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 로봇에도 불성이 있나요?”

생로병사라는 고통에 대한
기본적 이해가
근본적으로 흔들리고 있다
머지않아 인간 개념의
재정립 필요성도 제기되고

연기법을 핵심교리로 삼는
불교의 다양한 아이디어들이
초연결의 방향을 제어하고
새로운 해석의 여지를 여는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모든 로마인들은 노예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노예와 노예들의 심리가 고대 이탈리아에 흘러넘쳤고 로마인은,
물론 부지불식간이긴 하지만, 내면적으로 노예가 되어 버렸다.
언제나 노예들의 분위기 속에서 생활했기 때문에
무의식적으로 그들의 정신세계에 젖어든 것이다.
이같은 영향으로부터 자신을 방어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 카를 구스타프 융의 <분석심리학 논고> 중에서 

 

보일스님
보일스님

“인공지능 로봇에도 불성이 있나요?” 오래전, 해인사승가대학 학인시절 문득 던졌던 나의 엉뚱한 질문이었다. 이 의문이 ‘4차 산업혁명 시대’라는 시절인연을 만났다. 그리고 다시 내게 화두가 되어 돌아왔다. 이것도 인연이라면 인연이다. 당시에는 그저 호기심에 불과했는데, 지금은 현실이 되어가고 있다. 그 사이에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이제 소박했던 그 질문 하나로 4차 산업혁명 시대의 무게와 전례 없는 변화 속도를 지탱할 순 없을 것이다.

이 이야기는 ‘4차 산업혁명 시대’라는 변화를 향해 던지는 다양한 질문들이다. 이 4차 산업시대를 관통하는 핵심가치는 무엇이며 인공지능을 넘어서 우리가 사유해야 할 것들이 무엇일까 등등에 대한 나름의 대답이다. 이 내용은 해인사승가대학에서 학인 스님들을 상대로 특강을 한 내용을 재정리한 내용이다. 

새로운 시대에 불교를 공부하고 그 변화에 통찰을 제시할 학인 스님들의 날 선 질문을 기대한다. 그렇다고 너무 비장해질 필요는 없다. 경쾌하게 이 시대를 읽어내고 그 변화의 물결을 타면서 즐길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미래는 이미 와 있다. 단지 널리 퍼져있지 않을 뿐이다.” 소설 <뉴로맨서(Neuromancer)>로 유명한 윌리엄 깁슨(William Gibson)의 말이다. 최근 대중매체에서는 제4차 산업혁명에 대한 다양한 정보와 논의가 가히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인공지능, 유전자가위기술, 자율주행 자동차, 가상·증강현실구현 기술, 3D 바이오 프린팅 기술, 블록체인, 사물인터넷 등등의 새롭고 생소한 단어들이 하루가 멀다고 쏟아져 나온다. 그리고 이 단어들이 언급될 때마다 등장하는 공통된 키워드는 ‘4차 산업혁명’이다.

도대체 이 제4차 산업혁명은 무엇이고, 이 말은 어디서 온 것일까. 2016년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에서 클라우스 슈바프(Klaus Schwab)는 ‘4차 산업혁명이 이미 도래하였다’고 하여 이 용어를 처음 언급했다. 

이에 대해 이 개념이 허구에 지나지 않는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았다. 그리고 올해, 2019년의 다보스 포럼 의제가 다시 ‘세계화 4.0: 4차 산업혁명의 시대의 세계화 구조’이다. 이례적으로 같은 주제를 3년 만에 다시 제시한 것이다. 흥미롭다. 세계 경제의 지도자들은 사실상 4차 산업시대에로의 진입을 인정하고 그 영향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 융합과 초연결, 탈경계 

제4차 산업혁명이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글로벌 혁신가로 유명한 닐 거센필드(Neil Gershenfeld)에 따르면 “원자로 이루어진 물질세계, 즉 아톰(ATOM)으로 이루어진 현실 세계를 구성하는 정보의 총량과 인터넷 세계, 즉 비트(BIT)로 이루어진 가상세계를 구성하는 정보의 총량이 대등한 수준 또는 일치하는 세상으로 변화해 가는 것이 4차 산업 시대”라고 정의한다.

이것을 가상과 현실 세계의 융합 또는 ‘O2O(Online to Offline) 융합’이라고도 하며 현실 세계에 물리적으로 실재하는 것과 온라인 공간의 데이터 및 소프트웨어를 실시간으로 통합하는 시스템을 총칭한다.

4차 산업 시대에는 이 ‘O2O 융합’이 보편화할 것이라고 한다. 현대인들이 전통적인 일상, 즉 가족이나 친구들과 대화하고 운동하며 놀러 다니는 시간보다 게임이나 사회관계망 서비스(SNS) 등을 통해 온라인상의 공간에 머무는 시간이 더 늘어나는 추세를 생각해 보면 이해가 될 것도 같다.

