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로 불타는 대한민국, 소방관은 불교에서?

화 못 참고 무차별 공격
사람 생명 예사로 해치고
폭력 방화 흉악범죄 기승
분노 원인과 해결법 갖춘
불교, 생명살리기 나서야

‘남한산성’의 소설가 김훈이 지난 1일 경북 안동 하회마을 만송정에서 열린 제1회 백두대간 인문캠프에서 이런 말을 했다. “악다구니, 쌍소리, 욕지거리, 거짓말로 날이 지고 샌다. 사람들이 생각 없이 혓바닥을 너무 빨리 놀리며 혀가 마음껏 날뛰게 내버려 둔다.” 그는 우리 사회가 도산서원과 하회마을 등으로 대표되는 전통적 가치를 잃어버린 결과 “어수선하고 천박한 세상”이 돼버렸다고 안타까워했다. 

김훈은 “이런 오래된 마을이 수 백년 동안 함양해온 덕성과 가치를 우리는 상실해 가고 있다”며 “그런 덕성과 가치를 어떻게 현대에 접목시킬 것이냐에 대해서 아무런 대책이 없다”는 말도 덧붙였다. 강연에 이어진 북토크에서 그는 “퇴계의 서원과 하회마을의 가르침을 개인 차원으로 치환하면 바로 ‘친절’이라 생각한다”며 ”나는 친절한 사람이 되는 게 목표고, 죽은 뒤에 친절했던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고 말해 많은 박수를 받았다. 
 

한국 사회의 분노를 해결하는데 불교가 적극 나서야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사진은 마음을 다스리는 수행 체험을 하는 자비명상 수행 모습.
한국 사회의 분노를 해결하는데 불교가 적극 나서야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사진은 마음을 다스리는 수행 체험을 하는 자비명상 수행 모습.

김훈 소설가의 한탄

위 내용은 한겨레신문을 비롯한 몇몇 언론의 보도로 알려졌다. 악다구니 쌍소리 욕지거리 거짓말로 날이 지새고 품위니 덕성이니 하는 전통의 가치는 버린지 오랜 지금의 대한민국 사회를 한 문학인은 날카롭게 지적했다. 대한민국은 소설가가 한탄하는 현실 이상으로 험악하다. 사람들은 모두 타인을 향해 핏대를 세우고 누구든 걸리기만 하면 가만 두지 않겠다는 듯 살기를 품은 듯 살벌하다. 실제로 그렇다. 

‘버스에 불 지르고, 트럭 몰고 돌진하고, 염산 뿌리고’ 몇 해 전 연합뉴스에 실린 기사 제목이다. 반정부 시위가 아니라 화를 참지 못하고 저지른 범죄를 다룬 기사 제목이다. 전남 여수에 사는 69세의 문모씨는 3000∼4000평 되는 자신의 땅을 정부가 수용·보상을 해주지 않는다는데 불만을 품고 불을 질렀다.

광주에 사는 33세의 임모씨는 ‘정신병원에 재입원 시켜달라’는 자신의 요구를 병원 측이 거절했다는 이유로 염산을 병원 직원에게 뿌렸다. 해병대 출신의 45세 김모씨는 ‘태블릿 PC 보도로 전 국민이 고충을 겪는 등 세상이 시끄럽다’며 언론사 사옥에 트럭을 몰고 돌진했다. 

이같은 사례는 그나마 이유라도 있지만 순간적인 감정을 못 참고 돌이킬 수 없는 사고를 저지르는 어이없는 경우도 많다. 서울의 50대 분식집 주인은 평소 알고 지내던 손님과 술을 마시다 국물이 짜다는 말에서 시작된 말다툼 끝에 주방에서 들고 나온 흉기로 고객을 찔러 숨지게 했다. 차선을 양보하지 않는다며 삼단봉을 마구 휘두르는가 하면 주차 시비에 야구방망이로 위협을 하거나 결별 요구에 차량으로 여자 친구를 들이받는 사건도 있었다. 뒤차가 경적을 울렸다는 이유로 쫓아가 보복하는 사건도 비일비재하다. 

