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국 곁에 내가 있고 당신이 왔다 당신의 시선은 수국인 채 나에게 왔다 수국을 사이에 두고 우리는 잠깐 숨죽이는 흑백 사진이다 당신과 나는 수국의 그늘을 입에 물었다 정지화면 동안 수국의 꽃색은 창백하다 왜 수국이 수시로 변하는지 서로 알기에 어슬한 꽃무늬를 얻었다 한 뼘만큼 살이 닿았는데 꽃잎도 사람도 동공마다 물고기 비늘이 얼비쳤다 같은 공기 같은 물속이다

-송재학 시 ‘취산화서(聚散花序)’에서


‘취산화서(聚散花序)’에 대해 시인은 이렇게 설명한다. “수국의 꽃차례는, 꽃대 끝에 한 개의 꽃이 피고 그 주위 가지 끝에 다시 꽃이 피고 거기서 다시 가지가 갈라져서 그 끝에 꽃이 핀다.” 이 시를 읽으면 세상의 일이 흩어졌다 모여들고, 모여들었다 흩어지는 것에 다름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마치 수국의 꽃색이 변하는 것처럼 쌓임과 무너짐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당신과 나, 사람과 사람의 인연도 그러할 것이다. 수국의 꽃잎은 물고기 비늘 같다. 그 물고기 비늘 같은 꽃잎이 우리의 눈동자에 얼비칠 적에는 우리가 동일한 공기와 물속에서 살고 있고, 또 ‘같은 내면’을 갖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불교신문3495호/2019년6월15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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