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60주년 맞이 특별기획’
김한근 부경근대사료연구소장, 김화선 부산 금정중 교사 공개

휴전 후 범어사 스님 전각 상황 담아
미군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살펴봐
범어사 밑 농촌 풍경도 다양하게 기록
잊혀져 가는 기록을 찾아 빈자리 채워

범어사 산문에 들어서는 미군들.
범어사 산문에 들어서는 미군들.

 

1954년 6월 모내기가 한창인 어느 초여름 부산 범어사와 금정산 모습을 담은 영상이 화제가 되고 있다.

김한근 부경근대사료연구소장과 김화선 부산 금정중 교사가 불교신문을 통해 공개한 8분 55초 분량의 영상에는 휴전 직후 범어사 전각과 스님들이 다수 등장한다. 특히 당시로는 아주 드물게 칼라 영상으로 촬영해 생동감이 두드러진다.

화면이 선명하지는 않지만 윤곽은 분명하다. 아쉽게도 소리는 담기지 않았다. 주한 미군이 촬영한 영상은 1951년 4월부터 1953년 2월까지 미8군사령관을 역임한 제임스 어워드 밴 플리트(James Alward Van Fleet, 1892~1992) 장군과 미군들이 범어사를 방문한 장면을 담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군복을 입은 미군들이 범어사 도량을 거닐며 전각을 보고 있다.
군복을 입은 미군들이 범어사 도량을 거닐며 전각을 보고 있다.

이 영상자료는 부산 지역 근현대 자료를 꾸준히 수집하고 있는 김한근 부경근대사료연구소장이 미국 이베이 경매를 통해 구입한 것이다. 전체 분량은 15분이다.

선찰대본산 편액이 걸려 산문에 해당하는 조계문으로 범어사에 들어온 미군들이 대웅전, 팔상전, 지장전 등 전각을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살펴보는 모습이 이채롭다. 미군들은 서로 대화를 나누거나 범어사 스님에게 궁금한 점을 질문 하는 등 한국불교에 깊은 관심을 나타냈다. 또한 지장전과 독성전 사이에 있는 바위 위에 걸터앉거나 석등 앞에서 모자를 벗고 사진을 찍는 등 다채로운 모습으로 범어사를 만끽했다.
 

지장전에서 책상 앞에 앉은 한 스님이 무언가를 쓰고 있다.
지장전에서 책상 앞에 앉은 한 스님이 무언가를 쓰고 있다.

미군들을 맞이한 스님들은 크게 개의치 않는 모습이었다. 한 스님만이 대웅전 앞에서 미군들과 이야기를 나눌 뿐이고, 다른 한 스님은 나한전 안에서 책상에 무언가를 놓고 글쓰기에 몰두하고 있다. 

또 다른 스님은 요사채 툇마루에 다리를 꼬고 앉아 아무렇지도 않은 무심한 표정으로 카메라를 바라보았다. 만 3년간 이어진 참혹한 전쟁이 휴전으로 막을 내린지 10개월 정도 지난 시점이어서 그런지 평화로운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영상이다.

하지만 전쟁으로 인해 절집 살림이 어려워 제 때 건물을 보수하거나 불사를 하지 못했음을 짐작하게 하는 장면도 적지 않게 나온다. 전각 지붕의 기와를 비롯해 목재, 단청 등이 퇴락해 있어 전쟁의 상흔을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다.
 

범어사를 방문한 미군을 맞이한 스님이 법당 앞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범어사를 방문한 미군을 맞이한 스님이 법당 앞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이 영상에는 범어사 사하촌(지금의 청룡동, 팔송 일대)의 60여 년 전 민낯도 그대로 드러나 있다. 전형적인 농촌 마을으로 한창 모내기를 하는 농민들의 모습이 무척이나 바쁘다. 또한 보리타작을 하는 농민들의 손길과 소를 앞세워 쟁기질 하는 할아버지가 분주하기만 하다.

흰 옷 입은 아낙이 흙길을 걸어가는 장면, 그리고 영상을 찍는 미군을 신기한 듯 쳐다보는 주민 등이 반백년 전의 역사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금정산 전경을 카메라 앵글에 담았는데, 큰 나무는 거의 없는 민둥산이라는 점이다.

오솔 길을 따라 지팡이를 짚고 내려가는 스님의 뒷모습도 발견할 수 있다. 이 영상은 가사를 수한 두 명의 비구 스님이 사찰 밖에서 환하게 웃는 모습으로 마무리되고 있다.
 

요사채 툇마루에 앉은 스님. 전쟁 직후의 범어사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요사채 툇마루에 앉은 스님. 전쟁 직후의 범어사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밴 플리트 장군은 미8군사령관 재직 시절인 1954년 4월 4일 아주 힘든 결정을 내려야 했다. 이날 오전 1시 경 외아들 제임스 밴 플리트 공군 중위가 압록강 전선에서 비행기를 조종하며 작전을 하던 중 실종됐기 때문이다. 그날 10시30분 밴 플리트 장군은 “적진에서의 수색 작전은 위험하다”면서 “수색작업을 즉시 중단하라”하고 명령을 내렸다. 아버지로서 어려운 결정이었다.

제임스 밴 플리트 중위는 실종 2년 뒤인 1954년 4월 전사 처리됐다. 아버지 밴 플리트가 한국을 방문해 범어사를 찾은 시점이 그 직후였던 것으로 보인다. 1953년 3월 31일 밴 플리트 장군 전역식에서 트루먼 미국 제33대 대통령은 “최고의 장군이었다”며 극찬했다.
 

오조가사를 수한 2명의 비구 스님이 카메라를 바라보고 있다.
오조가사를 수한 2명의 비구 스님이 카메라를 바라보고 있다.

밴 플리트 장군은 1952년 6월6일 범어사에서 동산스님을 법주(法主)로 봉행된 ‘전국 군경 합동위령제’에 참석한 인연이 있다. 이날 위령제는 이승만 대통령과 외교사절단도 자리를 같이했다.

범어사 아래 마을의 농경지에서 밭을 가는 농부의 모습
범어사 아래 마을의 농경지에서 밭을 가는 농부의 모습

 

한편 이번 영상자료에 들어 있지는 않지만 한국전쟁 기간에 범어사를 방문한 미군 2명이 동산스님과 공양을 하는 장면도 공개됐다. 동산스님 좌우에 앉은 미군이 서양인으로는 불편한 양반다리를 하고 사기그릇에 담긴 국수를 젓가락을 이용해 먹으려는 모습이 이채롭다.

한국전쟁 기간에 범어사를 방문한 미군 2명이 동산스님과 국수 공양을 하는 모습.
한국전쟁 기간에 범어사를 방문한 미군 2명이 동산스님과 국수 공양을 하는 모습.

김화선 부산 금정중 교사는 “한국 전쟁 직후 범어사 안팎의 전경을 생생하게 담은 영상은 지금까지 공개된 적이 없었다”면서 “한국 근현대사에서 길목마다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 범어사와 부산불교계의 역사를 복원하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김한근 부경근대사료연구소장은 “우리가 몰라 잊혀져가는 기록을 되찾아 역사의 빈자리를 채운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면서 “임진왜란과 한국전쟁 등에 참전한 전사자를 천도하는 행사를 이어온 범어사가 지역의 수사찰이라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의미를 강조했다.

이번 영상 자료 발굴을 계기로 보다 많은 근현대 흔적들이 세상에 나오길 바라는 여론이 일어날 것으로 기대된다.

※ 자료제공=김한근 부경근대사료연구소장, 김화선 부산 금정중 교사.

부산=이성수 기자 soolee@ibulgy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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