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으로 가는 화엄경] <68> 입법계품(入法界品)㉑
[행복으로 가는 화엄경] <68> 입법계품(入法界品)㉑
  • 원욱스님 공주 동학사 화엄승가대학원 교수
  • 승인 2019.07.05 16: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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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요술같은 해탈만을 얻었다”

무염족왕은 제7 무착행 선지식
교화법ㆍ중생에게도 집착 없이
다양한 방편바라밀로 행복 전해

 

원욱스님
원욱스님

선재는 보안장자와 이별하고 남쪽을 향해 가면서 선지식의 의미를 생각했다. 보살도의 길과 보살의 행에 대해 질문하면 모두들 항상 기쁜 마음으로 받아주고 보호하며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서 물러가지 않게 해주시는 분이란 사실을 깨달으며 보리심에서 물러나지 않으려 환희심과 청정심, 사모하는 마음 등 열 가지 마음을 내었다. 

선재가 다라당성에서 자신의 아바타인 10만 군졸을 거느리고 나라연 금강좌에 앉아있는 무염족왕을 보았다. 왕은 죄인들을 직접 다스리고 있었는데 소송, 재판, 판결을 통해 형벌을 주고 있었다. 그 형벌의 광경이 너무나 끔직하고 잔인하여 도무지 선지식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도둑, 사기꾼, 살인과 성폭행 등을 하고도 부끄러움이 없는 자들과 삿된 소견을 가진 자, 일생을 사무친 원한으로 복수하는 자와 날마다 질투와 탐욕에 눈이 멀어 나쁜 짓을 일삼았던 자들을 꽁꽁 묶어 10만 군졸이 잡아오면 그들이 저지른 죄에 따라 형벌을 가하고 있었던 것이다. 손발을 자르고, 코를 베거나, 눈을 뽑고 살가죽을 벗기며, 몸을 오리고, 끓는 물에 삶고, 불에 지지고, 감옥에 가두고 하여 중생들의 울부짖는 소리가 소름이 돋을 정도로 끔찍한 지옥이었다.

‘이 사람은 선지식이 아니다. 선지식이 어찌 이럴 수가 있단 말인가? 중생을 이롭게 하기는커녕 중생을 해치는 것은 보살이 아니다. 자비심이라곤 눈곱만큼도 없는 무자비한 왕이다.’ 

선재가 발길을 돌려 떠나려 하자, 공중에서 “보안장자의 말을 기억하라!”는 소리가 들렸다. 탐욕이 많은 이에겐 부정관을 가르치고, 미워하고 성 잘 내는 이는 자비관으로, 어리석음이 많은 이에겐 온갖 법의 모양을 가지고 분별하게 하는 법상관을 가르친다. 모두가 중생을 병에서 건져내기 위한 방편이라는 생각이 들자 정신이 확 들었다.

선재가 무염족왕에게 나아가 보살의 길에서 보살의 수행에 대해 물었다. 왕은 그윽한 눈으로 선재를 바라보더니 선재의 손을 잡고 궁전으로 들어가며 자신의 궁전을 잘 살펴보라고 한다.

조금 전에 악인들에게 형벌을 주던 악독한 행을 하는 왕이 살 수 있는 곳이라 볼 수 없을 만큼 평화롭고 안락한 곳을 보면서 선재는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였다. 무염족왕은 선재의 눈빛을 보고 이렇게 말했다.
 

삽화=손정은
삽화=손정은

“선재야, 너 혹시 아까 본 그 잔인한 악행을 하고도 어찌 이런 곳에 살까 생각하는 건 아니냐? 그런 일은 없다, 나는 ‘보살의 환과 같은 해탈(菩薩如幻解脫)’을 성취해 요술을 잘한다. 나의 국토에 살고 있는 이들은 자비심이 없어서 사람을 죽이고도 악한 마음을 뉘우치지 않고 살다보니 죄업으로 인한 과보의 고통이 극심했다. 내가 아무리 좋은 말로 타일러도 듣지 않으니 나쁜 사람의 모습으로 고통을 주어 두 번 다시 죄를 지으려는 마음이 사라지고 보리심을 일깨우게 하려고 짐짓 요술을 부린 것이다. 내 본래 목적은 그들이 착하게 사는 십선법을 닦아 행복한 여래의 경지에 머물게 하는 것이 목적이니 나는 본래 한 중생도 해친 일이 없다. 내 마음엔 차라리 미래에 무간고를 받을 지언정 잠깐 동안이라도 모기 한 마리 개미 한 마리도 괴롭게 하려는 생각을 낸 적 이 없다. 하물며 사람을 그럴 리가 있겠느냐. 이제 저 사람들을 자세히 보거라.”

이게 웬일인가 조금 전에 봤던 몸이 망가지도록 고통 받던 이들이 온전한 몸으로 즐겁게 수행하는 것이 아닌가. 선재의 놀라며 감동하는 모습을 본 무염족왕이 말했다. “선남자여, 나는 이 요술 같은 해탈만 얻었다, 여기서 남쪽으로 묘강성 대광왕에게 가서 다시 보살의 길에 대해 묻도록 하여라.”

무염족왕은 제7 무착행의 선지식이다. 중생을 교화하는 법도 교화하는 중생에게도 집착하지 않고 다양한 방편바라밀을 중심으로 수행하며 나머지 바라밀도 함께 닦으며 언제 어디서나 자유로운 삶을 실천하는 것이 무착행이다. 이런 자유를 누린 자는 반드시 타인의 자유도 보장해야 한다.

무염족왕은 그런 수행을 통해 해탈하신 분이다. 그가 이룬 요술로 고통을 주고는 부귀가 보장된 왕궁으로 들여보내면 바로 본래의 몸을 회복되고 모든 악업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착하게 살게 된다. 행복한 세상에선 집착이 없으므로 대가를 바라지 않으니 부(富)를 공유하는 청정한 사회를 이루게 된다.

[불교신문3501호/2019년7월6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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