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의 살 다 베어 비둘기 한 마리를 살리다

돈황 275굴 북벽 전생 그림 가득
자기 희생적 보시에 머리 숙여져
비둘기 구하려고 살 베어 보시행
이기적인 우리 모습 돌아보게 해

당나라 시대에 조성된 돈황 58굴의 ‘능가경변상도’ 가운데 ‘시비왕본생도’.
당나라 시대에 조성된 돈황 58굴의 ‘능가경변상도’ 가운데 ‘시비왕본생도’.

 

돈황석굴에서 가장 오래된 석굴 가운데 하나인 275굴은 북량시기(397~ 439)에 조성된, 가로 3m, 세로 5m의 작은 석굴이다. 석굴의 서벽에는 높이가 3.4m에 이르는 거대한 교각(交脚)의 미륵보살상이 모셔져 있는데, 의자에 앉아 두 다리를 교차하고 하반신에 밀착된 가는 옷과 어깨가 드러나도록 걸친 얇은 옷을 걸친 모습은 실크로드 미술의 영향이 역력하다. 

화불이 표현된 보관을 쓰고 가슴 아래로 길게 영락 장식을 내려뜨리고 정면을 향해 앉은 미륵보살은 “몸이 염부단사금 같이 빛나고 키가 16유순, 32상과 80종호를 갖출 것이다. 정수리에 육계가 있고 여의주와 보석으로 만든 하늘관을 쓰고 있고, 보배관에는 미묘한 빛이 흘러나오는데 빛 속에 백천의 화현불이 있다”(<불설관미륵보살상생도솔천경(佛說觀彌勒菩薩上生兜率天經)>)는 내용을 떠올리게 한다. 

이 석굴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미륵보살의 좌우, 남벽과 북벽에 가득 그려진 벽화들이다. 특히 북벽 하단에는 좁고 긴 벽면에 5가지의 석가모니 본생이야기가 가득 펼쳐져 있어 그야말로 부처님의 전생을 한 눈에 보는 듯 하다. 불도를 이루기 위해 온 몸에 천개의 못이 박히는 고통을 겪은 비릉갈리왕본생도(毗楞竭梨王本生)와 자신의 전생을 살핀 뒤 스스로 천 번이나 머리를 베어 보시하고 열반에 들었다는 월광왕본생도(月光王本生圖)를 보고 있으면, 석가모니 부처님의 자기 희생적인 보시가 얼마나 처절했는가에 절로 머리가 숙여진다. 

두 그림 사이에 간단하게 그려진 그림 하나가 눈길을 끈다. 한 인물이 왼발을 아래로 늘어뜨린 채 오른손을 배에, 왼손은 무릎 위에 살포시 대고 두 눈을 감고 의자에 앉아 있다. 그 앞에는 작은 크기의 인물이 칼을 들고 의자에 앉은 인물의 다리에서 살을 베어내고 있다. 바로 매에게 쫒기는 비둘기를 살리기 위해 자신의 허벅다리 살을 베어 보시했다는 시비왕(尸毗王, Sivi) 본생도이다. 

 

돈황석굴 275굴. 불상 주위에 벽화들이 그려져 있다.
돈황석굴 275굴. 불상 주위에 벽화들이 그려져 있다.

삿된 소견을 지닌 외도의 스승이 석제환인(釋提桓因, 제석천)에게 뒤바뀐 법을 설하는 것을 듣고 제석이 근심걱정하다 비수갈마(毘首羯磨)와 함께 구시국(拘尸國)의 왕인 시비를 시험해보기 위해 제석은 매로, 비수갈마는 비둘기로 변하였다. 이 때 비둘기가 매에게 쫓기어 겁을 내며 대중들 앞에서 시비왕의 겨드랑이 밑으로 들어갔다. 매가 비둘기를 내놓으라 하자 왕은 자신의 몸과 살과 피로써 비둘기와 매를 함께 살리기로 한다…

대왕이 손수 칼을 잡고서 다리 살을 베려고 하니 재상과 대신들이 울부짖으면서 간쟁하고 성 안의 모든 사람들도 그만두기를 청하였으나 그 말을 따르지 않았다. 왕이 베어낸 살을 저울 한쪽에 얹고 비둘기 몸을 다른 한쪽에 얹었는데 비둘기의 무게가 더 무거운 것을 보고는 다시 두 다리와 몸뚱이의 살을 베어 저울에 올려놓았으나 역시 비둘기 몸보다 가벼웠다. 

대왕은 몸의 살을 다 베어 내어 뼈마디만 앙상하게 드러났다. 그리고 대왕이 곧바로 저울에 오르니 이 때 온 땅이 여섯 가지로 진동하였고 모든 하늘이 음악을 연주하고 꽃이 허공에서 내려고 천녀들이 허공에서 꽃을 뿌리어 땅에 가득하였다. 매는 다시 제석의 모습으로 돌아와 대왕 앞에 섰고 곧 대왕의 베어 낸 몸의 살이 도로 회복되었다. 그리고 제석은 비수갈마와 함께 보살에게 공양하고 천궁으로 돌아갔다(<대장엄론경(大莊嚴論經)>권 제12). 

비수갈마(Viśvakarma)의 화현인 비둘기가 제석천의 화현인 매에게 쫓기어 시비왕의 겨드랑이 아래로 들어간 것을 왕이 구하기 위하여 스스로 살을 베어 저울에 올렸으나 비둘기의 무게에 못 미쳐 결국 몸을 모두 베어 냈다는 이야기이다. 
 

