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여름 예초작업 중인 장병들의 모습.
초여름 예초작업 중인 장병들의 모습.

잠깐의 봄이 가고, 땡볕 무더위를 간직한 유월이 시작됐다. 군대에는 여름과 겨울밖에 없다던 누군가의 푸념을 믿지 않았건만, 어느 순간부터 격하게 공감하며 군법당에서의 다섯 번째 여름을 맞이하고 있다.

젊은 청년들의 근기에 맞춰 이루어진, 군복무 여건 개선으로 병사들의 생활이 조금은 나아졌지만 여전히 무더위는 병사들에게 참기 힘든 어려움이고 큰 난관이다. 특히나 부대 곳곳에서 쉴 새 없이 자라나는 무량무변한 잡초를 제거하기 위한 예초 작전으로 매 여름마다 병사들은 치열한 싸움을 해야 하기에, 여름은 여러모로 힘든 계절이다. 잡초와의 전쟁은 법당 또한 예외는 아니어서 조금이라도 덜 뜨거울 때, 최대한 신속하게, 풀 한 포기라도 더 뽑기 위한 울력이 한창이다.

법당에서 풀을 뽑을 때마다 생각나는 추억이 있다. 어릴 적, 깨끗한 걸 무척이나 좋아하시던 노스님을 기쁘게 해드리고픈 향심으로, 구석구석 풀을 뽑고 있을 때였다. 유난히 계단이 많고, 마당이 넓었던 우리 절은 계단 초입에서부터 마당, 요사채까지 몇날며칠에 걸쳐 풀을 뽑고 ‘다했다’할 때쯤이면, 절 입구에 도로 풀이 잔뜩 커 있었다.

그러다보니 싹틔우는 늦봄부터 서리 내리는 늦가을까지 무한 반복되는 풀뽑기가 지긋지긋하고, 땅에서 솟아나는 원수처럼 느껴졌다. 그럴 때 잠시 꾀부리고 있노라면, 어느새 노스님께서 곁에 다가와 ‘풀을 뽑는다 생각말고, 내 마음 속 번뇌를 뽑는다 생각하면, 꾀부릴 수가 없다. 풀뽑는 것도 수행이다’라고 정말 자상한 음성으로 말씀하시며, 작업 개시를 재촉하시곤 했다. 내 마음 속 번뇌를 뽑아내듯 하라는 말씀에 다시 풀을 뽑으면서, 한편으로는 ‘노스님의 일 시키는 방법이 참 고단수이시다’라고 생각하곤 했다.

어렸을 적에는 풀뽑는 것도, 방을 닦는 것도, 밥을 하는 것도 다 수행이라고 하는 어른들의 말씀이 마음에 와닿지 않았다. 하기 싫은, 혹은 어쩔 수 없이 하고 있는 심신(心身)의 고달픔을 수행이라고 미화하는 것 같아, 왠지 모르게 불편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스님이 그렇다고 하셨으니, 그만한 이유가 있겠지’ 하는 생각에 억지로라도 따르고자 노력했다. 

군법당에 와서 군종병들과 도량에 풀을 뽑다보면, 이런 이야기들을 한다. ‘이렇게 애써 자란 풀을 꼭 뽑아야 겠느냐’, ‘법사님 잔인하다’, ‘꽃이 예뻐서 풀뽑으려니 마음이 아프다’ 등 번뜩이는 재간으로, 풀뽑는 나를 ‘핍박’하곤 한다. 때로는 잡초는 뽑지 않고, 힘들게 심어놓은 꽃을 초토화시켜 버리는 악행도 서슴지 않는다. 그럴 때면 가랑비에 젖은 옷처럼, 우리 노스님께 배운 ‘풀 뽑는 마음가짐’에 대해 설법하며, 꾀부리는 군종병의 수법에 속지 않는 강한 정신력과 전투력으로 법당 울력을 지휘하곤 한다.

어쩌면 내 어릴 때처럼, 병영생활 자체에 지친 장병들에게 ‘풀뽑는 것도, 군복무하는 것도 수행’이라는 말은 쉽게 공감하기 어려울 것이다. 때론 심신의 고달픔을 수행으로 여기라는 조언이 가혹하게 느껴지기도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억지로라도 따르고자 노력했던 나처럼 하기 싫은, 혹은 어쩔 수 없이 하고 있는 일들을 통해 마음의 번뇌를 뽑는다 생각하라고 당부한다. 그렇게 하다보면 어느 순간 고요한 집중이 일상화되고, 내면이 안정되며, 자신에 대한 자부심과 가치를 갖게 되리라 단언한다.

좋은 수행과 좋은 수행처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군부대의 많은 장병들은 ‘부대’를 수행처로, ‘군복무’를 수행으로 여기며, 오늘도 온종일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해 헌신하고 있다. 이처럼 수행처에서 애써 수행하는 많은 수행자들이 언제나 행복하고, 가는 곳마다 평화롭길 간절히 두 손 모은다.

[불교신문3497호/2019년6월22일자]

저작권자 © 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