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어이, 꽃 한 송이는 피워내야 하는 게 인생
기어이, 꽃 한 송이는 피워내야 하는 게 인생
  • 장영섭 기자
  • 승인 2019.07.05 13: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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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문학상 휩쓸며
시단의 중심이 된 불자
부드럽고 순박한 언어로
일상의 깊은 의미 성찰

바람이 불면 바람이 부는 나무가 되지요  

문태준 지음 마음의숲

“시를 쓰려고 할 때마다 나는 이상한 곳에, 알 수 없는 곳에 있게 되는 기분이다. 언어를 처음 배우는 곳에 앉아 있는 것 같고, 또 어느 때에는 세상의 언어를 다 잃어버려 치료를 받는 곳에 앉아있는 것 같다.”

책의 첫머리를 장식하는 ‘유자와 한 알의 시’라는 제목의 에세이 서두다. 서정(抒情)의 솜씨가 매우 탁월하고 독특하다는 것을 초장부터 대번에 알 수 있다. <바람이 불면 바람이 부는 나무가 되지요>는 현시대 한국의 시를 대표하는 문태준 시인이 10년 만에 선보이는 두 번째 산문집이다.

올해 정지용문학상을 비롯해 동서문학상, 노작문학상, 유심작품상, 미당문학상, 소월시문학상, 서정시학작품상, 애지문학상 등 수많은 문학상을 휩쓸면서 스타의 반열에 올랐다. 신간에서는 그가 훌륭한 시를 쓸 수 있었던 마음의 ‘배경’이 드러난다. 10년이라는 세월 동안 느릿하고 고집스러운 집념으로 세심히 보듬어 키워낸 글들을 만나볼 수 있다.

언어들은 전반적으로 부드럽고 순박하다. 빠른 보폭으로 직선의 길을 걷기보다는 느린 걸음으로 에둘러 가는 삶을 이야기한다는 것이 그의 시에 대한 대체적인 품평이다. 저자는 이번 책을 통해 삶의 추억이자 자산이 되었고 시를 만드는 씨앗이 되었던 일상의 여러 생각을 은은한 맛으로 풀어냈다. 인생이라는 풍경을 구성하는 다양한 면면들에서는 저자의 깊은 속내를 한층 풍부하고 세밀하게 들여다볼 수 있다.

어제의 통증과 신열을 오늘의 새로운 탄생으로 받아들이는 일, 일상의 자질구레함 속에서 작지만 단단한 깨달음을 발견하는 일, 자신의 마음자리를 돌아보는 일, 자연과 생명, 혹은 존재와 존재 간의 관계 의미를 성찰하는 일 등 시인 특유의 지극한 시선, 삶의 정수에 닿아 있는 순도 높은 문장들로 가득 채워진 101개의 단상을 엮었다.
 

한국을 대표하는 서정시인으로 부상한 문태준 불교방송 PD가 10년 만에 신작 산문집을 발간했다.
한국을 대표하는 서정시인으로 부상한 문태준 불교방송 PD가 10년 만에 신작 산문집을 발간했다.

문태준 시인은 시인이면서 BBS불교방송 PD로 일하고 있는 불자다. 그래서인지 삶은 고해이지만 그래도 한 송이 연꽃을 우아하게 피워내기 위해 부지런히 정진해야 한다는 인생관이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나무의 성품은 고요하고 견고하고 동요가 없다. 육중한 바위처럼. 무너지지 않는 산처럼. 그런 마음으로 그런 자세로 평생을 산다. “조용하고 슬픈 자세”란 이것을 두고 한 말일 것이다. 세속과 세사는 소란하기 그지없지만 나무는 그것에 상관하지 않는다. 그래서 외롭다. 그러나 외로운 가운데서도 나무는 조용하다. 외로운 시간을 나무는 두려워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것이 나무의 미덕이다(243~244쪽).”

못난 것들이 품은 매력과 힘을 발견하는 데에도 능하다. “말쑥하고 반드러운 모과보다는 그 생김새가 울퉁불퉁한 모과를 더 선호한다. 면이 고르지 않고 들쑥날쑥한, 울퉁불퉁한 모과를 찬탄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에게 모과는 여리고 부드러운 것의 매력을 알게 한다. 백색의 겨울에 이 그윽한 노란빛은 보는 이의 마음을 은근하게 끌어당긴다(180쪽).”

산문집을 읽어가면 마음 한쪽이 시원하가. 번잡한 삶 한가운데로 불어오는 한줄기 시원한 바람 같은 문장들은 자신의 내면에 새로운 풍경들을 가져다준다. 

문태준 시인은 1970년 경북 김천에서 태어났다. 고려대학교 국문과와 동국대학교 대학원 국문과를 졸업했다. 1994년 문예중앙 신인문학상에 시 <처서(處暑)> 외에 9편이 당선되어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수런거리는 뒤란> <맨발> <가재미> <그늘의 발달> <먼 곳> <우리들의 마지막 얼굴> <내가 사모하는 일에 무슨 끝이 있나요> 등이 있다. 존재와 관계의 본질을 현미경처럼 들여다보는 일이 능숙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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