돈황 254굴의 ‘시비왕본생도’로 북위시대에 조성됐다.
돈황 254굴의 ‘시비왕본생도’로 북위시대에 조성됐다.

북위대(386~534)에 개착된 254굴에서도 시비왕본생도가 그려져 있다. 이 굴의 시비왕본생도는 275굴에 비해 좀 더 구성이 복잡한데, 화면의 중심에는 시비왕이 있고, 주변에는 시비왕이 비둘기와 목숨을 바꾸는 장면에 슬퍼하는 많은 인물들과 매에게 쫓기는 비둘기의 모습이 표현되어 있다. 흥미로운 점은 신하가 칼로 다리 살을 베어내는 장면이 매우 사실적으로 표현되었다는 점이다. 

다른 작품들에서는 다리에 칼을 대고 있는 장면이 표현된 반면 여기에서는 다리에서 베어낸 살점이 떨어지는 장면이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다. 오른쪽의 인물은 저울을 들고 있는데 저울의 왼 편에는 비둘기가 올려져 있고 저울의 오른 편에는 아무 것도 걸치지 않은 시비왕이 피에 젖은 채 앉아있다.

칼로 살을 베어내는 장면이 저울에 비둘기와 시비왕의 몸무게를 재는 장면보다 크게 표현되어 있는 것을 보면 칼로 살을 베어내는 희생의 장면을 더 중요시 여겼던 것 같다. 수, 당 대 이후 경전 변상 위주의 벽화가 중심을 이룸에 따라 본생도는 급격히 줄어들게 되지만 302굴(수대)과 85굴(당대)에는 시비왕의 다리 살을 베어내는 장면, 저울에 비둘기와 시비왕의 살의 무게를 재는 장면 등 비슷한 내용이 그려져 있다.

시비왕본생담은 <육도집경(六度集經)>, <보살본생만론(菩薩本生鬘論)>, <현우경(賢愚經)>, <대지도론(大智度論)>, <대장엄론경> 등 많은 경전에 실려 있는데, 배고픈 호랑이와 새끼를 구하기 위해 스스로 몸을 보시한 마하살타왕자 본생담 만큼이나 충격적이어서인지 일찍부터 불교가 전래된 거의 모든 지역에서 도상화되었다. 인도에서는 굽타기에 조영된 아잔타석굴의 1굴, 2굴, 17굴에 시비왕본생도가 그려졌다. 

1굴의 시비왕본생도는 많은 인물들이 등장하여 화면을 꽉 채우고 있어 매우 복잡한데, 시비왕이 매에게 쫓겨 도움을 구하며 온 비둘기의 목숨과 맞바꿔 스스로 다리 살을 잘라내어 저울에 다는 장면이 보이며, 2굴에는 시비왕이 칼을 들고 앉아 있는 모습이 그려졌다. 이것은 경전에 기록된 대로 시비왕이 칼을 들어 자기 자신의 허벅지를 직접 베었다고 하는 것을 묘사한 듯 하다. 

반면 17굴에는 자신의 눈을 보시하는 왕자의 모습과 독수리가 보인다. 대부분의 그림에서 허벅다리 살을 떼어내어 비둘기의 목숨과 맞바꾸는 내용이 그려진데 반해 시비왕이 고통스러운 자세로 앉아있고 그 앞에 막 도려낸 시비왕의 두 눈알과 독수리가 묘사된 17굴의 시비왕본생도는 다소 생소하다. 이것은 17굴의 그림이 시비왕이 독수리에게 자신의 눈을 보시했다는 <찬집백연경(撰集百緣經)>에 의거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도상은 서역과 중국에서는 보이지 않고 오직 인도의 아잔타석굴에서만 볼 수 있다니 무척이나 흥미롭다. 

시비왕본생담은 실크로드 북로에 위치한 키질석굴에도 전해졌다. 독일탐험대에 의해 보살천정굴(菩薩天井窟)이라 명칭이 주어진 17굴의 궁륭형천정 측벽에는 시비왕은 높은 의자에 앉아 비둘기를 향해 손을 뻗은 시비왕이 묘사되어 있다. 여기에서처럼 시비왕을 향해 날아드는 비둘기를 향해 손을 뻗는 시비왕의 도상은 쿠차에서 성행한 시비왕본생도의 특징으로, 114굴에서도 볼 수 있다.

38굴에는 17굴과 달리 저울에 비둘기와 시비왕의 무게를 재는 모습이 표현되어 있다. 시비왕이 아무리 살을 떼고 떼어도 비둘기보다 무게가 가볍자 자신의 모든 몸을 저울 위에 올리기 위해 저울 위로 올라가는 장면이다. 키질의 시비왕본생도는 모두 마름모꼴의 구획 안에 그려져 있는데, 대부분 시비왕본생도에서 가장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는 허벅다리 살을 베는 부분만이 그려져 있어 한 눈에도 시비왕이야기임을 알 수 있다. 돈황 275굴에서 허벅다리 살을 베어내는 장면 하나만이 표현된 것 또한 쿠차의 영향인 듯 하다.

보잘 것 없는 비둘기 한 마리를 위해 스스로 자신의 다리 살을 잘라내어 보시했다는 시비왕본생이야기는 남보다는 나, 내가족을 먼저 챙기는 이기적인 우리들의 모습을 뒤돌아보게 한다. 이것이 바로 석가모니부처님이 본생담을 통해 중생들을 깨우치고자 했던 무언의 가르침이 아니었을까.
 

돈황 275굴의 ‘본생도’.
돈황 275굴의 ‘본생도’.

[불교신문3498호/2019년6월26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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