대낮 시골 주택가에서 소란이 있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관 2명이 흥분한 범인을 달래는 과정에서 갑자기 휘두른 흉기에 목 부위를 다쳐 숨지는 일이 일어나고 응급실에서 자신을 치료하는 의사를 폭행하는 일이 다반사로 벌어진다. 취객의 폭행으로 119 구급대원이 숨지고 욕설을 말리다 폭행당한다. 구급대원 폭행 사건은 지난해 경기도에서만 33건이 발생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공권력도 무차별 공격에 노출

범죄로 이어져 처벌되는 수가 이 정도이고, 사소한 말다툼, 극단으로 치닫지 않아 사법처리가 되지 않은 감정 싸움은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우리나라의 범죄 유형 중 폭력이 80%를 차지한다는 통계가 있다. 2015년 발표한 통계에 따르면 폭력범은 모두 36만6000여명. 그 중 15여 만 명이 순간적인 감정을 조절하지 못해 저지른 우발적 범죄다. 10명 중 4명이 홧김에 범죄를 저지르는 것이다.

이 모든 사건의 유발자는 화(火), 분노다. 대화로 풀거나 문제의 근원은 차분히 살피려 하기보다 일단 큰소리로 상대방을 제압하려들고 여의치 않으면 폭력을 행사한다. 

우리는 왜 이렇게 화를 내는 것인가? 해석이 다양하다. 매일경제 전호림 기자는 2011년 자사에 실은 칼럼에서 비교 심리가 한국인 분노의 원인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불공정과 모럴해저드가 누적되면서 한국사회에는 분노의 에너지가 채워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버스나 전철을 타보면 중·고등학생들의 언어가 얼마나 험한지 놀라게 된다. 부모의 스트레스가 이전됐건 과중한 학업부담이건 위험한 수준이다. 택시 기사들의 언어에서도 폭력성이 느껴진다. 퇴근 후의 선술집은 불만과 성토가 난무한다. 사회 곳곳이 부싯돌만 두드리면 폭발할 것 같은 모습이다. 이를 증명하듯 터무니없이 사소한 일로 사람을 죽이고 흉기를 든다. 사회에 대한 이런 불신과 분노는 상대방을 인정하지 않는 문화를 만들어 소통 부재의 위험한 지경으로 만들어가고 있다”며 분노에 찬 한국의 모습을 묘사했다. 

한국인의 화가 대부분 인간 관계에서 나온다는 분석도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화병이다. 1970년대 미국 의학계는 이상한 병을 보았다. 얼굴이 화끈 달아오르거나 가슴이 두근거리고 답답하여 불안 초조증세를 보이는 병이었다. 기존 의학 서적에는 없는 병이었다.

미국 의학계는 본격적인 연구에 들어가 1996년 그 원인과 증상을 밝혀내 ‘화병(Hwabyung)’이라는 병명을 지었다. 한국인 중에서도 중년이상의 여성들에게만 나타난다는 이 병은 화가 나서 생기는 병이다. 원인은 주로 배우자 외도나 시댁식구들과의 갈등을 풀지 못하고 마음에 담아놓고 살다 생긴다. 

그래서 화를 누르고 분노를 치유하려는 시도도 많다. 상담전문가 심리학자들이 그 앞에 서있다. 국회도서관에서 ‘분노’를 키워드로 검색하자 4492건의 논문 책자 자료 등이 도출됐다. 그만큼 분노에 관한 연구가 활발하다. 종교에서도 ‘화’ ‘분노’는 아주 중요한 문제로 다룬다. 가톨릭에서는 화를 7대 죄악 중 하나로 포함시킨다. 탐욕 오만 시기 분노 나태 식탐 색욕 7가지 죄악 가운데 가장 타락하고 개선이 불가능한 죄를 분노로 여긴다. 기독교가 악마 중에서도 최악의 악마로 여기는 사탄이 바로 분노의 화신이다. 

