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는 사라졌지만, 불교적인 평온을 느꼈다”

쿠샨왕조 번영지 ‘테르메즈’
카니슈카왕이 문화 꽃피우며
불교성지 만들어 연구 지원
제4차 경전결집 이루어져
중앙아시아 전역 불교 전파
불ㆍ보살상 많이 출토 ‘주목’

조계종 교육원(원장 현응스님)은 승려연수교육의 일환으로 지난 6월4일부터 14일까지 9박11일간 ‘2019년도 자현스님과 함께하는 우즈베키스탄 불교유적순례’를 진행했다. 소임자로 순례를 함께 한 불학연구소장 정운스님이 본지에 ‘단상’을 보내왔다.

조계종 교육원 ‘2019년도 자현스님(앞줄 왼쪽에서 세 번째)과 함께하는 우즈베키스탄 불교유적순례단’ 일행이 2000년간 모래 속에 있다가 발견된 테르메즈의 파야즈데파(불교사원 터)에서 자리를 함께 했다. 앞줄 맨 오른쪽이 필자 정운스님.
조계종 교육원 ‘2019년도 자현스님(앞줄 왼쪽에서 세 번째)과 함께하는 우즈베키스탄 불교유적순례단’ 일행이 2000년간 모래 속에 있다가 발견된 테르메즈의 파야즈데파(불교사원 터)에서 자리를 함께 했다. 앞줄 맨 오른쪽이 필자 정운스님.

미국 및 유럽에서 이슬람교도의 테러로 사람들의 죽음을 접할 때마다 그들의 폭력성과 잔인성이 안타까웠다. 게다가 12세기 인도에서 불교가 사라지게 된 데는 여러 원인이 있지만, 그 중에 하나가 이슬람교도의 침입이다. 이슬람교도들이 사원을 파괴하고, 승려가 피살되면서 불교는 설 자리를 잃었다. 필자에게 언제부터인지 ‘이슬람교는 테러를 자행하고, 사람을 살상하는 종교’라는 점에 각인되어 있었다.

그런데 이번 교육원 해외연수 ‘우즈베키스탄을 순례’하면서 이슬람교에 대한 편견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이슬람 국가인 우즈베키스탄을 통해 그들의 문화를 다른 방식으로 볼 수 있는 정신세계가 확장됐다. 순례지 우즈베키스탄은 중앙아시아에 위치하는데, 옛 실크로드를 통해 동서양의 문물이 교류되었던 접점 지역으로 찬란한 불교문화가 번성했던 곳이다. 

편견을 내려놓으니… 

실크로드는 기원전부터 시작됐다. 루트는 인도 북부에서부터 유럽까지, 그리고 중국 서안을 시작으로 인도까지 동서양의 상업을 전제로 했지만 문화교류도 큰 몫을 했다. 문화의 한 양상 가운데 종교가 가장 큰 몫을 했다. 불교ㆍ조로아스터교ㆍ이슬람교ㆍ기독교 등 종교가 전파되어 발전했다. 우리나라 불교도 여기서 유입됐다. 

B.C.268년 인도 북부를 점령했던 알렉산더 대왕이 섭정군을 두고 떠났다. 이로 인해 헬레니즘 문화가 심어지게 되었다. 이후 후손들은 그리스계 박트리아왕조를 세웠고, 인도 북부(현 파키스탄과 아프카티스탄 접경 지역)를 200여년 다스렸다. 당시 작품이 <밀린다왕문경>이다. 곧 그리스 왕 메난도로스왕과 나가세나 존자와의 불법(佛法) 대화로 된 경전이다. 실크로드를 통해 소ㆍ대승불교 전파되었는데, 대승불교가 더욱 크게 발전됐다.

대승불교는 불교사에서 부파불교를 비판하며, 모든 이들이 평등한 존재로 출ㆍ재가자 모두 부처가 될 수 있다는 위대한 불교사상이다. 대승불교가 싹트게 된 데는 여러 원인이 있는데, 공통적으로 학자들이 동의하는 점은 사리탑 숭배와 불상의 탄생이다. 불상이 처음 출연하고 발생했던 곳은 인도 북부 간다라와 그 주변의 중앙아시아에 걸쳐 있으며, 수십여 년 전부터 불상과 보살상이 출토되고 있다. 

