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명(網明)보살이 말했다. 
“제가 잘 참고 견디어서 모든 중생들을 위하여 항상 광명을 나타내어 일체의 묶임(結)을 없애겠나이다.” 

- <결정비니경> 중에서


똥을 아무데나 눈다고 행복이를 야단쳤는데, 이른 아침 딱새 부부가 포로롱 날아와 개똥을 맛있게 쪼아 먹는다. 개똥도 약이라고. 우리는 눈 주위에 깨알 같은 진드기가 붙었길래 눕혀 놓고 진드기를 잡아주었다. 무관심도 병이라고.

뉘는 전생의 업과(業果)로 인해 몸을 받고, 괴로움을 당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세상의 모든 존재들은 의도했던 의도하지 않았던 지고 가야할 제 나름의 몫이 있는 법이었다. 기쁘게 받아들이느냐 원망과 불평으로 받아들이느냐가 각자의 경계다.

업과가 있느냐 없느냐 하는 논쟁도 그러하다. 모두 자신의 기준으로 판단하는 게 문제다. 업을 기꺼운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업과가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다. 그러니 업과란 없다고 한들 허물이 될 리 없다. 그런데 부딪히는 경계마다 힘들고 번뇌가 된다면 그에게는 삶의 업과가 모두 역연해진다. 자유란 인식에 얽매인 채 업과를 짊어지느냐 적극적이고 긍정적으로 업과라는 인식을 벗어나 보살의 마음으로 사느냐의 문제이다.

[불교신문3498호/2019년6월26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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