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하루 피어나는 삶에 감사할 뿐입니다”

작년 목동청소년수련관장 퇴임
사진전 열어 주변이웃에 회향
중창불사와 지역 나눔으로
마포구 대표사찰로 일신
출가 좌우명 ‘초심 그대로’
실천하는 ‘아름다운 인생’

석불사의 명물인 돌부처님 앞에선 경륜스님.
석불사의 명물인 돌부처님 앞에선 경륜스님.

경륜(暻輪)스님은 1998년부터 일하던 서울시립 목동청소년수련관 관장 직에서 지난해 12월 물러났다. 영광스러운 정년퇴임이다. 청소년들이 지역사회에 직접 참여해 소통할 수 있는 활동의 장을 마련하고 올바른 가치관 형성 및 건전한 성장에 기여했다. 인정도 받았다.

2017년 여성가족부 선정 최우수청소년수련시설에 올랐다. 개인적으로는 작년 제20회 전국불교사회복지대회에서 국회의장 공로상을 받았다. 수련관 직원들은 스님을 위해 정년퇴임 기념 동영상을 손수 촬영해 헌정했다. 그만큼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줄 아는 스님이다.

5월의 마지막 날,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마포 석불사에서 오랜만에 스님을 만났다. 올해 한국 나이로 예순 일곱인 스님은 은퇴 이후 한가롭고 평온하게 지내는 중이다. 퇴임식을 겸해서 사진 전시회를 열었던 것이 최근엔 가장 ‘큰일’이었다. <꽃-검이불루(檢而不陋) 화이불치(華而不侈)>. 사진들을 모아 책으로도 엮었다. 석불사 주변에 핀 꽃들을 접사(接寫)로 찍었다. 흔한 꽃들이지만 가까이 들여다보면 또 다른 매력을 발견할 수 있는 꽃들이다. 세상을 향한 스님의 마음이 또한 그렇다.  

중학교 시절에 처음 사진에 입문했다. 딸이 갖고 싶다고 조르자 부모님이 작은 올림푸스 카메라를 사줬는데 사진을 찍고 인화해서 친구들에게 선물했다. 부모님은 만행에 나선 스님들이 기거할 방을 집안에 따로 마련해둘 만큼 독실한 불자 부부였다. 여른들의 성정을 빼닮아 어렸을 때부터 뭘 그렇게 주는 걸 좋아했다. 이제는 대한민국 국제포토페스티벌에 꾸준히 출품할 정도로 실력자다. 스님에겐 사진 찍기란 취미이면서 수행이다. 일상에서 만나는 평범한 사물과 사람들을 깊이 관찰하면 모두가 부처님이요 불국토란 마음으로 셔터를 누른다.

전시회도 과시가 아니라 보시다. ‘내가 사진전을 한다고 해서 직원들에게 무슨 도움이 될까. 그저 윗사람의 으스대기로만 비춰지지 않을까’ 싶었다. 그래서 사진을 팔아 그 수익금을 직원들에게 주기로 했다. 그렇게 수련관에는 1500만원의 공금이 더 생겼다. 퇴임식 날 그들이 보여준 각별한 석별의 정은 그냥 나온 것이 아니었다. 사람의 마음을 얻으려면 우선 내 마음을 다 내주어야 한다는 교훈을 얻는다.

스님을 만난 날 오전 석불사는 보수공사가 한창이다. 지난 반세기 동안 꾸준한 중창불사로  성장한 사찰이지만, 아무래도 오래된 절이어서 1년에 한번씩은 손을 봐야 한다. 석불사(石佛寺)는 서울 마포 한강변 주택가에 있는 절이다. 구한말부터 서울 시내를 달리다가 1969년 사라진 전차의 종착역이 이 근처다. 흘러간 유행가 ‘마포종점’의 배경이기도 하다.

지난 30년의 세월을 돌이켜보면, 경륜스님이 석불사고 석불사가 경륜스님이다. 역사는 300년을 헤아리나 퇴락하던 절을 주지로서 다시 일으켰다. 연령 90대부터 30대까지 다양한 세대의 비구니 스님 20명이 일가를 이뤄 1인 가구시대 가족애의 전형으로 호평받기도 했다.

인재불사도 결실이 컸다. 석불사는 1970년대부터 50년 가까이 매년 가족수련회를 열고 있다. 할아버지는 아버지 손을, 아버지는 아들의 손을 잡고 온다. 3대에 걸친 두터운 신도층은 석불사 스님들이 자기 자식처럼 자기 부모처럼 아끼고 섬겨온 공덕이다. ‘소나기(소통·나눔·기쁨)’란 이름으로 신도들과 함께 지역사회 봉사단체를 만들어 부지런히 뛴다.

