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미래의 세계 불교민속 순례] <9> 몽골 초원 지키는 부처님
[구미래의 세계 불교민속 순례] <9> 몽골 초원 지키는 부처님
  • 구미래 불교민속연구소장
  • 승인 2019.06.03 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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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희망' 일구며 굳건한 삶 이어가는 몽골 불심
울란바토르 샤먼센터의 게르.

부처님과 하늘을 담은 ‘게르’

몽골불자들은 언제나 부처님과 눈을 맞추며 살아간다. 그들의 전통가옥 ‘게르(ger)’는 화로를 중심으로 둥근 천막의 가장자리를 따라 살림살이가 배치되는데, 문을 들어서면 마주보이는 중앙에 불단을 둔다. 이곳은 ‘호이모르’라는 신성공간으로 부처님과 함께 달라이라마ㆍ칭기즈칸 등을 모시고 옆에는 예외 없이 조상과 가족의 사진을 진열한다. 아침에 일어나면 불단에 먼저 예를 올리고 하루를 시작하는 그들에게, 부처님은 제단에서도 일상에서도 둥글게 하나가 되어 살아가는 가족 같은 존재이다.

그들은 또한 하늘의 신령과 소통하며 살아간다. 유목민의 지혜가 응축된 이동형 가옥 게르에는 창문이 없는 대신 ‘터너’라 부르는 천장이 둥글게 뚫려 있다. 실내를 밝히고 환기를 시켜주는 천장은 하늘과 연결되어 ‘신이 드나드는 통로’로서 중요한 종교적 의미가 부여되어 있다. 따라서 비가 오지 않으면 늘 열어두고, 아기를 낳을 때면 천장을 지탱하는 두 기둥에 실타래를 감아 천장 바깥으로 빼낸다. 실을 타고 하늘에서 새 생명이 내려온다는 믿음 때문이다.

새 게르를 지으면 상서로움을 나타내는 푸른 천 ‘하닥’에 곡식을 담아 천정에 묶어둠으로써 행복과 풍요를 기원한다. 화로의 연통이 연결된 곳도 천장이어서 해의 위치에 따라 달라지는 연통 그림자를 보고 시간을 알아차렸으니, 천장은 유목민의 해시계 역할도 맡았던 셈이다. 그런가하면 모든 게르의 문은 바람을 등지고 햇빛을 받기 위해 남쪽을 향하고 있어 망망한 초원을 지나는 이에게 방위를 헤아리는 나침반이 되어왔다.

그들의 보금자리 게르를 둘러싼 규범도 많다. 게르에선 시계방향으로 움직여야 하는데, 둥근 원룸 속에도 서쪽과 동쪽이 남성과 여성의 공간으로 엄격히 분리되어 있기 때문이다. 화로는 극한의 겨울을 버티는 난방장치이자 음식을 만드는 아궁이이기에 불씨를 꺼뜨리는 일은 있을 수 없을 뿐더러 화로를 둘러싼 금기도 무수하다. 안팎의 경계인 문지방에 걸리거나 밟으면 다시 나갔다 들어와야 집안에 화가 미치지 않는다고 여긴다. 이처럼 많은 금기를 두면서도 찾아든 모든 나그네를 환영하고 공용의 집처럼 나누는 몽골사람들이다.

황량하고 망망한 자연 속에 하얀 점처럼 자리한 게르. 그들은 작지만 부족함 없는 둥근 보금자리에 부처님과 하늘을 들여놓고 가족의 안전과 행복을 지켜왔다. 수많은 금기와 신비로운 해석이 담긴 작은 우주 게르는, 바람처럼 이동하는 몽골사람들과 함께 초원의 나그네를 기꺼이 품는 진정한 우주의 집이다.