실크로드를 통해 수많은 민족의 흥망성쇠가 있었다. 중앙아시아의 역사는 실크로드의 패권을 누가 잡느냐에 따라 그 나라의 경제력과 왕권 강화에 활용됐다. 특히 중국은 역사상 최고의 문화 전성기는 당나라(7세기~10세기)때인데, 실크로드를 통해 문화와 문물이 들어왔기 때문이다. 그리스와 중앙아시아에서 들어온 사람들 중에는 당나라의 관리로 채용된 이도 있었다. 

예전에는 불교국가

실크로드에 위치했던 현 이란ㆍ아프카니스탄ㆍ우즈베키스탄 등이 예전에는 불교국가였고, 이 지역에서 스님들과 불교학자들이 중국으로 건너가 경전을 번역했다. <안반수의경>의 저자 안세고는 안식국(현 이란 지역)의 왕자 출신이고, <반주삼매경>의 역자 지루가참은 월지국(아프카니스탄과 그 인접국가) 사람이다.

또한 <수행도지경>의 축법호는 천축(인도), 구마라집은 귀자국(현 중국) 사람이다. 그렇게 번성했던 중앙아시아 지역에 불교 유적이 거의 남아 있지 않다. 이슬람교가 형상이나 상징적인 의미를 부정하는 면이 강하다보니, 거의 파괴되고, 보존되지 않아서이다. 이번에 연수팀이 방문했던 우즈베키스탄도 마찬가지였다. 

우즈베키스탄은 텐산 산맥에서 시작되어 수천㎞를 따라 아무다리야강과 시르다리야강 사이에 위치한다. 이 나라 전체가 식물이 제대로 자라지 않는 척박한 기후이다. 그나마 오아시스와 나무가 자란 곳을 중심으로 마을이 형성되고, 근대의 도시가 발전됐다.

우즈베키스탄은 기원전 6세기에는 페르시아제국 영토였으나 기원전 4세기 알렉산더대왕에게 정복되었고, 알렉산더의 후손인 박트리아 왕조의 지배를 받았다. 중국 북쪽에 거주하던 월지족은 흉노족에 쫓겨 중앙아시아를 건너 인도 북부를 다스리고 있던 박트리아 왕조를 멸망시킨다. 이 월지족 가운데 한 부류가 우즈베키스탄의 원주민이다.

월지족은 초창기 실크로드의 중심인 사마르칸트에 왕국을 건립했다. 그러다 다시 여러 왕국으로 나뉘었고, 이 가운데 쿠샨왕국이 강력한 왕국으로 발전해 다른 왕국을 통일했다. 7세기에 터키, 8세기에 아랍, 9∼10세기에 사만왕조, 13세기에 호레즘, 13세기 후반에 몽골, 14세기에 몽골족의 후예 티무르왕의 지배를 받았다. 19세기 후반에는 소련의 지배를 받았다. 그러다 1990년에 소련이 해체되면서 이 나라는 주권을 선언하고, 1991년 독립을 선언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중앙아시아에서 가장 오래된 불상으로 알려진 ‘비나야 삼존불’(타슈겐트 국립역사박물관 소재).
중앙아시아에서 가장 오래된 불상으로 알려진 ‘비나야 삼존불’(타슈겐트 국립역사박물관 소재).

불교유적지 ‘테르메즈’

우주베키스탄의 불교 유적지는 ‘테르메즈’로, 이 곳 이외에는 불교 유적이 거의 없다. 테르메즈는 현재 카자흐스탄ㆍ키르기스스탄ㆍ아프가니스탄ㆍ카슈미르와 북인도에 걸쳐 통치했던 쿠샨왕조가 번영했던 곳이다. 쿠샨왕조의 호법왕 카니슈카왕이 최상의 문화를 꽃피웠고, 테르메즈시를 불교성지로 만들었다.

