 지내면서 쌓인 내공 역시 국가인권위원회 활동에 적잖은 영향을 끼쳤다. 국가인권위원회 비상임위원직을 마무리하면서 그간의 소회를 들어봤다.

-벌써 3년이 되었다. 비구니 스님으로서 첫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소임을 맡았을 때 어떤 느낌이었는가.

처음에는 가벼운 마음이었다. 왜냐하면 비상임위원이었기에 단순히 명예직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가보니 완전 부담스런 곳에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구나 제3NAP(국가인권정책기본계획) 권고의 건이 2016년에 가자마자 다루어져서 솔직히 어리둥절했다.

박사논문 심사보다 더 많은 수백 페이지에 이르는 방대한 자료를 미리 검토해야 하고, 몇 시간이나 걸리는 회의마다 안건에 따른 의견을 제시해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인권위원 활동을 통해 참으로 많은 것을 배웠다는 것이다.”

-일본유학은 물론 한평생 학자로서 후학을 양성해왔다. 하지만 인권이란 화두는 스님에게 다소 생소하게 다가왔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사실 그동안 인권이라는 단어조차 생소하게 느끼며 살아오다가 이제는 모든 일에 인권이라는 렌즈를 하나 더해서 살펴보는 습관이 들게 되었다. 이제 어떤 말이나 행동도 혹시 인권침해는 아닐까를 염두에 두게 된다.”

-잊을 수 없는 사건이 많았을 것 같다.

안건 내용은 공개안건과 비공개안건으로 나누는데, 비공개안건은 언급할 수가 없다. 그야말로 프라이버시에 걸리는 인권침해가 되기 때문이다. 다만 공개안건은 언론사 기자들도 참관이 가능하다. 특히 기억에 남는 것은 사형제도 존폐에 대한 공개안건을 다룰 때의 일이다.

사실 출가자의 입장이라면 당연히 사형제도 폐지를 찬성해야할 것이다. 불교는 불살생의 생명윤리와 연기론적 세계관을 통해 생명의 외경심과 평등성을 설파하고 있는 바, 사형제를 포함해서 어떠한 형태라도 바람직하지 않다. 그러나 흉악한 범죄로 인해 사망한 희생자와 유가족들, 국민이 입게 된 상처는 어떻게 존중받고, 치유받을 수 있는가. 국내 미집행 사형수 현황을 살펴보면 대부분 강도살인 내지 존속살해이다. 이런 범죄자를 인권적 측면으로만 바라보고 보호해야할 것인지, 피해자와 유가족의 트라우마는 누가 책임질 것인가 고민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사형제는 인간존엄과 사회적 책임을 생각하게 하는 안타까운 제도이지만 출가자 신분으로서 어떻게 보면 이율배반적으로 저 혼자사형제도 폐지에 대한 반대의견을 주장했던 것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인권위에 들어오는 사안을 살펴보면 요즘 사회 화두가 무엇인지 보이지 않았을까.

아주 다양해서 어느 한두 가지 사안이 아니다. 경찰 관련 안건을 비롯하여 군인권, 장애차별, 아동인권, 성차별, 인권침해, 성소수자차별, 스포츠인권 등의 사안이 끊임없이 들어오고, 직권조사를 시행하는 경우도 있다.”

-다른 위원들에게는 비구니 스님이 다소 낯설었을 텐데, 회의과정에서 입장 차이를 어떻게 해결해나갔는지.

그곳에서 종교인이라고 특별대우를 한다면 그것 자체가 인권침해에 해당한다.(웃음) 다만 법대출신이 아니라 처음에는 인권이란 용어부터 생소했다. 그러면서도 자주 다른 의견을 제시해 다른 위원님들을 힘들게 한 것 같아서 마음 한편 미안스럽기도 하다.

전체 위원이 11명이므로 얼굴 익히기가 쉬운 편인데, 조사관 직원들은 200명이 넘기 때문에 분간하기 어렵다. 그래서 소위원회별로 점심공양을 하며 모르는 것도 묻고, 친근감도 키우려고 다소 노력한 편이다.”
 