사실상 이미 인터넷 공간은 하나의 세계로 인식되고 있다. 가상공간과 현실 공간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것을 넘어서 탈(脫)경계의 수준으로 진입하고 있다. 마치 <장자(莊子)>의 ‘호접지몽(胡蝶之夢)’ 비유처럼 장주가 나비 꿈을 꾼 것인지, 아니면 나비가 장주가 된 꿈을 꾼 것인지 알 수가 없었듯이 꿈과 현실의 구분이 사라진 것과 같은 상즉상입(相卽相入)의 상태인 것이다. 
 

인공지능과 생명공학 기술의 비약적 발전 속에서 인간에 대한 새로운 사유와 성찰이 필요하다. 디지털 프로그램이라는 관점에서 생명체를 이해한다면, 인간은 어떤 위상을 갖게 될까?
인공지능과 생명공학 기술의 비약적 발전 속에서 인간에 대한 새로운 사유와 성찰이 필요하다. 디지털 프로그램이라는 관점에서 생명체를 이해한다면, 인간은 어떤 위상을 갖게 될까?

➲ 인공지능을 넘어서 

예고된 미래라고 하든 우리 곁에 이미 다가온 현재라고 하든 상관없다. 우리가 이 변화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이전의 변화와는 본질적으로 다른 상황들이 전개될 것이다. 전통적인 이해방식으로는 이 변화를 이해하기가 어렵다. 새로운 분석 틀 속에서 새로운 관점이 필요하다. 구체적인 예로서, 생로병사라는 고통에 대한 기본적 이해가 근본적으로 흔들리고 있다. 

급기야 생명공학기술로서 죽음을 정복할 수 있다는 주장까지 등장하고 있다. 예를 들어, 구글은 실제로 인간이 500살까지 사는 프로젝트를 위해 ‘구글벤처스’를 설립했다. 또한 현재 최고의 과학기술로 평가받는 유전자가위 기술을 통해 출생 이전에 유전자 정보를 바꿔서 선천적 질병에 대한 발병 우려를 사전에 차단하는 것이 가능해지고 있다. 이 기술들이 결국 새로운 인공생명을 탄생시키고 기존의 인간 생명에 대한 가치와 존엄성마저 위협하게 된다. 머지않아 인간 개념이 재정립될 필요성도 제기될 것이다.

둘째, 융합과 탈경계, 초연결을 표방하는 4차 산업혁명 시대의 변화양상과 방향성이 불교의 연기법과 상통한다. 인공지능 로봇의 등장과 진화는 인간에 의존하고 있으며 인간 역시 인공지능 로봇에 의존하는 상호 의존하는 관계이다. 인공지능의 문제는 곧 인간의 문제이며 인간의 문제가 바로 인공지능로봇의 문제가 된다. 인간의 편의를 위해 만든 인공지능로봇의 습성과 패턴이 인간들의 생각과 습관에 영향을 주게 될 가능성도 있다. 연기법을 핵심교리로 삼는 불교의 다양한 아이디어들이 초연결의 방향을 제어하고 새로운 해석의 여지를 열어주는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셋째, 이 변화가 인간의 고통으로 귀결될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즉 인공지능과 로봇 기술의 실용화로 인한 대량실업과 인간소외, 정보 접근의 불평등, 양극화 등이 우려된다. 불교는 싯달다 태자의 고통에 대한 응시로부터 시작되었다. 인류의 오랜 전통 중에서 불교만큼 인간의 마음에 대해 주목하고 천착해온 전통도 흔치 않을 것이다. 아비달마구사론과 유식으로 대표되는 마음에 대한 정교하고 치밀한 분석과 체계화는 이 점을 잘 보여준다. 불교의 마음에 대한 고유한 지적 전통이 의미 있는 통찰을 제시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인공지능을 넘어서 마음의 힘과 사유의 힘이 더욱 절실해지는 시대이다. 밤하늘의 불꽃놀이 섬광처럼 터지는 화려한 첨단과학기술의 혁신에만 도취해 시선을 빼앗길 것이 아니다. 그 너머에 그 이면에 어떤 광경이 펼쳐질지 무엇이 요구되는지에 대해 깊은 사유가 필요하다. 결국 인간이다. 그 인간의 마음이고 사유이다.

인간의 이기심과 인공지능을 넘어서 공존과 상생을 받아들일 수 있는 ‘자비’라는 마음의 힘이 더욱 중요해질 것이다. 그리고 인간에 대한 통찰, 오래된 철학적, 종교적 질문들이 새로운 시대에 다시 살아나고 고전들이 새로운 관점에서 새로 읽히면서 새로운 문화 르네상스가 일어날 가능성도 크다. 

특히 공성에 기반한 존재와 현상에 대한 이해를 강조하는 불교적 관점은 이 변화에 유연하면서도 강력한 제어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 
 

필자 보일스님은 해인총림 해인사에서 출가해 해인사승가대학을 졸업하고 서울대 대학원 철학과에서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서울대 대학원 철학과 박사과정에 재학 중이며, 해인사승가대학에서 학감을 맡고 있다. 주요논저로는 ‘인공지능(AI) 챗봇(Chatbot)에 대한 선문답 알고리즘의 데이터’ <한국불교학 84집>(2018) 등이 있다. 

[불교신문3501호/2019년7월6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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