기독교도 화 분노의 감정을 아주 무겁고 중대한 감정으로 받아들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기독교는 이에 관한 학문적 연구도 활발하다. 목회자 자녀 분노 연구, 기독교의 분노 인식과 해법, 분노시대 목회 방법 등 다양한 주제를 놓고 연구하고 있었다. 

화 치유 노력 종교계 활발

불교도 분노의 원인을 밝히고 이를 치유하려는 시도를 한다. BBS불교방송은 지난해 우리 사회에 만연한 분노 현상을 짚어보고, 이를 긍정 에너지로 전환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는 기획 프로그램을 마련해 우수 프로그램으로 선정됐다. 

불교방송 박광열 PD가 연출하고 강인숙 작가가 구성한 ‘분노의 시대, 분노의 기술’은 분노의 실체를 들여다보고, 분노의 감정을 어떻게 조절하고 다스려야 하는지, 이를 극복하기 위해 개인과 사회는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지에 관해 살피며 ‘불교의 명상’이 분노를 조절하고 다스리는데 상당한 효과가 있음을 밝혔다. 

불교 수행법으로 분노를 다스리는 수행법 연구도 활발하다. 인경스님과 마가스님이 특히 유명하다. 인경스님은 분노조절 프로그램을 개발해 이를 청소년 등에게 접목하는 등 많은 연구와 체험을 교육한다. 사단법인 자비명상 이사장 마가스님은 화의 원인과 이를 다스리는 법을 주제로 많은 프로그램을 개최한다. 화를 다스리는 명상 수행으로 가장 유명한 스님은 플럼빌리지 틱낫한이다. 스님은 “화가 나고, 분노가 일어나면 밖으로 나가 걷기명상을 하는 것이 좋다”며 걷기 명상을 제안한다. 스님은 ‘화’를 주제로 책을 펴내 한국에서도 선풍적 인기를 끌었다. 

불교, 분노 문제 가장 체계적 해법

불교는 분노 화(火)에 대해 가장 다양하며 깊이 있게 다루고 그 해법도 갖추고 있는 종교다. 분노를 다스리고 마음을 고요히하는 수행은 불교의 기본 토대며 뿌리다. 불교는 분노(嗔)를 욕심(貪), 어리석음(痴)과 함께 인간을 고통에 빠뜨리고 무너뜨리는 세 가지 요소(三毒心) 중 하나로 대할 정도로 분노를 심각하게 대한다. 

경전은 삼독심이 “고요하고 청정한 자성을 펄펄 끓게 만들어 중생을 해치는 악의 근본”이라고 규정한다. 육조혜능대사는 “삿된 견해와 삼독심이 곧 진짜 마귀”라고 했다. 삼독심이 인간의 성품을 파괴하고 파멸로 이끄는 원인으로 규정하는 것이다. 불교는 그래서 이 세 가지 독을 씻고 두 번 다시 반복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끝없이 한다. 

분노의 원인과 해소 방법에 대해 교리 체계가 분명하고 수행이 발달한 불교가 분노로 불타는 사회를 향해 활동을 펼쳐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마가스님 인경스님 등 명상 수행을 통한 분노 조절 수행 프로그램을 더 확대 강화하는 한편 사회운동으로 범위를 확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출판기획사업을 하는 곽혜란씨는 “우리 사회가 언제부터인지 분노로 가득찬 위험 사회라는 사실을 여성으로서 더 심각하게 느낀다. 정말 언제 어디서 죽임을 당할지 아무도 알 수없을 정도로 화난 사람이 도처에 도사리고 있다. 마음을 고요하게 하고 생명을 중시하는 불교가 화를 다스리는 범국민 계몽운동이라도 펼쳤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불교신문3497호/2019년6월22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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