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총무원 문화부장 종민스님 영결식 엄수
전 총무원 문화부장 종민스님 영결식 엄수
  • 이성수 기자
  • 승인 2019.06.14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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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타스님 “불법의 빛을 주는 연이 되게 하소서”

‘산사…’ 유네스코 세계유산 지정
어려운 이웃 돕고 인재불사 앞장
신도들의 오열 속에 옥천암 떠나
평소 “불은 보답하는 길…” 자문
원로의원 성타스님이 영결식에서 법어를 하고 있다.
원로의원 성타스님이 영결식에서 법어를 하고 있다.

“몸은 죽어도 업보는 살아서, 육도를 흘러 다니는 것이니, 원컨대 이 몸이 백 번 천 번 죽더라도, 이 땅에 불법의 빛을 주는 연이 되게 하소서.” 원로의원 성타스님(불국사 회주)은 지난 6월13일 오전 5시30분 동국대 일산병원에서 엄수된 ‘종민 종사 영결식’에서 법어를 설했다.

중앙종회장(葬)으로 엄수된 영결식에는 원로의원 성타스님, 불국사 주지 종우스님, 기림사 주지 덕민스님, 중앙종회 사무처장 호산스님, 장례위원장 성행스님, 전 사회부장 정문스님, 사회복지재단상임이사 보인스님, 중앙종회의원 만당·우봉·심우 스님, 총무원 문화국장 효신스님 등 100여 명이 참석했다. 종민스님은 지난 11일 법납 31세, 세수 59세로 입적했다.
 

종민스님의 속가 형인 혜봉스님이 유가족을 대표해 인사를 하고 있다. 종민스님은 상좌를 두지 않았다.
종민스님의 속가 형인 혜봉스님이 유가족을 대표해 인사를 하고 있다. 종민스님은 상좌를 두지 않았다.

숙연한 분위기에서 진행된 영결식에서 중앙종회의장 범해스님은 사무처장 호산스님이 대독한 조사를 통해 “사바세계 인연을 마치고 열반에 드셨다는 소식을 듣고 가슴이 답답해져 어찌할 바를 몰라 황망했다”면서 “불문(佛門)에 든 30년 동안 쉼 없이 포교 일선에서 한국불교를 이끈 종단의 동량이었다”고 종민스님의 행화(行化)를 기렸다.

종민스님의 속가 형 혜봉스님은 유가족을 대표해 “다겁생 이래로 인연의 흐름을 막지 못해서 한 가족으로 만났고, 또 다른 인연의 흐름을 막지 못해 아쉬움을 남기고 떠나보낸다”면서 “텅 빈 가슴을 안고 슬픔에 잠겨있는 가족들의 마음을 위로해 주고 모든 마음과 정성을 모아주신 종단과 불국사 스님들에게 감사드린다”고 인사했다.
 

종민스님은 전북 김제에서 태어나 불국사에서 월산스님에게 사미계를, 송광사에서 법룡스님에게 구족계를 수지했다. 법호는 대운(大運)이다. 중앙승가대와 불국사승가대학을 졸업하고 동국대 대학원에서 석사과정을 마쳤다. 총무원 문화부장, 15·16·17대 중앙종회의원, 동국대 법인사무처장 등을 역임하며 종단발전에 헌신했다.

또한 불국사 사회국장, 불국성립요양원장, 서울 약사사와 옥천암 주지로 불법홍포에 앞장섰다. 특히 지난해 총무원 문화부장으로 있을 당시 ‘산사, 한국의 산지승원’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받는데 일조했다.

또한 500여명의 지역 어르신을 초청해 경로잔치를 열고 어려운 이웃들에게 성금과 반찬을 전달하고, 동지 때는 구청, 소방서, 경찰서, 전통시장 등에 팥떡을 나눠주는 등 자비 실천에도 남다른 관심을 기울였다. 이와 더불어 동국대와 중앙승가대 학인스님과 서대문 지역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하는 등 인재불사에도 신경을 썼다.
 

종민스님은 생전에 지인들에게 “나의 인생에서 가장 잘한 결정은 부처님 제자로 출가해 행복한 삶을 살게 된 것”이라면서 “불은(佛恩)과 시은(施恩)에 보답하는 길이 무엇인지 늘 마음에 새기고 실천하고자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상좌를 두지 않은 종민스님의 마지막 길을 배웅한 장례위원장 성행스님(중앙승가대총동문회장)은 “인연을 다하셨지만 그 인연은 불멸(不滅)이라고 생각한다”면서 “금생에 못하신 인연 다음 생에 많은 중생을 위해 또 한 번 큰 가르침을 내려주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영결식이 끝난 뒤 종민스님 법구는 마지막 주석처인 옥천암으로 이운돼 노제를 지내고 신도들의 오열 속에 용인 평온의 숲으로 옮겨 다비 의식을 치렀다. 49재는 옥천암에서 봉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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