둥근 집, 명쾌한 신앙관

군더더기 없이 둥글고 나지막한 구름색깔의 게르는 초원에 가장 어울리는 집이다. 멀리 연기가 피어오르는 게르는 돌아갈 안식처를 만난 듯 정겹다. 게르는 초원에만 있는 게 아니라 빌딩이 즐비한 수도 울란바토르에서도 곧잘 만난다. 도심의 판자촌처럼 언덕 위에서 도시를 내려다보며 삶의 터전을 이어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사찰이나 공원에도 자리하고 있다. 전시용도 있지만 대부분 실제 사람들이 살고 있는 게르이다. 그것을 구분하는 간단한 방법은 연기에 그을린 연통이 있는지 살피면 된다.

울란바토르 간단사원으로 가는 언덕길을 올라 찾아간 샤먼센터도 게르였다. 몽골무속을 접하고 싶어 무작정 찾아갔지만 샤먼 혼자 머무는 곳인데다 출장 중이라 단골손님들만 게르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샤먼센터라는 명칭을 지녔고, 인도 나란다대학에서 「어둠 속을 비추는 거울(Mirror through Darkness)」이라는 연구로 명예박사를 받은 학위증이 걸려 있는 걸로 보아 국내외에서 인정받는 샤먼인 듯했다.

그곳의 신성공간 ‘호이모르’는 대단하였다. 대형 게르의 삼분의 일 정도를 차지하는 6개의 신단에 이 세상의 모든 신은 다 모셔놓은 것 같았다. 신장(神將)과 티베트불교의 분노존(忿怒尊)을 비롯해, 동자신과 여신에서부터 몽골인의 존경을 받는 칸과 장군과 조상들을 그림이나 작은 조각상으로 모셨고, 기름등잔을 밝힌 단마다 저마다 의미를 지녔을 온갖 기물과 공양물을 차렸다. 찾아오는 이들의 사연에 따라 모시게 될 맞춤형 신이니 한 분 한 분의 신이 지닌 신통력과 기능도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천정에는 날개를 활짝 편 박제 독수리가 매달려 하늘로 날아오를 듯하고, 중앙에 매단 오색의 하닥이 길게 늘어뜨려져 가장 소중한 살림살이 난로와 서로 마주보았다. 샤먼의 거주지 또한 민가의 게르가 그대로 확대된 형태의 신성공간이요, 보금자리였다.

초원의 유목민이든 도심의 샤먼이든 똑같이 부처님과 신들을 모시고 둥글게 원룸에서 함께 살아가는 게르. 주거공간의 구조와 그것에 대한 인식이 이토록 동일하고 명쾌한 민족이 있을까. 그들이 공유하는 사고와 신앙관이 몽골사람들의 가장 큰 저력일지 모를 일이다.

폐사지에서 피어나는 희망

부처님을 모신 게르가 살아있는 법당이라면, 초원의 곳곳에는 황량한 폐사지들이 몽골불교의 슬픈 역사를 말해준다. 1920년대까지 몽골에는 7백 개가 넘는 대형사원에 12만 명이 넘는 스님들이 있었다. 전체인구가 50~70만 명에 불과한 시절이었으니 집집마다 한 명 이상의 아들이 출가해 승려가 되었던 셈이다.

당시의 모습을 풍속화처럼 담은 대형그림 「겨울궁전」에는 거대한 영역의 사원이 마을처럼 형성돼있고, 사원 안팎에서 저마다의 생활상을 펼치는 수백 명의 사람과 말 등이 사실적으로 그려져 있다. 기와를 얹은 사원건물이 질서정연하게 배치된 곳곳에 빠짐없이 자리한 게르는 간이법당이나 스님들의 요사로 사용되었으리라 짐작된다. 사원 입구에 무릎을 꿇고 두 손 모아 경배하는 불자들의 모습과 함께 불교의 융성함이 한눈에 읽힌다.

이 그림은 당시 마지막 황제이자 여덟 번째 생불(生佛)인 ‘복드칸’이 머물던 겨울궁전 2층에 걸려 있다. 몽골제국이 17세기 후반 청나라에 복속되자, 몽골의 저력을 두려워한 청의 강희제는 몽골남성들을 출가시켜 군사력을 약화시키는 한편 승왕(僧王) 정치를 강요해 불교는 교세를 더욱 넓혀간 것이다. 이후 공산혁명으로 러시아의 지배를 받게 되면서 1930년대부터 몽골불교는 극심한 종교탄압을 받아 수만 명의 스님들이 학살되고 대부분의 사원이 불태워졌다.

