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로절로 우리절] <20> 당진 영탑사
[절로절로 우리절] <20> 당진 영탑사
  • 당진=이성진 기자
  • 승인 2019.06.24 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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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험한 탑의 가피, 이제 지역민에게 ‘회향’합니다"

유구한 역사 불구하고
신도 발길 뜸했던 사찰
기도수행 지역나눔 통해
1년 사이 신도들 '북적'
올해 봉축 '하이라이트'
영탑사는 현 주지 상준스님 부임 후 1년 사이 기도수행 프로그램 다양화와 지역 나눔 활동 등으로 신도들이 발길을 자연스럽게 향하는 사찰로 발전했다. 사진은 주지 상준스님과 신도들이 약사여래 부처님에게 기도를 올리는 모습.
영탑사는 현 주지 상준스님 부임 후 1년 사이 기도수행 프로그램 다양화와 지역 나눔 활동 등으로 신도들이 발길을 자연스럽게 향하는 사찰로 발전했다. 사진은 주지 상준스님과 신도들이 약사여래 부처님에게 기도를 올리는 모습.

당진-영덕고속도로 면천IC에서 빠져나와 표지판이 이끄는 대로 향했다. 차로 10여분, 굽이치는 작은 길을 지나자 여름 향기가 물씬 풍겨오는 작은 저수지가 나온다. 절 입구엔 일주문 대신 400년 넘는 느티나무가 천년고찰을 지키고 있다. 여름의 문턱을 넘어선 지난 10일 영험한 탑의 기운이 느껴지는 영탑사를 찾았다.

충남 당진시 면천면 상왕산에 자리 잡고 있는 영탑사(靈塔寺)는 아픈 이들의 병을 고쳐주고 한 가지 소원은 반드시 이뤄준다는 지역 내 대표적인 약사여래 기도도량이다. 천연암석에 불상을 조각한 약사여래상이 이와 같은 명성을 얻게 만들어줬다. 무학대사가 빛이 비추는 곳을 따라가 보니 상서로운 바위가 있어서 그곳에 부처님을 새겼다는 설화가 전해진다.

통일신라 말 도선국사가 창건한 영탑사는 오랜 역사와 깊은 가치를 지닌 만큼 곳곳마다 문화재도 품고 있다. 특히 영탑이라는 이름을 만들어준 7층 석탑은 충남문화재자료 제216호로 유리광전 뒤편 언덕에 위치해 있다. 처음 5층 석탑으로 세웠지만, 1911년 중수를 거쳐 현 모습이 됐다. 기단 없이 자연암반을 그대로 이용한 점이 눈길을 끈다. 이밖에도 금동비로자나불삼존좌상은 보물 제409, 대웅전 내 범종은 충남문화재자료 제219, 약사여래상은 충남유형문화재 제111호로 각각 지정돼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영탑이라는 이름을 만들어준 영탑사 7층석탑 모습. 충남문화재자료 216호로 지정돼 있으며 기단 없이 자연암반을 그대로 이용한 점이 눈길을 끈다.
영탑이라는 이름을 만들어준 영탑사 7층석탑 모습. 충남문화재자료 216호로 지정돼 있으며 기단 없이 자연암반을 그대로 이용한 점이 눈길을 끈다.

영탑사는 이토록 유서 깊은 절이지만, 그간 사람들의 발길은 뜸했다. 당진시가 한국인 최초의 신부 김대건이 태어난 천주교 성지인 점도 불교 세를 약하게 하는데 한몫했다. 현 주지 상준스님은 지난해 7, 부임 후 처음으로 열었던 법회에 신도 3명만 앉아있었다며 당시 영탑사가 처한 상황을 설명했다. 그러나 1년 사이 영탑사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도량으로 발전하고 있다. “기도, 수행, 포교 즉 사찰 본연의 역할을 해야 한다는 어쩌면 단순하지만 명쾌한 스님의 원력이 이를 실현시켰다.

상준스님은 먼저 기도 수행 프로그램 다양화에 방점을 찍었다. 동참자가 많든 적든 개의치 않았다. 절에선 당연히 기도 수행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지난 4월부터 원각경 1000일 기도를 시작했다. 스님이 직접 법회 때마다 <원각경> 강의를 진행하며 신도들의 이해를 돕는다.

합동법회가 열리는 매달 첫째 주 일요일이 되면 영탑사 대웅전엔 독경 소리로 무르익는다. 신묘장구대다라니 철야 기도도 열었다. 매달 셋째 주 토요일 밤, 철야기도가 진행되는 유리광전엔 신도들로 가득 붐빈다. 서울 천안 인천 등지에서도 영탑사를 찾고 있다. 이제 법당엔 자리가 모자라 외부까지 자리를 넓힐 예정이다. 이처럼 기도 수행 활성화는 곧 포교의 방편이 됐다.
 

지난 4월 열린 원각경 1000일 기도 입재식 모습.
지난 4월 열린 원각경 1000일 기도 입재식 모습.

상준스님은 기도 수행을 통해 출가 수행자로서 초발심도 다잡을 수 있고 또 많은 분들과 함께 호흡할 수 있어 즐겁다신도들에게 무엇을 바라는 일차원적인 기도를 넘어 생활 속 기도 수행을 할 것을 당부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것이 진정한 기도의 가치라는 게 스님의 지론이다. 그러면서 한번이라도 기도하겠다는 마음을 내는 게 중요하다는 스님은 영탑사를 찾은 단 한 분이라도 간절한 울림을 받고 간다면 제 역할을 충분히 한 것이라며 밝게 웃었다.

