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60주년 맞이 특별기획
‘상구보리 하화중생’ 현장③
10주년 맞은 제따와나선원 수행현장 탐방

지난해 춘천에 수행도량 건립
현재 16명 상주하며 정진 중
“나를 있는 그대로 관찰하고 
번뇌를 덜어내는 게 수행”  

개원 10주년을 제따와나선원은 부처님의 가르침에 근거한 초기불교 수행을 보급하고 있다. 사진은 춘천 수행도량 전경
개원 10주년을 제따와나선원은 부처님의 가르침에 근거한 초기불교 수행을 보급하고 있다. 사진은 춘천 수행도량 전경

 

초기불교는 2000년대 초반부터 부각됐다. 초기불교 수행법 ‘위빠사나’를 주제로 한 학술세미나 또는 위빠사나를 지도하는 미얀마 고승 초청 수련회가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열렸다. 초기불교 수행법의 최대 장점은 ‘실용성’에 있다. 수행을 하게 되면 몸과 마음의 변화가 점진적이고 즉각적으로 일어나는 덕분에, 많은 사람들이 매료됐다.

대승불교의 정통수행법인 ‘간화선(看話禪)은 어렵다’는 푸념과 비판이 커질수록 그 인기는 더 널리 뻗어나갔다. 제따와나선원도 초기불교를 익히고 가르친다. 마침 올해 개원 10주년을 맞았다. 지난해 강원도 춘천에 대규모 수행도량을 건립하면서 새로운 이정표를 세웠다. 현재 16명의 스님과 재가불자가 상주하며 수행하고 있다.

제따와나선원은 선원장 일묵스님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수행공동체다. 서울대 출신 출가자로 처음부터 꽤나 유명세를 탔다. 성철스님의 <백일법문(百日法門)>을 읽으면서 불교에 눈을 떴다. 이후 불교를 가볍게 공부만 하다가 어느 날 갑자기 극심한 죽음의 공포가 엄습하면서 크게 느끼는 바가 있었다.

성철스님의 상좌인 원택스님(백련불교문화재단 이사장)에게서 머리를 깎았다. 출가 초기엔 다른 스님들처럼 전국 선방을 다니며 간화선을 수행했다. 나름 열심히 참선을 했지만 깨달음이 좀처럼 잡히지 않았다.

실망하고 방황하던 와중 초기불교 수행의 존재를 알게 됐다. 본인이 절실하게 궁금해 하던 문제에 대한 해답을 줄 수행법이라 확신했고 내쳐 미얀마까지 유학을 떠났다. 2008년 미얀마 파욱 사야도를 초청해 한 달 간 집중수련회를 열었고 큰 반향을 일으켰다. 불자들의 관심이 커졌고 신도들도 늘었다.

2009년 3월 서울 방배동에 위치한 단독주택을 빌려 선원을 열었다. “사부대중이 다 같이 모여 부처님의 삶의 방식을 따르며 법을 배우고 수행하자”는 원력을 세웠다. 불교의 원형을 추구하는 마음은 제따와나란 이름에서도 드러난다. 부처님이 <금강경>을 설했던 장소인 기원정사를 가리킨다.
 

목표는 10년 만에 이뤄졌다. 작년 10월 춘천에 어디에도 꿀리지 않을 선원 건물을 새로 마련했다. 선원은 부지 약 1만1570㎡(3500평), 연면적 약 1983㎡(600평) 규모로 법당과 선원, 공양간 종무소 지대방 등 전체 7개 동으로 구성됐다. 외관은 웅장하면서도 이국적이다.

기원정사의 모습을 그대로 본 따 건립된 점이 특징이다. 실제로 파키스탄에서 벽돌 30여 만 장을 수입해 선원 외벽을 쌓았다. 법당 부처님 역시 인도 초전법륜지인 사르나트 박물관에 봉안된 불상을 모티브로 삼았다. 불교의 본질을 구현한다는 자부심이 우러나는 구조다.

수행전문도량으로서의 효용성도 돋보인다. 수행프로그램을 진행할 경우 50여 명 정도의 인원이 수용 가능하다. 특히 스님 숙소 8곳, 재가자 숙소 17곳 등 총 25곳의 숙소를 작은 선방 개념으로 만들었다. 스님이든 재가자이든 누구나 조용히 선원에 머물며 수행에 전념할 수 있도록 했다. 하루 3만원이면 먹을거리와 잠자리를 해결할 수 있다. 일반인들에겐 더없이 훌륭한 수행환경이다. 
 