정치적 상황에 따라 불교는 극과 극으로 내몰려 하루아침에 무너져버렸지만, 당시를 회상하며 “부처님을 집안에 숨겨놓고 불공을 드렸다”는 몽골노인들의 말처럼 부처님은 늘 그들과 함께였다. 종교의 자유를 찾은 지 불과 30년밖에 되지 않아 몽골불교는 그들에게 주어진 황량한 자연처럼 빈터에서 다시 시작하는 중이다.

몽골의 폐사지와 불교의 흔적이 남은 곳에는 어김없이 돌무지 어워(Owoo)가 세워져 있고, 푸른 하닥이 물고기처럼 바람에 파닥인다. 우리의 서낭당에 해당하는 어워는 바람처럼 정처 없는 여정 속에서 게르 만큼이나 반갑고 든든한 존재이다. 그곳에 간절한 바람을 지닌 사람들이 살고 있음을 알려주는 이정표이기 때문이다.

복드칸 겨울궁전에 걸린 그림 ‘겨울궁전’(1920년대)의 사원모습.

 

엉깅사원의 폐사지에 복원된 법당.

‘어워’에 담긴 소망

얼마나 장엄했으면 이름마저 ‘아름다운 사원’이었을까. 사이항 어워 마을에 자리한, 한때 그토록 아름다웠던 엉깅(Ongiin) 사원의 거대한 폐사지 앞에서 한 소설가는 “아무런 설법 없이도 무상의 경지를 느끼게 했다.”고 적었다. 1천여 명의 스님이 머물며 불교를 꽃피웠던 사원이 1937년 철저히 파괴되어 무너진 토벽과 절터만 남게 된 것이다.

어느 때부터인가 이곳 산등성이에도 어워가 세워졌고, 지나는 이들은 어워를 오른쪽으로 세 바퀴 돌며 저마다 옛 사원의 온기가 되살아가기를 기원했다. 전설처럼 스산한 이곳에 2004년 법당 한 채가 복원되더니 한 분의 스님이 사원을 지키기 시작하였다. 국토가 우리의 16배에 달하지만 인구는 3백만 남짓한 불모의 땅, 인구의 과반수는 울란바토르에 모여 살고 과반수는 초원에 흩어져 계절 따라 이동하며 살아가는 유목민의 나라에서, 수도와 5백km 이상 떨어진 이곳에 옛 사원이 복원되는 것은 기적 같은 일이다.

그렇게 조금씩 기적을 일구어내는 그들의 강인한 의지와 간절한 기도는 어워에 집약되어 있다. 최선을 다해 하루하루를 살아내고 나머지 모든 것을 맡기는 신앙의 대상이기에 어워는 자연 그 자체이기도 하고 신이자 부처님이기도 하다. 돌을 찾기 힘든 초원에서 하나하나 정성껏 쌓은 돌무지에는 버드나무 가지를 세워둔다. 물가에 자라며 줄기찬 생명력을 지닌 버드나무는 하늘의 신이 강림하는 신목(神木)이요, 그곳에 매어놓은 하닥은 무채색 돌무지에 피어난 푸른 희망이다.

울란바토르의 간당사원 건너편 언덕에도 거대한 ‘타스가니 어워’가 피라미드처럼 세워져 있다. 어워 주변으로는 문과 탑 모양의 나무기둥을 여러 개 세우고 농축된 그들의 신앙처럼 오색의 하닥을 겹겹이 감아두었다. 간당사원과 타스가니 어워는 나란히 도심을 내려다보며, 게르의 천장을 받치는 두 기둥처럼 몽골사람들의 삶을 굳건히 지켜주고 있다.

말을 타는 몽골소년. 그림=구미래

[불교신문3492호/2019년6월5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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