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서 사는 세상이 아니었다
부모님 몸을 빌려 세상에 나왔고
스승님들의 가르침으로 지금까지
세상 속에서 버틸 수 있었다
어디 그 뿐인가, 너무 힘들어
세상을 포기하고 싶을 때마다
나를 일으켜주던 아이들이 있어
희망을 잃지 않고 용기를 …

안혜숙 소설가

비가 멈춘 아침햇살은 눈이 부시게 찬란했다. 대문을 열고 밖으로 나온 내 걸음은 빨갛게 타오르는 장미 한 송이 앞에서 멈춘다. 코를 바짝 디밀지 않아도 향긋한 꽃향기가 내 안으로 스며오고 있었다. 오월이 가정의 달로 정해진 게 장미 때문이라는, 뚱딴지같은 생각이 떠오르고 일 년 중 가장 활기찬 달이 오월이 아닌가 싶기도 했다. 

그러나 내가 맞은 2019년의 오월은 예년과 다르게 마음이 쓸쓸했다. 어쩌면 살아온 날만큼 후회도 함께 쌓여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가슴이 저미는 슬픔이 위로가 되기도 해서 다행이라는 생각으로 가정의 달을 다시 한 번 되짚어 본다.

어린이날이 아니어도 손자 손녀를 보고 있으면 이미 성장한 내 아이들의 옛 모습과 비교가 되어 흐뭇하지만, 순간적으로 내 삶을 우선으로 했다는 자각증상이 아이들을 보는 내 눈이 젖어지면서 가슴이 아려왔다. 최선을 다하지 못한 미안함 때문이었다. 어버이날에는 돌아가신 부모님 마음을 제대로 헤아려 보기는커녕 오히려 늘 원망만 했던 어리석음에 때 늦은 후회로 그리움만 쌓여갔고, 스승의 날에는 한 번 찾아뵌다는 생각만 하다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에 놓쳐버린 세월을 한탄만 했다.

그래서 마음속에 새겨진 스승님을 한 분 한 분 가슴에 품어보면서 그분들의 말씀을 아직도 실행하지 못한 안타까움을 떨치지 못해서 막막하기도 했다. 그래서 스승의 날이 되면 그저 옹색한 변명만 늘어놓기가 일쑤였다. 아, 변명? 갑자기 변명이란 말에 내 가슴이 오그라들고 며칠 전, 전화로 들었던 친한 문우의 말이 갑자기 귓가에 쟁쟁 울렸다.

“얼마나 자기변명을 잘 하는지, 이제는 더 이상 듣고 싶지 않으니 그만 하시지, 이제는 그 변명이 치사하다 못해 추하게 들리거든.”

나는 당혹해서 아무 대꾸도 못했다. 문득문득 그 말이 떠올라 나를 괴롭혔다. 처음에는 말한 그가 밉고 서운했지만 계속해서 곱씹다 보니, 다른 사람들 역시 슬쩍 농처럼 던졌던 말들이 사실은 비난이었다는 걸 알아차렸다. 제일 많이 듣는 말이 자기중심적이라는, 자기밖에 모른다는, 이기적이라는, 마음이 인색하다는 등, 곰곰이 새겨들으면 그들 말이 절대 틀린 말은 아니었다. 특히 독단적이라는 말에는 수긍이 갔다. 무엇이든 혼자 생각하고 혼자 결정했으니 당연한 처사였을 것이다. 그 폐단이 나도 모르게 타인을 상대로 상처를 주었다는 사실에 가슴이 서늘했다.

이제 겨우 나를 돌아보면서 내가 얼마나 교만했었는지도 깨달았다. 나이가 들수록 더 심해진 건 아닌지…. 내가 살아온 방식이 옳았다고 부득부득 고집스럽게 억지를 쓰듯 밀어붙였던 것도 같고, 내 주장만 앞세워 버텼으니 얼마나 추해 보였을까도 싶어 부끄러운 생각도 들었다. 그때서야 늘 겸손해야 한다고 가르쳐 주시던 선생님의 말씀이 새삼 뼛속까지 스며들고, 스승의 목소리는 뼈보다 단단해서 절대 녹아내리지 않는다는 말이 실감났다. 

혼자서 사는 세상이 아니었다. 부모님의 몸을 빌려 세상 밖으로 나왔고, 스승님들의 가르침으로 지금까지 세상 속에서 버틸 수 있었다. 그 뿐인가, 너무 힘들어 세상을 포기하고 싶을 때마다 나를 일으켜 세워주던 내 아이들이 있어서 희망을 잃지 않고 용기를 낼 수 있었다. 그래서 어버이날, 스승의 날, 어린이날을 정해서 그 날 하루만이라도 감사를 드리자는 것이 아닌가. 

그 감사한 마음이 내가 살아가는 삶의 뿌리가 되어 주고, 때로는 등대가 되고 지주대가 되었던 걸 잊고 있었다니 나야 말로 염치없는 인간이었다. 오월을 보내면서 내 삶을 깊이 들여다 볼 수 있는 기회를 준 문우 때문에 이제야 가정의 달 의미를 온전히 가슴에 안을 수 있게 되었다. 

[불교신문3494호/2019년6월12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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