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두

청담(靑潭)스님이 늙은 거지를 보고 이렇게 말했단다. “이보게, 내가 자네에게 이 돈을 줄 테니 자네는 이 한마디만 하게. 자, 나무관세음보살 한 마디만 해봐. 그러면 이 돈은 자네 것이네.”

늙은 거지는 스님이 내미는 돈을 보고 스님 얼굴 한 번 보고 그러면서 언듯 말을 않더란다. 또 한 번 스님 손에 든 돈을 보고 스님을 쳐다보고. 그러더니 “스님, 죄송합니다”라고 작은 소리로 말하고는 돌아서 가더란다. 청담스님 말씀이 “나무 관세음보살, 그 말 한 마디 하기가 그리 힘든건가”였다. 

늙은 거지는 돈은 갖고 싶고 또 돈을 내미는 스님이 자기를 놀릴 사람도 아닌 것도 알면서 왜 스님의 말을 따르지 않았을까. 스님이 시키는대로 ‘나무 관세음보살’ 한 마디면 돈이 제 손에 들어오는데. 그것도 평생토록 구걸해도 갖지 못할 큰 돈이 생기는데. 자존심 때문이었을까. 빌어먹어도 자존심은 꺾이지 않겠다는 마음이었을까. 자기를 잡고 장난질 할 어른이 아님을 뻔히 알면서도 왜 스님이 내미는 돈을 받지 않았을까. 생각도 못한 큰 돈이라 그랬을까. 제 깜냥엔 과분한 돈이라 여겨서 그랬을까.

슬며시 돌아서면서 ‘스님, 죄송합니다’ 하는 그 말은 어떤 심정에서였을까. 갑자기 들이대는 스님의 말에 기가 질려서 그랬을까. ‘나무 관세음보살’이라는 말이 자기에겐 생소하고 안하던 말이어서였을까. 마음 한번 돌려 먹고 “에라, 스님이 시키는대로 해보자” 했더라면 큰 돈이 생겼을 텐데. 이리저리 생각해 보아도 그 늙은 거지의 그 때 그 행동은 헤아리기 어렵다.

“생각이 바뀌면 행동이 바뀌고 행동이 바뀌면 운명이 바뀐다‘는 말이 떠오른다. 몇 해 전 경찰서 정문 아치에 크게 써 있던 말이었다. 범죄자에게 경각심을 갖게 하여 죄를 저지를 마음을 갖지 못하게 하고 선도하는 뜻으로 누군가의 아이디어로 내건 말이었다. 

청담스님이 늙은 거지에게 해주고 싶은 말씀은 무엇이었을까. 또 당신께서 이 이야기를 후학에게 들려준 뜻은 어디에 있을까.

[불교신문3498호/2019년6월26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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