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석스님

얼마 전 중국 북경에서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기 위해 기차를 타려고 북경역에 갔다. 중국대륙의 인구가 북경역에 다 모여 있는 듯 복잡했고 개찰구를 통해 들어가는 사람들의 숫자는 셀 순 없었지만 적어도 기천명이 넘는 것 같았다. 막다른 시간 역에 도착한 나는 그 줄 가장 끝에 서 있었다. 낯선 땅, 그것도 가장 끝에 선 나는 마치 세상 끝자락에 서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때였다.

역내 방송으로 들려오는 소식은 개찰구가 서 있는 반대방향으로 바뀌었다는 방송이었다. 나는 순간 끝자락에 서 있는 위치에서 몸을 돌려 반대편 개찰구로 돌아섰고 가장 끝줄은 가장 첫 줄이 되었다. 나와 함께 몇 줄로 서 있던 사람들은 마치 전쟁터에 나가 승리한 듯한 표정으로 말은 통하지 않았지만 서로를 쳐다보며 짧으나마 웃고 있었다.

물론 개찰구가 바뀌기 전 그 앞줄에 서 있던 사람들의 마음과 표정 또한 상상할 수 있지 않겠는가. 여정의 시간 속에 만난 작은 일이었지만 돌아오고 나서도 한참을 그 때의 그 기분을 생각하게 된다. 순서와 순위가 바뀌고 서열이 바뀌는 과정 속에서 극과 극으로 각자의 기분이 바뀌고 그 속에서 세상의 끝과 끝을 왔다 갔다 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이기 때문이다. 

권불십년(權不十年)이라고 했던가. 권력과 위세가 뛰어나도 영원한 권력과 위세를 떨치는 있는 세상은 없을 것이다. 그래서 그 권력을 잡고 있을 때 권력을 잘 쓸 수 있는 사람이 시간이 지나서도 역사속의 위인으로 존경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살면서 기천명의 기찻줄에서 일등도 그리 좋았는데 권력의 쟁취 앞에서는 어떨까. 평소 쉽게 짐작은 못했지만 인생 최고의 첫 줄에 섰다고 자만심에 빠져 있으면 안 될 일일 것 같다.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 권불십년이라는 말이 그냥 만들어진 말은 분명 아닐 것이다. 그것은 권력의 기쁨에 있었던 사람들이 그 권력을 돌아보면서 만든 말이기 때문일 것이다.

[불교신문3495호/2019년6월15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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