지난 7월4일 서울 원교사에서 계환스님을 만나 3년 간의 국가인권위원회 비상임위원직을 마무리하면서 느낀 소회를 들어봤다. 사진=김형주 기자.
지난 7월4일 서울 원교사에서 계환스님을 만나 3년 간의 국가인권위원회 비상임위원직을 마무리하면서 느낀 소회를 들어봤다. 김형주 기자 cooljoo@ibulgyo.com

-인권문제에 출가자로서는 어떠한 역할을 할 수 있었는지 궁금하다.

인권위원이기 이전에 중생의 아픔과 고통을 함께하는 종교인으로서 무엇이 참된 정의이고 자비인가에 대해 고민했고, 또한 수많은 이들의 애환과 슬픔과 고통을 목격했다. 그들이 눈물 흘릴 때 같이 울고 싶은 적도 있었고, 사회정의와 평등, 차별없는 세상을 만들려는 많은 이들의 용기에 가슴 뭉클했던 순간도 많았다.”

-국가인권위 활동을 3년간 수행하시면서 느끼신 점이라면.

지금 이 순간도 고립된 채 외롭게 싸우고 있는 많은 이들이 있다. 모두가 말하고 있지만 아무도 들어주지 않은 시대에 누군가의 삶과 아픔을 온전히 들어줄 수 있는 사람들이 바로 인권위에 몸담은 분들이라 생각한다. 그들과 3년간 함께 그 길을 걸었다는 자부심도 갖고 있다.”

-스님은 이 시대 불교지도자로서 다양한 역할을 해오셨다. 그동안 살아오시면서 느낀 소감이 있다면 듣고 싶다.

지난 30년 동안 종교인인 동시에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육자로서 살아왔다. 사실 그렇게 오랫동안 그 일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새로운 뭔가를 배우고 공부하는 일을 참 좋아했기 때문인 것 같다. 상아탑이라고 불리는 대학에서 운 좋게 오랫동안 지식의 탑을 쌓아 왔다. 새로운 책을 읽고 새로운 지성인들을 만나고 학생들에게 그것을 전하는 재미에 살았다. 동국대학교에서 불교대 학장과 중앙도서관장을 맡아 지식의 전당을 이끄는 역할도 하였고, 대학원장을 하면서 CEO 최고위과정도 운영해보았다.

그렇게 탑을 쌓으며 살다보니 요즘엔 이런 생각이 든다. 탑이라는 게 꼭 위로만 쌓는 게 아니구나. 아래로도 탑을 쌓을 수 있구나. 교수로서 눈에 보이는 지적인 성과가 위로 쌓은 탑이었다면 수행자로서, 종교인으로서의 깊은 성찰과 참회. 인생 공부야말로 아래로 쌓는 탑이 아닐까. 그렇다면 나는 위로 쌓는 탑과 아래로 쌓는 탑과의 조율을 얼마나 잘 해왔는가. 그런 성찰과 반성을 해보면서 알게 모르게 상처 준적은 없는지 돌아보게 된다.”

-마지막으로 인권위에 당부하고 싶은 부분이 있다면.

이 날까지 살아오면서, 한 가지 몸으로 깨달은 것이 있다면 세상에는 보이지 않는 저울이 있다는 것이다. 정의와 불의, 자비와 폭력, 가진 자와 못가진 자, 양 극단 사이에서 우리 사회는 나름의 균형을 잡기 위해 늘 흔들려왔다. 그러다 달이 차면 기울듯, 균형이 깨지고 고통과 불의가 만연해질 때, 보이지 않는 저울은 소리없이, 그러나 반드시 그 반대방향으로 움직이기 시작한다. 그 시간의 차이만 있을 뿐, 누구도 그 저울 위에 서있지 않은 이가 없다.

인권위가 하는 일 역시, 우리 사회의 균형을 잡는 저울의 역할이다. 그러니 끊임없이 흔들리면서 올바른 답을 찾아나가는 것이 당연하다. 경우에 따라 힘들고 고민스러운 순간, 흔들리는 순간이 앞으로도 많을 것이다. 그 역시 인권위의 사명이므로 용기있게 그 길을 걸어가길 바랄 뿐이다.”

[불교신문3503호/2019년7월13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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