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흔드는 것은 결국 나 자신임을 알게 되다

#1

나는 일주문을 지나 한참을 걸어야 불이문이나 천왕문을 만날 수 있는 사찰을 좋아한다. 절집에 도착했다고 바로 소란스런 마음이 가라앉는 것은 아니라서 일주문을 지나 숲의 소리에 집중하여 걷다 보면 북적였던 가슴이 조금은 누그러진다. 

하늘로 뻗은 나무들과 오랜 시간의 퇴적을 덮고 앉은 부도밭을 지나 텅 빈 공터에 도착하니 내가 가늠할 수 없는 시간과 공간이 만들어낸 숲과 고찰 앞에서 내가 아파하고 조급해하는 많은 문제들과 내가 살아온 시간, 살아갈 시간을 생각하니 웃음이 나왔다. 조급해한다고 이루어지지 않음을 알면서도 그 마음을 버리지 못한다는 것이 우스웠다. 이 산을 내려가 다시 시간이 지나면 이 순간에 느낀 내 시간의 사소함과 부족함을 잊고 또 마음이 바빠지겠지만 잠시라도 작은 나를 큰 내가 되어 바라볼 수 있음에 뿌듯했다.
 

#2

보광루 아래를 통과해 계단을 오르며 곧 눈앞에 펼쳐질 탑과 대웅전의 모습에 두근두근했다. 어느 사찰을 가도 늘 만나는 순간이지만 그 극적인 시간은 늘 기대를 품게 했다. 그래도 아직은 내게 어떤 대상에 대한 기대가 많이 남아 있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았다. 나이가 들어가는 것은 더 이상 놀랄 것도 기대할 것도 없어지는 것이란 생각이 든다.

내가 기대했던 대상이 실은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다는 배신도 덤덤하게 받아들이고, 동화나 소설, 영화에 공감하지도 않고, 내가 사랑하고 아낀 모든 것들이 갑자기 사라질 수 있다는 것에 익숙해진 자신을 발견하는 것이 진짜 늙어버린 자신을 만나는 날이 아닐까? 기대하고, 무너지고, 사랑하고, 이별하고 그렇게 살아가는 생이 아름답지 않을까? 

나를 흔들어대는 세상에서 벗어나고 싶어 여행을 하고 사찰을 찾았지만 나를 흔들고, 넘어뜨리고, 배반한 삶을 인생이 원래 그런 것이라 여기고 타협해 살아왔다면 지금 이 순간에 내가 이 마음을 알아챌 수 있었을까?
 

#3

내가 여행을 떠나며 다짐한 더 이상 흔들리고 싶지 않다는 각오의 모습이 뒤를 돌아보며 얼굴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그것은 아무에게도 무엇에도 무너지지 않는 철옹성 같은 강력한 나를 만드는 일이 아니었다. 늘 기대하며 믿고, 최선을 다해 사랑하고, 무너져도 다시 쌓고 앞으로 나아가는 나를 인정하는 것이었다. 요새와 같은 마음으로 살아간다면 분명 상처받진 않을지 몰라도 성 안에는 홀로 살아야 할 것이다. 

흔들리지 않는 삶은 모두와 어울려 살아가는 세상에서 그 안에 있는 내 모습을 인정하고 스스로 믿는 것임을 알았다. 

배종훈 https://www.facebook.com/jh.bae.963

[불교신문3502호/2019년7월10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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