상준스님은 부처님 가르침을 알리는 일에도 소홀하지 않았다. 스님은 주지 소임을 맡자마자 불교 기초 교리반부터 열었다. 신해행증(信解行證). 결국 불교를 믿으려면 일단 불교를 알아야 하고, 불교를 알아야 불자의 삶을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스님이 직접 강의를 맡았다.

처음엔 2~3명이 앉아있던 강의실엔 점점 신도들로 가득차기 시작했다. 대부분이 70대 이상인 어르신 불자를 위해 맞춤형 교육을 펼친 스님의 정성 덕분이었다. 1년 동안 기초 교리를 비롯해 전문심화 수업까지 마쳤으며, 올해도 꾸준히 교리 수업을 이어간다는 계획이다.
 

주지 상준스님이 불교 기초교리반 강의를 직접 맡아 신도들에게 부처님 가르침을 알리는 일을 하고 있다.
주지 상준스님이 불교 기초교리반 강의를 직접 맡아 신도들에게 부처님 가르침을 알리는 일을 하고 있다.

지역민과 함께 숨 쉬는 영탑사의 변화된 모습은 올해 부처님오신날 봉축법요식에서 여실히 볼 수 있었다. 영탑사 도량이 근래 가장 떠들썩한 시간이기도 했다. 바로 아기 부처님이 이 땅에 오신 날을 축하하기 위해 봉축 법회와 함께 지역주민 대상 노래자랑 한마당을 개최한 것이다.

상준스님도 직접 노래실력을 뽐내며 신도들과 어울렸다. 이처럼 지역민과 함께하는데 많은 시간과 힘을 쏟고 있다. 스님은 인근 지역 면천중학교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전달하는 보시행을 비롯해 인근 마을 주민들에게 쌀과 과일을 나눠주는 일도 주지 부임 후 꾸준히 하고 있다.
 

영탑사는 올해 부처님오신날 봉축 법요식에서 지역민과 함께 하는 노래자랑 한 마당을 열어 큰 호응을 얻었다.
영탑사는 올해 부처님오신날 봉축 법요식에서 지역민과 함께 하는 노래자랑 한 마당을 열어 큰 호응을 얻었다.

무엇보다 상준스님의 지역 나눔 활동엔 한 가지 중요한 철칙이 있다. 불자와 비 불자를 나누지 않는다. 스님은 분별하지 않고 베풀며 함께하는 것은 부처님의 당연한 가르침이라며 여의치 않은 상황 때문에 더 많이 베풀지 못해 아쉽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스님은 조금 더 살림이 나아지면 장학 사업과 지역 주민을 위한 사찰 도서관 설립도 하고 싶다는 작은 계획도 내비쳤다.

영험한 탑의 기운이 지역주민과 불자들에게 전해지길 바란다는 스님의 소박한 소망이 이뤄졌을까. 취재를 마치고 절을 나오는 길에도 참배객들이 발길은 부지런히 이어지고 있었다.
 

영탑사 주지 상준스님.
영탑사 주지 상준스님.

■ 당진 영탑사 주지 상준스님

“사찰은 마음 아픈 사람들 피난처 돼야”

도량 정비부터 절 살림까지 이것저것 신경 쓸 일이 많아 힘들더라고요. 아직 제가 부족한 탓이겠죠.” 영탑사는 상준스님<사진>이 처음 주지 소임을 맡은 곳이다. 그간 수덕사 교무, 연수국장으로 교구에서 두루 일을 해왔지만, 첫 주지 소임은 스님에게 무거운 책임감으로 다가왔다. 짓누르는 압박을 스님은 진심의 힘으로 이겨냈다. 모든 일 하나하나 정성을 다하며 1년을 보냈다. 그 진심이 전해졌는지 법회를 열면 1~2명 찾던 절이 이제 법당을 가득 채울 정도로 변화했다. “젊은 스님이 얼마만큼 하겠어라며 좋지 않은 시선을 보냈던 신도들도 이제 스님의 든든한 지원군이 됐다.

스님은 19살 무렵 부처님 인연을 맺었다. 출가 생활한지 이제 20여 년이 다 돼가고 있다. 세납으로는 젊지만, 소신은 뚜렷했다. 사찰은 심신이 지친 현대인이 쉴 수 있는 '피난처'가 돼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스님은 괴로운 이들에게 힘이 될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기 위한 불사에 나설 생각이다.

수덕사 승가대학과 서울 동국대학교 불교학부에서 수학한 스님은 여전히 공부하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다. 군 생활 때 겪은 경험이 밑바탕이 됐다.

출가 후 일반 병으로 군 복무를 하게 됐습니다. 제가 스님이라는 걸 알게 된 몇몇 선임이 힘든 이야기를 저한테 털어놓으며 스님이니깐 해답을 알려줘라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막상 어떻게 도움을 줘야 할지 몰라 애를 먹었습니다. 부족한 제 자신이 창피했죠. 더 열심히 수행하고 공부해 많은 이들에게 힘이 될 수 있는 출가자가 돼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이 같은 성찰은 스님은 한 단계 성장시켰고, 바쁜 지금도 여전히 책을 놓지 않는다.

스님은 일체중생 실유불성(一切衆生 悉有佛性)’이라는 문구를 마음속에 늘 지니고 다닌다. 생명이 있는 모든 존재는 모두 부처가 될 수 있다는 가르침을 깊이 지닌 채 스님은 오늘도 많은 이들에게 힘이 되기 위해 노력중이다. 열악한 지역 환경을 이겨내고 불법을 전하려 노력하는 스님의 활약이 기대되는 이유다.

[불교신문3497호/2019년6월22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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