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정
이은정

어떤 날은 꼼짝 하기 싫을 때가 있다. 밥도 하기 싫고 청소도 싫고 글쓰기도 싫고 가만히 누워 있고 싶을 때. 하지만 어김없이 때가 되어 가족이 밥달라 하면 무거운 몸을 일으켜 부지런히 밥상을 차린다. 어질러진 집안을 보면 청소기를 돌린다. 남편이 감기로 아파도 약을 먹고 다음날 아침 일어나 회사에 간다. 아이는 늦잠을 자고 싶지만 가방을 매고 학교에 간다.

그럴 때면 인생은 고(苦)라는 말이 딱 맞는 말 같다. 수레에 짐을 잔뜩 싣고 멈추지 않고 움직이는 수레바퀴의 삶. 바퀴는 굴러굴러 흘러가는 시간 속에 우리의 삶도 멈출 수 없다. 싫건 좋건. 모든 게 멈추는 날은 바로 내가 죽는 날이다.

죽음이 찾아오기 전까지 우리는 모두 아침이 되면 학교나 직장에 가고 집안일을 하고 사람들을 만나 복잡한 인간관계 속에서 상처받기도 하고 견디는 기분으로 삶을 살아간다. 노는 거 빼고 스스로 하는 일, 즐거운 일은 적은 것 같다. 물론 에너지가 넘쳐 스스로 공부와 일을 찾아서 하는 사람들도 있으나, 소수라는 생각이 든다. 대다수 사람들은 삶을 수동적으로 살아간다.

만약 내멋대로 살 수 있다 치자. 밥 차려 달라는 사람도 없고 늦잠을 자도 상관없고 회사나 일도 없다면 아침에 나는 과연 몇 시에 일어날까? 집은 며칠에 한번 청소하게 될까. 돈을 벌거나 학교에 갈일이 없다면 하루종일 뭘 할까. 이 모든 의무에서 해방되면 나는 과연 규칙적인 생활을 할 수 있을까.

상상하다 보니 의무가 없다면 나는 완전 게으름뱅이가 되어 나무늘보로 현생할 것 같다. 그러니 아침에 가족의 밥을 차려야 하는 일이 나를 깨운다. 학교 가는 일이 아이를 늦잠으로부터 깨운다. 출근이 무거운 몸을 일으킨다. 명절이나 돼야 번거롭지만 명절음식을 한 번씩 하게 된다. 싫지만 시험이 있어야 그동안 얼렁뚱땅 공부한 부분을 다시 되새겨본다.

능동적인 삶을 사는 사람도 있다며 수동적 삶을 비웃지 말자. 우리는 대부분 수동적이다. 육체의 안락을 추구하는 것이 인간의 본능이라고 한다. 뇌는 본능적으로 움직이기를 싫어하고 가만히 있기를 좋아한다나. 하지만 게으른 삶의 결과는 좋을 수가 없다. 움직이지 않으면 안 된다. 등 떠미는 의무들이 있기에 나는 오늘도 건강하게 잘 살고 있음을 잊지 말자. 

[불교신문3498호/2019년6월26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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