특히 8박9일 간의 집중수행이 인기가 좋다. 좌선하고 좌선을 통해 얻은 경계에 대해 선원장 스님으로부터 점검을 받고 다시 좌선하고… 얼핏 단조로운 일상의 반복이다. 그러나 삶의 더께를 꾸준히 덜어낸 만큼 삶은 점점 더 가벼워진다.

일묵스님은 “수행이란 결국 쓸데없고 무의미한 번뇌를 털어내는 과정”이라며 “오랜 시간 수행을 지속해나가다 보면 정말로 번뇌가 줄어들게 되고 그래서 직접적으로 효과를 본 사람들이 수행의 맛에 더욱 빠지게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매주 수요일은 제따와나선원 정기법회가 열리는 날이다. 지난 5일 선원을 찾았다. 잠실역 5번 출구에서 아침마다 셔틀버스가 다닌다. 30여 명의 신도들이 동행한다. 

한준희(73) 씨는 10여 년 전 직장생활을 하다가 은퇴했다. 평소 불교에 관심이 많아 예전부터 인천 용화사 법보선원에서 화두를 들었다. 하지만 도통 진전이 없었고 공부에 대한 절실함도 느껴지지 않았다. 지지부진하던 와중 “작년 2월 방배동 제따와나선원 회향법회에 우연히 참석했다가 이른바 정신적인 개벽을 맞았다”고 털어놨다. ‘깨달음은 나중 문제이고 어떻게 하면 조금이라도 행복해질 수 있나?’

제따와나에 적을 두고 열심히 정진을 하면서 서서히 길이 열렸다. 낚시를 하면서 무심코 벌레를 잡으면서 얼마나 많은 죄를 지었는지 생각하게 됐고 이를 뉘우치면서 자아가 점점 맑아졌다. 인생을 조급하게 대하거나 두려워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덤덤히 볼 수 있게 됐다. 나만 생각하고 살던 마음이 이제는 완전히 바뀌었다. “지금 당장 죽어도 좋다. 이대로 쭉 가기만 하면 된다”는 확신에는 범상치 않은 안목이 느껴졌다.
 

안미경(44) 씨는 박사과정까지 마친 과학자다. 뉴질랜드에서 20년간 머무르며 명상센터에 다니기도 했다. 수행에 잔뼈가 굵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이제는 제따와나선원에 정착했다.  “나는 누구인지 어디로 가야 하는지 완전히 깨달았다”고 했다.

월심 행자(30)는 한준희 씨의 룸메이트였다. 친구가 유튜브에서 일묵스님의 법문을 듣고는 한번 가보라 해서 왔다가 아예 눌러앉았다. 지난 4월 출가해 스님으로서의 길을 걷는다. 말수가 적은 편인 청년인데, 주변사람들이 그의 ‘변화’를 대신 증언해준다. 해맑아지고 씩씩해졌다. “처음 만났을 때는 이런 성격이 절대 아니었다”고 귀띔한다. 그들이 수행을 통해 무엇을 봤는지는 정확히 모른다. 다만 매우 행복해보이고 자신감이 넘치는 것만은 분명해 보였다.

초기불교를 표방하는 제따와나선원의 가장 큰 특징은 교학에 근거한 수행을 가르친다는 점이다. 부처님이 직접 설명한 깨달음을 단계별로 쪼개 친절하고 세밀하게 설명한다. 연기(緣起)와 무아(無我)와 중도(中道)를 언어나 개념이 아니라 실제로 체험하고 목격할 수 있는 셈이다.  

일묵스님은 “간화선이나 초기불교 수행이나 무엇이 더 우월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면서도 “다만 수행의 의미와 이유에 대해 좀 더 명확하고 친절하게 가르쳐주니까 위빠사나에 사람들이 몰리는 것이라 본다”고 짚었다.

수행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다. 수행의 방법이 무엇이고 장단점이 무엇이건 간에 결국은 행복하자고 깨달으려는 것일 것이다. 초기불교 수행의 핵심은 반조(返照)다. 마음을 되돌려 관찰하는 일이다. 바깥의 대상을 탓하지 않고 대상을 탓하고 있는 내 마음을 가만히 바라보면 차분해지고 누그러진다. 감정을 드러내면 감정적인 사람이 된다.

감정을 마구 드러내는 사람을 훌륭한 사람이라 하지 않고 행복한 사람이라고도 하지 않는다. 곧 앞서 수행의 성취를 보여준 사람들은 자신을 내려놓는 연습에 숙달한 사람들일 것이다. 일묵스님은 정기법회에서 <법구경>를 토대로 법문했다. 나를 ‘남 보듯’ 하라, 거기에 행복이 있다’는 말이 묵직하게 다가왔다. 

춘천=장영섭 기자 fuel@ibulgyo.com

[불교신문3496호/2019년6월19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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