알다시피 ‘주지’는 사찰을 관리하는 스님을 가리킨다. ‘주지’의 ‘주’는 주인 주(主)가 아니라 머무를 주(住)를 쓴다. “주지는 절의 주인이 아니다. 절을 지키는 사람일 뿐이다”라는 게 경륜스님의 지론이다. 신도와 마을사람들이 석불사의 주인이다. 

보살행은 절밖에도 두루 퍼져 있다. ‘최초의 스님 주민자치위원장’이란 이력에서도 사람에 대한 진정성을 읽을 수 있다. 마포구 도화동 주민자치위원장으로 일하며 바쁜 시간을 쪼개 주민들의 이런저런 민원해결을 돕고 불우이웃돕기에도 열성적으로 나섰다. 인간에 대한 순수한 관심과 애정 없이는 못할 일이다. 결국 마을과 함께 호흡하는 석불사는 지역불교의 위상을 크게 높였다. 스님은 이렇듯 사회의 어른으로서 할 일을 다 했다.

스님은 올해로 출가한 지 45년이 됐다. 1974년 아산 봉곡사에서 출가수행자로서의 삶을 시작했다. 법보종찰 해인사와 부산 해운정사를 오가며 당대의 큰스님들이었던 향곡스님과 일타스님의 지도를 받으며 안거 수행했다. 석불사 처소에는 ‘불망초심(不忘初心)’이라고 쓰인 액자가 걸려 있다. ‘처음 시작할 때의 그 마음을 잊지 말라.’ 큰 스승이 되라는 부모님의 격려가 맺힌 마음이며, 45년간 한시도 잊어본 적 없는 마음이며, 45년 동안의 전법이 입증하는 마음이다.

“가장 중요한 출가는 오도(悟道)출가입니다. 정신으로부터의 자유입니다. 나쁜 기억과 마음의 상처는 벗어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꾸준히 수행을 해야 합니다. 기도하고 참선하고 염불하면서 번뇌를 극복할 힘을 길러야 합니다. 비록 몸은 출가를 하지 않았더라도 기도하고 참선하고 염불한다면 마음은 출가를 한 것입니다.”

“하루에 한 가지 이상 좋은 일하고, 열 번 이상 웃고 백자 이상 글 쓰고 천자 이상 글 읽고 만보 이상 걷자”는 게 스님의 건강법이고 스님다운 건강법이다. 물론 출가수행자에게 중생교화는 평생의 과업이다. 그러므로 스님은 은퇴를 했지만, 은퇴란 없다. 생로병사는 스님에게도 예외 없이 닥쳐왔다. 8번의 큰 수술을 견뎌왔다. 삶의 주변에 대한 사진을 찍다보면 생명의 강인함을 새삼 느낀다. 돌 틈이든 흙 틈이든 무언가가 끊임없이 자란다. 힘닿는 날까지, 어둡고 낡은 빈틈에 있는 생명들을 바라보며 또한 아껴주며 살아갈 참이다. 스님의 퇴임 기념 사진집은 그간의 인생을 돌아보는 이정표이기도 하다. 사진도 아름답지만 다짐도 아름답다. “제각기 아름다운 꽃들처럼, 나 역시 하루하루 피어나는 삶에 감사합니다.”
 

경륜스님 사진집 <꽃-검이불루 화이불치>

경륜스님이 펴낸 사진집 <꽃-검이불루(檢而不陋) 화이불치(華而不侈)>은 모두 근접촬영으로 찍은 사진들이다. 개나리 붓꽃 선인장꽃 눈꽃 밤꽃 접시꽃 할미꽃 등등 우리의 산하에서 볼 수 있는 90여 종의 꽃들을 코앞에서 찍었다. 미시적인 접사로 아름다운 꽃의 강한 생명력을 일깨워준다. 따뜻하고 간결한데 하나같이 어떤 힘을 품고 있다.

누가 알아주든 알아주지 않든 저마다의 저력으로 인생을 힘껏 꽃피워가는 우리들의 모습을 닮았다. ‘검이불루(檢而不陋) 화이불치(華而不侈)’란 검소하지만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않다는 뜻이다. 작고 가녀린 생명들에게서 중도(中道)의 이치를 발견하고 있다. 중간 중간에 삽입한 경구(警句)들도 울림이 크다.
 


경륜스님은...
1974년 아산 봉곡사에서 묘각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그해 법주사에서 석암스님을 계사로 사미니계를, 1977년 통도사에서 월하스님을 계사로 비구니계를 수지했다. 수원 봉녕사승가대학과 중앙승가대학교를 졸업했으며, 석남사 등에서 7안거를 성만했다. 제12, 13, 14대 조계종 중앙종회의원을 역임했다. 2018년 12월까지 서울시립 목동청소년수련관 관장으로 일하며 청소년포교에 크게 기여했다. 현재 석불사 주지로 일하고 있다.

[불교신문3497호/2019년6월22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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