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인에세이] 오리발과 흰 고무신
[문인에세이] 오리발과 흰 고무신
  • 김양희 시인
  • 승인 2019.07.02 13: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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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무신이야말로 물과 땅에서
그 진가를 발휘하여 신발에
물이 묻거나 들어가도 괜찮다

물론 고무신이라고 언제나
안전하거나 편한 것은 아니다

난드르에서 만난 해녀들의
신발을 보며 바닷가에서는
고무신이 최고라는 생각이…
김양희

난드르 갯바위에 앉아 물질하는 해녀들을 세 시간째 바라본다. 난드르는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안덕면 대평리를 이르며 ‘바다로 뻗어나간 들, 평평하고 긴 들판’이란 뜻의 제주어다. 이곳에 해녀 마을이 형성되어 있는 것을 보면 바다 밭에 해산물이 풍부하고 물질하는데 알맞은 지형인 것을 알 수 있다.

물질하는 모습을 이렇게 가까이에서 바라보긴 처음이다. 바로 앞에서 물속으로 들어가는 해녀에게 미안하여 가끔 안 보는 척 저 건너 박수기정으로 눈길을 돌린다. 이들의 숨 값으로 딴 전복, 성게 알, 홍해삼을 먹고자 기다리고 있으니.

차를 타고 지나가다 병풍처럼 두른 절벽인 박수기정에 반하여 내려온 갯가. 밀물일 때 물에 잠겼다 썰물이면 모습을 드러내는 갯바위는 나를 바다로 나가보라고 부추긴다. 제주 갯바위에서는 편하고 안전한 신발을 신어야 하는데 내 발은 샌들이다. 특히 난드르 바다 바위는 날카로운 모서리로 무장하고 있어 샌들이 걷기에는 무척 위험하다. 발이 다칠 위험성도 있지만, 신발에 흠집이 날까 걱정하는 것이다.

이 어리석은 생각이 샌들을 벗어들고 맨발로 바위를 디디게 했다. 발이 바위에 닿는 순간 칼에 베이는 듯한 통증이 발바닥을 찌른다. 한 발자국 떼는 것도 무섭다. 모서리가 뭉그러진 바위라 생각한 곳도 아프기는 매한가지다. 신발은 발을 보호하는 것이 목적인데 오히려 신발을 보호하고자 발이 고통을 감수하다니. 결국 몇 발자국 못가 샌들을 도로 신고 그중 평평한 바위를 찾아 자리를 잡았다. 

용암이 흘러내리면서 바닷물과 사투를 벌이다 파도 모양으로 굳어버린 해안가의 기묘한 바위들. 이 바위가 펼쳐진 난드르 갯가를 검정 고무 옷 입은 해녀들이 테왁과 망사리, 수경, 오리발을 둘러메고 짠물로 들어가기 위해 건넜다. 오늘도 무사히 바당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갈 수 있기를 기도하며. 나도 해녀들이 물질하는 내내 무사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물속으로 들어간 해녀가 나올 때가 되어도 보이지 않으면 조마조마하다. 바다는 사람을 살리기도 하지만 죽음도 한숨에 결정짓는 곳이기 때문이다. 

갯바위에서 샌들이 쩔쩔매는 동안 해녀는 오리발을 신고 종횡무진 바다를 누빈다. 오리발은 물속을 수월하게 이동하도록 도와주기 때문에 물질에서 필수품이다. 비로소 물에서 나온 후에야 고무신과 자리를 바꾼다. 고무신이야말로 갯가에서 그 진가를 발휘한다. 발을 보호하기도 하지만 물이 들어가도 망가지지 않는다.

갯바위 모양이 뾰족하든 파였든 평평하든 그 모양을 거스르지 않고 부드럽게 구부러지며 그것과 하나가 된다. 굽이 딱딱하여 바위의 모난 부분과 타협하지 못하고 넘어질 듯 뒤뚱대며 걷는 샌들과 사뭇 다르다. 물론 고무신이라고 언제나 안전하거나 편한 것은 아니지만, 난드르 해녀들을 보며 바닷가에서는 고무신이 최고라는 생각이 든다. 

이윽고 물질을 마친 해녀들이 하나둘 갯바위로 올라온다. 올라오기 전 오리발을 벗어 망사리에 담고 망사리에 넣어두었던 고무신을 꺼내 신는다. 흰색, 검정, 보라 등 각양각색의 고무신은 해산물이 잔뜩 든 망사리와 그에 연결된 테왁을 짊어지고 빨판이나 되는 듯이 날이 선 갯바위를 익숙하게 지나간다. 말할 기력도 남아있지 않지만, 바위 비위를 거스르지 않고 그녀들 쉼터로 묵묵히 발걸음을 옮긴다. 

이제 바다에는 배 타고 나가 물질하는 해녀들만 보인다. 나도 이만 자리를 뜬다. 갯바위를 평지처럼 걷는 해녀들을 샌들이 위태롭게 따라간다. 그녀들 뒷모습이 마치 전장에서 이기고 돌아온 장수, 성스러운 직무를 다하는 성직자처럼 보인다. 한 길 두 길 내려갈수록 저승길이 가깝다는 해녀노래가 귀에 쟁쟁하지만. 

[불교신문3500호/2019년7월3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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