카니슈카왕은 소ㆍ대승 불교를 망라해 연구토록 원조해 제4차 경전결집이 이루어졌다. 이 카니슈카왕으로 인해 중앙아시아 전역에 걸쳐 불교가 크게 전파되었다. 현재 이 곳에서 불상과 보살상이 많이 출토되었다. 주름무늬의 가사 형태를 취한 보살상이 등장했다는 것은 곧 대승불교가 전개된 장소로 봐도 무리가 없다. 

우즈베키스탄이 역사 이래 이민족 외세 침입이 끊임없었고, 수많은 나라의 약탈을 받은 탓인지, 이 나라만의 역사가 부족하다. 이 나라 정부에서는 20여 년 전부터 나라의 구심점을 찾기 위해 노력하다가 레닌과 스탈린의 동상이나 건물을 제거하고, 대신 몽골족의 후예인 티무르(Timur, 1336~1405)를 민족의 영웅으로 내세우고, 여러 도시에 티무르 동상을 세우고 있다.

티무르는 사마르칸트(실크로드의 주요 길목)를 중심으로 나라를 건설했던 민족으로 엄연히 따지면, 이 나라 조상이 아니라 몽골족의 후예이다. 이민족의 왕을 내세워 국가의 자존심을 세우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고 보면 될 것 같다. 

우즈베키스탄은 중아아시아 실크로드 요충지로서 처음은 불교문화를, 이후에는 이슬람 문화를 형성시켰다. 이번 순례를 통해 이 나라에 대한 단상을 몇 가지 적어본다. 

첫째, 우즈베키스탄에서는 불교문화를 찾기 힘들지만, 이슬람 사원을 통해 본 이 나라의 문화는 아시아 최고의 문화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이다. 솔직히 필자가 생각했던 것보다 상상 이상으로 찬란한 문화였다. 

둘째, 이 나라 국민 중 80%가 이슬람교도인데, 주변 이슬람 국가와는 다른 양상이다. 곧 종교의 극단적인 면이 드러나지 않고 평화적이다. 사원에서 만나는 신자들은 한결같이 진지했고, 그들의 기도하는 모습에 신성함까지 느낄 정도였다. 국내 공항에 화장실은 없어도 이슬람교도들이 기도할 수 있는 곳은 마련되어 있었다. 

셋째, 주변 이슬람 국가에 비해 여자들이 자유롭고, 밝은 모습으로 남녀 성차별이 적어 보인다. 이슬람 국가의 여자들은 무조건 히잡을 둘러야 하고, 자전거도 함부로 탈 수 없으며, 자동차 운전조차도 쉽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이 나라 여성들은 달랐다. 한편 젊은 남녀들의 이성교제도 자유로워 보였다. 

넷째, 불교가 사라졌지만, 국민들의 민족성을 통해 불교적인 평온을 느꼈다. 이 나라 사람들은 순례중인 스님들만 보면, 함께 사진 찍자고 할 정도로 친근하고 따뜻한 민족성을 갖고 있었다. 우즈베키스탄은 우리나라로 치면, 1970년대 후반의 모습을 닮아 있다. 국민 대다수가 잘 살아야 한다는 억척성은 보이지 않는 반면 삶을 즐길 줄 알고, 느림의 미학인 ‘여유’라는 코드가 드러나 보였다. 

이번 ‘2019년도 자현스님과 함께하는 우즈베키스탄 불교유적순례’에 동참했던 20여명의 스님들은 옛 실크로드를 접하고, 불교 유적지를 순례한 점에 긍정적인 반응이다. 한편 그 역반응으로 스님들은 현 우리나라 불교를 걱정했다. ‘출가 승려가 줄고 있고, 불자가 감소하는 시점에서 혹 우리도 우즈베키스탄과 같은 전철을 밟지 않을까…’ 하는. 그러면서도 부처님 진리가 영원할 것이라는 무한한 긍정을 드러냈다.

필자 개인적인으로는 강의 도중 불교역사를 언급할 때가 많은데, 이번 우즈베키스탄을 순례하면서 불교역사를 입체적으로 볼 수 있는 계기였다. 실크로드와 그 길에 남겨진 불교유적지를 꼭 한번 순례하기를 권한다. 

[불교신문3498호/2019년6월26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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