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초전지 체험관의 스님 비하 글
불교신문 칼럼 통해 바로잡아 다행
불교 관련 잘못된 해설용어 허다해
관심 갖고 바로잡는 노력 지속해야

 

정운스님

불교신문 3491호 6월1일자 ‘수미산정’에 ‘굳이 삭발한 중으로 표현하는 심사는?’이라는 제목으로 글을 실었다. 그 내용의 요지는 구미시설공단이 운영하는 신라불교초전지 체험관에 전시돼 있는 소개글 중 스님을 칭하는 명칭이 잘못 되었음을 지적한 글이었다. 

그 글을 신문에 싣기 전에 먼저 이 문제를 논의했던 직지사 소임자 스님에게 전달하고 신라불교초전지 운영 사무실에도 내용을 보냈다. 기관을 책하기 보다 잘못된 내용을 바로 잡는데 의도가 있기 때문에 사전에 상의하고 알려드린 것이다. 그렇게 하는 것이 또 수행자답고 불교다운 문제 해결법이라고 생각했다. 그 정도 문제제기에서 그치지 않고 신문에 글을 실은 까닭은 문제를 바라보는 기준을 공유하고 확산하여 관례로 삼고 싶어서였다. 

개인이 문제를 제기하여 시정하면 시간이 지나 잊게 되고 하나의 특수한 일로 끝난다. 시정을 하든 그렇지 않든 문제제기 의도를 이해하고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 노력하기 보다 별난 사람으로 취급하고 귀찮아한다.

신라불교초전지 체험관이 스님을 비하하는 표현을 사용한 것은 분명 해당 기관의 특수한 사례이지만 그 안에는 불교와 스님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않고 관행으로 처리하는 구태의연한 모습과 이를 문제삼지 않는 우리 내부의 나태함이 들어있다. 하나의 사례를 통해 무엇이 잘못인지를 드러내고 어떻게 해결해야하는지를 공론의 장으로 끌어냄으로써 밖으로 향해서는 더 세심한 관심을 촉구하고 안으로는 각성을 불러일으키고 싶었다.

글이 나가고 며칠 뒤 직지사 소임자 스님으로부터 한통의 문자를 받았다. 구미 시설공단 측에서 지적한 문구를 수정하기로 했다는 소식이었다. 반가웠다. 그래도 구미시설공단 담당자들이 긍정적으로 받아들여 답을 주니 문제를 제기한 당사자로서 고마운 일이 아닐 수가 없다. 

‘삭발한 중’에서 ‘삭발한 스님‘ 으로 문구가 교체되는 것이 뭐 그리 대단한 일인가 할지 모르지만, 용어는 일관성 있고 바른 이미지를 심어줘야 한다. 학술적으로나 문화적으로 매우 중요한 일이다. 함축돼 있는 뜻의 무게도 많이 다르다. 그 당시 스토리텔링(storytelling)을 주관한 사람이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를 알게 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는 앞으로도 자주 관련 일을 할 것이다. 

우리 주변에는 바로잡고 시정해야 할 부분이 참 많다. 정확한 내용을 몰라서 넘어가는 경우도 있고, 전문가들이 해놓은 것을 긁어 부스럼 만들 필요가 있을까하는 생각에 알면서 넘기는 경우도 허다하다. 무관심이 굳어지면 잘못이 정답으로 둔갑한다. 그래서 아닌 것은 아니라고 해야 한다. 

최근 사회적 논란으로 등장한 ‘비밀의 정원’은 문화재를 둘러싼 논란이라는 점에서 문화재를 가장 많이 소장한 불교로서는 더 관심 가는 사안이다. 문화재청은 홈페이지에서 ‘명승 제35호 성락원’이 “조선 철종 때 이조판서를 지낸 심상응의 별장이었으나 의친왕 이강(1877~1955)이 35년간 별궁으로 사용했던 곳”이라고 설명한다. 그런데 얼마 전 사실이 아니라는 반론이 제기됐다. 소유자 측의 일방 주장이 제대로 된 고증 없이 사실인 것처럼 둔갑됐다는 것이다.

흔적만 남아 있으면 사적이라 하고 살아있는 경관은 명승이라 한다. 1992년 사적 지정 당시의 오류를 명승으로 재지정할 때 바로잡을 수 있었던 기회를 놓쳤기 때문에 이런 시비가 일어난 것이다. 우리 불교 문화재가 같은 오류를 범하지 않으려면 맞고 틀린 것에 대해 제대로 연구하고 관심 가지며 시정하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아야 한다.

[불교신문3502호/2019년7월10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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