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시사 110년에 깃든 불교의 원융과 자비사상"
"현대시사 110년에 깃든 불교의 원융과 자비사상"
  • 장영섭 기자
  • 승인 2019.06.11 09: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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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시에 내재된
불교 DNA 실증적 '확인'
아름다운 시어 뒤져서
불교의 궁극 건져올리다

현대시에 나타난 불교

이경철 지음 일송북
이경철 지음 일송북

 

현대시에 나타난 불교    

이경철 지음
일송북

한국 현대시사(詩史) 110주년을 맞아 주요 시인 55인의 시들을 불교적 관점에서 살핀 책이다. <현대시에 나타난 불교>의 저자는 지난 30여 년간 일간지 문학기자와 문예지 편집자로 일하면서 시단(詩壇) 한가운데서 현장평론을 해왔다. 그는 시인과 어울리고 시와 함께 호흡하면서 “우리 시와 불교는 떼려야 뗄 수 없음을 실감했다”고 말한다.

특히 2008년 한국현대시 100주년 기념 명시·명화 100선 시화선집 <꽃필 차례가 그대 앞에 있다>를 펴내려고 시들을 선별하면서 확신을 얻었다. 시대와 이념을 불문하고 좋은 시에는 불교가 유전자처럼 각인돼 있음을 새삼 확인했다. ‘시선일여(詩禪一如)’ 혹은 ‘시심불심(詩心佛心)’이란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었다.

책은 한국 현대시에 내재된 불교의 DNA를 구체적이고 실증적으로 확인하고 있다. 신체시, 자유시, 서사시, 산문시 등 최초의 현대시 양식도 그 출현은 불교와 무관하지 않음을 규명해놓았다. 초현실주의, 해체주의, 아방가르드 등 새로운 시적 경향도 불교의 영향력 안에 있음을 알 수 있다. “불교는 우리 현대시사 1백10년의 도반(道伴)임을 최초로 실증적으로 밝힌 평론집”이라고 자부한다.

1908년 11월에 발표된 육당 최남선의 ‘해(海)에게서 소년에게’는 우리 현대시의 효시로 평가받는다. 책에서는 바다 품에 안긴 담 크고 순정한 소년을 <화엄경> 입법계품에 나오는 선지식을 찾는 선재동자로 읽어보라 권한다. “때린다, 부순다, 무너버린다”는 ‘막강한’ 시구는 중국 당나라 임제의현 선사의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를 만나면 조사를 죽이라’는 포효를 닮았다고 한다. 10세에 금강경을 읽었고 불교학자이기도 했으며 시조집 <백팔번뇌>를 펴낸 육당이기에 그럴듯한 해석이다.

시조집 백팔번뇌에는 유독 ‘님’이 자주 등장하는데 이는 부처님에 대한 은유임을 어렵지 않게 알아챌 수 있다. 물론 명실상부한 님의 시인은 알다시피 만해 한용운이다. 님의 침묵으로 대변되는 만해의 시세계는 불교 그 자체다. 저자는 명시 ‘님의 침묵’과 ‘알 수 없어요’에 대해 남녀 간의 연애를 필설로는 감히 표현할 수 없는 궁극의 경지에까지 끌어올렸다고 극찬한다.

책은 20세기 초 최남선과 춘원 이광수의 2인 문단시대부터 시인이 2만 명에 이른다는 지금까지 일가견을 이룬 주요 시인들의 시 속에 드러난 불교적 양상을 시대 순으로 쭉 살펴보고 있다. 백석 서정주 조지훈 김춘수 김수영 신경림 김지하 정현종 황지우 이성복 박노해 등 낯익은 이름의 시인들이 나열돼 있다. 얼핏 불교와 무관한 이력을 지닌 시인들도 있지만 우주의 본질인 원융(圓融)과 자비를 간파한다는 점에서는 불자다. 책은 아름다운 시어들을 샅샅이 뒤져 불교의 궁극적인 의미를 건져 올린다.  

책의 말미엔 불교시(詩)에 대한 전망이 실렸다. 선(禪)적인 직관과 상상력을 보이나 미적으로 제대로 형상화하지 못해 소통이 안 되는 시편들을 비판한다. 불교적 세계가 주제화되지 못하고 그거 풍물적 소재적 차원에 머무는 시들도 참된 불교시는 아니라는 지적이다. 결국 저자는 “불교시도 시(詩)인 이상, 불교나 선의 문법이 아닌 시의 문법을 따라야 한다”고 주장한다. 시의 가장 큰 덕목인 감동의 소통은 불교시에도 주어진 엄정한 과제다.

“부처님 법은 사부대중의 실질적인 고민으로 꽉 차 있으며 이를 구체적으로 질문하고 구체적으로 답해주기 때문에 시 언어의 에너지를 증폭시키는 충분한 역할을 한다.” 문태준 시인의 말을 빌려 불교시의 진정성을 밝히고 있다. 실질적인 고민을 구체적으로 풀어주려던 부처님의 정신은 불교시에도 요구되는 정신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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