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격있는 ‘불교묘비’는 한 불자의 정체성과 신심 자체”

수행력 있는 스님 부도비
재발심하게 하는 힘 있듯
묘비 품격 잘 갖추어 주면
유족들에게 위로도 되고
망자의 덕행 함께 추모하는
가족 화합장소가 되는 것…

가끔 공동묘지를 찾게 된다. 늘 말없이 지지해주시던 신심이 돈독한 보살님이 최근 갑작스레 돌아가셔서 유족과 함께 공동묘지를 찾았다 묘비를 유심히 살펴보았다. 그러면서 ‘불교계도 묘비의 품격을 갖춰야 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공동묘지의 특성상 일정한 공간 안에 여러 형태의 많은 묘비들이 있다. 공동묘지 내의 묘비를 살펴보면 우리나라 종교 현황의 축소판이다. 즉, 2015년 인구주택 총조사에서 대한민국 종교 분포는 무종교인 55%, 종교인 45%이다. 종교인은 불교 16%, 개신교 20%, 가톨릭 8%, 나머지 1%이다.

이는 공동묘지에서도 그대로 펼쳐져 있다. 종교 분포대로라면 묘비 100기 중 16기는 불교식 묘비여야 한다. 그래서 지난 6월 총1788기의 묘가 조성돼 있는 태백시 공동묘원에서 702기를 대상으로 묘비에 새겨져 있는 종교현황을 표본 조사했다. <표 참조> 
 

불제자(佛弟子)의 관점에서 공동묘지의 묘비를 살펴보면 두 가지의 문제점이 있다. 첫 번째는 품격이 갖추어져 있지 않은 점이고, 두 번째는 불자 묘비수가 불교 비율인 16%만큼 설치돼 있지 않다는 점이다.

묘비의 품격과 숫자는 상관관계가 있다고 본다. 불자 묘비의 품격이 갖추어져서 유족들이 뿌듯함을 느끼고 남들 보기도 좋고 의미 있는 장소가 되면 저절로 불자 묘비도 늘어날 것이다. 간혹 무종교인은 묘비에 고인을 추모하는 글귀로 아름다움과 따스함을 입힌다. 무엇보다 불교 신자의 묘비는 개신교나 가톨릭 신자들의 묘비와 대조된다는 것이다. 개신교나 가톨릭 신자들의 묘비는 묘비에서 ‘나는 개신교 신자다’ ‘나는 가톨릭 신자다’라는 정체성과 믿음이 느껴진다. 자랑스럽게 묘비에 새긴다. 

하지만 불자들은 묘비를 어떻게 하는지를 몰라서, 지관(地官)이나 석공(石工)이 알려주는 대로 유교식으로 표기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나마 스스로 처사(處士), 만(卍) 등을 표기한 것을 보면 고맙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래서 ‘품격을 갖춘 불자 묘비를 조성하자’고 제안한다. 묘비(墓碑)의 사전적 의미는 ‘무덤 앞에 세우는 비석으로 죽은 사람의 신분, 성명, 행적, 자손, 출생일, 사망일 따위를 새긴다’이다. 불교에는 격식을 갖춰 돌아가신 분을 표현하는 형식으로 엄부(嚴父)-본(本)-후인(后人), 자모(慈母)-본(本)-유인(孺人), 불명(佛名), 복위(伏爲) 등이 있다. 여기에 생전의 덕행(德行), 즐겨 쓰던 부처님 말씀 또는 가족들과 나눈 말씀을 추가하면 품격을 갖춘 묘비가 될 것이다. 

혹자는 무덤 앞에 세우는 비석이 무슨 대단한 것일 수 있냐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소승의 경험상 망자를 분묘에 모시고 비석을 세우는 유족은 망자에 대한 정과 공경심이 남다르다. 승가에서 묘비의 품격을 갖추어 주면 유족들에게 그 자체로 위로가 되고 망자의 덕행을 추모하고 묘비는 가족이 화합할 수 있는 장소가 되는 것이다.
 

태백 장명사 주지 자엄스님이 한 공동묘원을 돌아보고 기왕에 세워야 할 묘비라면 불자로서 자부심을 가질 수 있는 ‘상징’을 만들자고 제안했다. 사진은 만(卍)자 표시된 묘비. 사진제공=자엄스님
태백 장명사 주지 자엄스님이 한 공동묘원을 돌아보고 기왕에 세워야 할 묘비라면 불자로서 자부심을 가질 수 있는 ‘상징’을 만들자고 제안했다. 사진은 만(卍)자 표시된 묘비. 사진제공=자엄스님

나아가 잘 갖추어진 묘비는 그 자체가 불법(佛法)이고 포교가 된다. 유족들은 자연스럽게 사찰을 방문하고 스님과 차 한 잔 마시게 된다. 그러면 사찰 또한 망자를 추모하고 가족들이 화합할 수 있는 공간이 된다. 나아가 불교로 발심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가령 수행력이 있는 스님의 부도비를 살펴보자. 부도비 그 자체는 재발심하게 하는 힘이 있다. 보통 비문에는 스님의 출생에서부터 문중이나 국가에서 스님의 덕을 기려 예우한 사실과 입적하기까지 행적이 실려 있다. 물론 부도비의 장엄함이 주는 위엄도 무시하지 못한다. 하지만 부도비에 담겨져 있는 의미와 추모하는 마음이 발심으로 이끌고 불제자로서의 삶을 되돌아보고 새롭게 다짐하는 시간을 갖게 한다. 

재가자의 묘비 또한 마찬가지이다. 고승들의 부도비와 같은 장엄한 위엄과 격식을 갖추지 않는다하더라도 어느 정도 형식과 품격을 갖추면 그 자체가 긍정적인 효과가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포교는 큰 그림을 그리면서 먼 미래를 계획하고 준비하는 거시적인 면도 필요하지만, 불자들의 일상생활 가까이 다가가서 삶을 행복하고 보람있게 살 수 있도록 도와주고 안내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들에게는 작은 것부터 챙겨주는 것이 관심이고 배려다.

[불교신문3497호/2019년6월22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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