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만은 달랐다 아무리
열심히 해도 도착점이 없으니
마음속에 쌓이는 건 미련뿐…

그러나 이 아침, 나는
유년의 철길을 떠올리면서
다시 한 번 용기를 가져본다
“나도 갈 수 있어!”

 

안혜숙

사르트르는 모든 문학작품은 호소라고 했다. 쓴다는 것은 언어라는 수단으로 기도하듯 드러내는 것이라는, 그의 말을 나 또한 공감한다. 내가 글을 쓰는 이유도 내가 추구하는 내 소견을 누군가와 공유하고 싶은 욕심이 있기 때문이다. 사실 문학을 모든 예술의 근간으로 꼽는 이유는 문학이라는 말이 내포하는 의미가 대단히 포괄적이며, 그 속성 자체가 가변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언어를 매개물로 사용하기 때문에 상상력의 소산이라고도 하지 않는가. 그 상상력이 현실의 제약과 구속으로부터 벗어날 때, 우리는 내일의 새로운 미래를 꿈꿀 수 있는 것이다.

미래를 꿈꿀 수 있다는 것, 그 이상 바람직한 삶이 어디 있겠는가, 그래서 그 꿈을 문학이라는 미명으로 앞세워 노력하고 있는 나의 삶을 돌아보면, 그 노력이 내게는 짝사랑이고 해바라기일 뿐이다. 그래서 내린 내 결단력은 30년을 써온 내 글들을 겨우 반년에 걸쳐 몽땅 정리한답시고 모두 소각시켜 버렸다. 내 꿈은 그저 꿈에 불과하다는 결론으로 막을 내렸던 것이다.

그런데 이미 중독자가 돼버린 나의 글쓰기는 멈출 수가 없었다. 다시 글을 쓰지 않으면 죽을 것 같았다. 그래서 겨우 묘안이라고 찾아낸 게 매미였다. 새롭게 태어나기 위해 허물을 벗는 매미처럼 새롭게 변신하리라는 욕망으로 안달을 하다가 이상한 증상을 일으켰다. 책상머리에만 앉으면 손이나 팔뚝을 긁어서 상처를 냈다. 그 버릇을 고치겠다고 두 손을 깍지 끼고 앉아있다 보니 글은커녕 헛된 망상만 머릿속에 가득 차더니 근래에는 불면증까지 생겨 깨어있는 시간이 더 많다.

어제 밤에는 비가 내려 다행이다 싶었는데, 그 빗소리에 정신이 팔려 방문을 열고 무작정 밖으로 나갔다가 비를 맞고서야 정신이 들었다, 다시 방으로 뛰어들었지만 자꾸만 화가 나서 잠을 이루지 못했다. 온 밤을 우두커니 앉아 새웠으니 정신이 온전할 리 만무하지만, 그래도 맑은 공기라도 마시자고 산책길에 나섰다. 다행히 비는 멈췄지만 안개가 자욱해서 한 발자국도 뗄 수가 없었다. 어둠 같은 안개를 보면서 가슴이 먹먹했는데, 불현듯 떠오르는 유년의 한 자락에 눈이 번쩍 뜨였다. 그 순간, 무조건 앞으로 나가보라는 명령이 떨어진 듯, 거침없는 걸음이 마당을 가로 질러 대문을 나섰다. 

여섯 살이었던가, 엄마는 내 손을 잡고 낯선 뚝방길로 들어서면서 걸음을 빨리했다. 조금 있으면 기차가 지나간다고, 그 전에 철길을 건너자던 엄마가 갑자기 나를 붙잡아 세우더니, 철길 옆 나무 그늘로 데려가 앉을 자리를 마련해 주고는 엄마 혼자 철길을 성큼성큼 건너서 마을 어귀로 사라져버렸다.

들판에 혼자 앉아 엄마를 기다리던 나는 점점 어두워지는 하늘을 보면서 왈칵 겁이 났다. 빨리 엄마를 찾아야 된다는 생각에 철길을 향해 뛰어갔으나, 철로에 올라서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내 심장은 오그라들기만 했다. 다시 발밑을 내려다보고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그런데도 무조건 철로를 건너야 된다는 생각이 들어 눈을 떴다. 동시에 한 발을 조심스럽게 들어 한 발자국 옮기고, 또 한 발자국 내딛다가. 엄마의 걸음걸이를 떠올리면서 성큼성큼을 입속으로 읊조렸다. 그리고 큰소리로 외쳤다. “나도 갈 수 있어!” 그리고 해 낼 수 있다고.

입 밖으로 내뱉은 내 말은 나에게 큰 용기가 되었고, 그날의 결단력은 내 삶의 지침이 되어 아무리 어려운 일이 닥쳐도 주저함이 없었다. 그런데도 문학만은 달랐다. 아무리 열심히 해도 도착점이 없으니 마음속에 쌓이는 건 미련뿐이었다. 그러나 이 아침, 나는 유년의 철길을 떠올리면서 다시 한 번 용기를 가져본다. 눈물을 흘렸던 감동과 희열과 그때의 성취감이 내 앞을 가리는 안개를 서서히 밀어내고, 내 걸음은 어느새 하늘 문을 여는 붉은 햇덩이를 따라가고 있었다.

[불교신문3502호/2019년7월10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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