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저리 닮았을까? 
한 울타리에서 자랐지만 
성인이 되면서 차례차례
대처로 나가 생활한 게 
수십 년인데 나이가 들수록 
더 닮아가는 표정과 
걸음걸이가 신기할 따름…

다섯 자매가 걸어간다. 쉰부터 예순을 넘긴 자매들이 나이를 가방에 담아 메고 봄나물을 뜯으러 간다. 걸어가는 뒷모습이 어쩌면 저리 닮았을까? 일일이 소개하지 않아도 자매란 걸 금세 알아채겠다. 어렸을 때야 한 울타리에서 자라지만 성인이 되면서 차례차례 대처로 나가 생활한 게 수십 년인데 나이가 들수록 더 닮아가는 표정과 걸음걸이가 신기할 따름이다. 

시누이들이 봄나물 가득한 고향으로 오월 소풍을 시작한 건 시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다. 일 년에 한 번 고향 선산에 묻힌 부모님을 찾아뵐 겸 가족들 모두 만나는 날로 정한 것이다. 올케인 나는 돋아난 순이 먹을 수 있는 나물인지 아닌지 구별 못하는 까닭에 지천인 들꽃을 구경하는 재미로 따라다닌다. 시누이들은 산, 들, 논둑에서 수시로 허리를 굽혔다 펴며 고사리를 꺾고 두릅을 따고 쑥을 뜯으며 봄을 마음껏 즐긴다. 

얼마 전 모처럼 한가한 토요일 앨범을 뒤적이다 어머니가 이모들과 함께 찍은 사진이 눈에 띄었다. 여든을 훨씬 넘긴 큰이모와 어머니, 세 살 터울인 이모들 다섯 자매가 조카 결혼식장에서 한복을 입고 찍은 가족사진이다. 제주에 내려가면 어머니에게 보여드리자는 마음으로 스마트폰에 저장해 놓았다. 

어머니 자매는 제주와 서울, 경기에 떨어져 지내니 한자리에서 만날 기회가 점점 더 줄어든다. 어쩌다 가족 행사에서 찍은 사진은 자매간의 애틋한 정이 솔솔 묻어나는 걸 느끼게 한다. 

사진 속 이모들은 아직도 큰 키에 체형이 꼿꼿하다. 평소 건강관리를 잘하기도 하지만 유전적인 영향이 크지 않을까 한다. 그런 이모들 곁에 표시나게 자그마한 어머니가 서 있다. 평소에는 이모들과 다르다고 생각하거나 느끼지 못했는데 나물 뜯으러 가는 시누이들의 모습과 겹치며 어머니가 눈에 들어온다. 

물론 자매라고 체형이 모두 비슷하지는 않지만 오늘 유독 낯설어 보인다. 가족은 누구와 비교하는 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남들과 다른 것을 잘 모르고 살아가기도 한다. 좀 작든 크든 어디가 남과 다르건 눈은 보겠지만 마음으로는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두 살 때 이웃집 언니 등에 업혔다 떨어지는 바람에 왼쪽 고관절을 다쳤다. 요즘 같으면 곧바로 응급처치하고 고쳤겠지만, 80년 전 제주에서는 별다른 치료를 받지 못하고 그냥 몸이 알아서 치료하도록 두었던 것 같다. 그러니 성장기에 제대로 자라지 못하고 걸음걸이도 조금 불편해 보인다. 하지만 어머니는 별 내색하지 않고 아내로 여섯 남매의 어머니로 집안을 잘 꾸려왔다. 

아마 어머니가 그때 다치지 않았다면 이모들과 비슷한 키에 걸음걸이도 많이 닮았을 것이다. 뒤돌아 서 있으면 구별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닮아간다는 것에는 혼자가 아니라는 안도감이 들어 있는 것 같다. 아주 가끔 어머니는 ‘나도 남들처럼 마음껏 달릴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자신에게 하는 말인 듯 어린 딸에게 하는 말인 듯 오래 묵혔다 푹 익은말을 꺼내곤 했다. 그럴 때면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니 할 수가 없었다. 

말할 수 없이 아프다는 게 있다는 걸 이미 알아버렸기 때문일까. 그러다 내가 아이 엄마가 되고 나서 모든 걸 편하게 말할 수 있는 사이가 되었다. 어머니는 속말을 주저 없이 하고 나는 그 말을 다 받아들이고 반응하는 딸이 된 것이다. 어머니의 외로움도 많이 흐려졌다.

비록 몸은 남과 조금 다르지만 매사 건강한 마음인 긍정의 힘으로 살아온 어머니는 여든이 넘은 지금도 밭에 참깨, 고구마, 마늘을 가꾼다. 아이처럼 얼굴 가득 천진난만한 웃음도 함께. 

[불교신문3492호/2019년6월5일자]

김양희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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