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들 합송방식 3차 결집 거쳐 경전 성립

1~3차 결집 거친 빨리어 암송
기원전 1세기경 ‘문자’ 생기자
스리랑카 알루비하라 승원에서
‘산스크리트어’로 기록돼 전승

이정우

 

Q   부처님 당시에는 문자가 없어서 부처님말씀을 기록하지 못한 것으로 아는데, 그렇다면 부처님말씀은 어떻게 불경(佛經)으로 만들어졌는가?

A   부처님은 기원전 6세기경의 분이기 때문에 당시에는 당연히 문자가 없었던 시대였습니다. 그러므로 35세에 깨달음을 얻어 부처가 된 후 80세에 열반에 드실 때까지 무려 45년간을 인도 전역을 다니며 가르침을 펼치셨지만, 그것들이 다 기록으로 남아 있기를 기대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부처님말씀은 기록되기 전까지 어떻게 전승되어져 왔을까요? 지금의 불경은 과연 부처님말씀이 맞을까요?

불교의 초기에 부처님가르침은 다름 아닌 대중들의 합송(合誦)에 의한 암송의 방법으로 전래되어 왔습니다. 예를 들어, 부처님이 어느 때 어느 나라 어떤 장소에서 누구누구랑 몇 명과 함께 하고 있을 때 누가 이러한 질문을 했는데 부처님은 이러한 말씀을 하셨다고 하는 사실을, 부처님 곁에서 주로 법문을 들었던 제자가 기억을 되살리면, 그 자리에 있었던 제자들이 동의하여 완성되는 방식입니다. 이렇게 추인 받은 내용은 노래처럼 운율에 맞춰 모두가 함께 외우는 것입니다.

여기서 합송이 중요한 것은 개인적 첨삭을 막기 위함입니다. 사실 글보다 합송하여 암기함이 원본신뢰도가 더 높을 수 있습니다. 이러한 방법은 특별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지금도 티베트불교 등 일부 나라의 불교는 수행자들에게 경전을 암송시키는 전통을 유지하고 있고, 이웃종교 일부도 마찬가지입니다. 

부처님 열반 후 채 100일이 지나지 않아 제자들은 부처님이 남긴 말씀들을 제대로 정리할 필요성을 느낍니다. 그래서 맏제자인 마하가섭의 주관 하에 라자가하(왕사성)에서 부처님말씀을 직접 들었던 500비구와 함께 부처님 열반 전까지의 가르침을 기억해 정리합니다. 이것을 불교사에서는 불경의 ‘제1차 결집’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정리된 말씀은 제자들의 머릿속에 합송법으로 암송되어 전해졌습니다.

그 이후 100년 쯤 지나서 또 700여 명 스님들이 바이샬리에 모여 ‘제2차 결집’을 하게 되고, 다시 또 100년이 흘러 부처님 열반 후 200여년 경, 아쇼카라는 대왕이 ‘제3차 결집’을 주도합니다. 아쇼카왕은 심지어 자신의 아들과 딸마저 출가시켜 포교를 위해 스리랑카로 보내는데, 불경을 암송하고 있던 여러 스님들도 함께합니다.

그들이 암송했던 빨리어로 된 부처님말씀이 기원전 1세기경 문자가 생기자 바로 기록되었는데, 그곳이 스리랑카의 알루 승원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문자화 된 빨리어 경전들은 인도 북부에서는 대부분 성스런 종교언어라 여기는 산스크리트어로 바꾸어 기록되기도 하였고, 이 산스크리트 경전이 주로 인접한 중국으로 건너가 한역되어 우리나라에까지 전해지게 된 것입니다.

[불교신문3501호/2019년7월6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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