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미시설공단이 전국 사찰에 일괄적으로 보낸 것으로 보이는 안내서가 우리 절에도 왔다. 그 안에는 아도화상의 발자취가 서린 도리사 문수사 신라불교초전지 세 곳을 찾는, ‘한국최고의 성지 삼사순례’가 스토리텔링(storytelling)으로 엮여있었다. 일 년에 두 번, 방생 겸 성지순례를 다녀온다.

늘 순례 장소로 고민을 하던 차여서 잘 되었다 싶어 구미로 향했다. 도리사와 문수사를 참배하고 마지막 코스로 구미시설공단이 위탁을 받아 운영하는 신라불교 초전지를 찾았다. 

지난해 10월 개관한 신라불교초전지는 2010년 경상북도 3대문화권 문화생태조성전략사업으로 선정되면서 국비, 도비, 시비 200억 원을 투입한 역사 문화 교육관이다. 초전지 안에는 교육부분, 체험부분, 전시부분 세 가지 테마가 있다. 전시관에는 신라불교를 시기별로 세 단계를 나눠 소개했다. 

아도화상이 신라에 불교를 전한 첫 번째 방의 주제는 ‘아도, 신라로 향하다’였으며 두 번째 방은 ‘신라불교의 향이 퍼지다’, 세 번째 방은 ‘신라불교의 꽃을 피우다’ 였다. 신라불교를 한 눈에 볼 수 있다는 기대에 설레는 마음으로 관광해설사를 따라 첫 번째 방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기대가 너무 컸던 탓일까? 처음부터 실망과 한숨이 나왔다. 스님을 칭하는 명칭부터 잘못됐음을 알았다. 아도화상이 처음 모례의 집에 왔을 때 사람들이 승(僧)이라는 명칭을 몰라 머리를 깎은 외형을 보고 아두삼마(阿頭)라 불렀다고 하는데 이는 ‘삭발한 스님’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전시관은 ‘삭발한 중’이라고 버젓이 소개했다. 이대로 표현을 해도 되는 것인가하는 의구심에 발길을 옮길 수가 없었다. 

한자사전에는 ‘승(僧)은 중 승’ 이라고 표현한다. 과거에는 비하 의미가 없어 그렇게 사용했지만 지금은 중이 비하의 의미로 쓰이는 까닭에 일반 언론에서도 사용하지 않는다. 문어체는 승려, 구어체는 스님이 일반적인 호칭이다. 충북대 국어국문학과 조항범 교수가 문화일보에 기고한 글에 따르면 한글문헌에서 ‘스님’이란 단어가 나타나는 것은 1911년 신소설 <쌍옥적>이 최초라고 한다. 

중세 국어문헌은 ‘중님’이라 하며, 구한말과 일제시대 문헌에는 ‘승님’이라는 단어가 쓰였다고 한다. 승(僧)+님에서 받침이 빠지며 ‘스님’이 되었다는 설도 있다. 아두삼마를 ‘삭발한 스님’이라고 표현하면 의미를 충분히 전달하면서 현재의 문화와 관습을 살릴 수 있는데도 굳이 비하하는 뜻으로 쓰이는 ‘중’으로 표현하는 심사를 이해할 수 없었다. 

신라불교초전지 체험관은 불교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소중한 공간이다. 불교의식 체험, 염주 연꽃 만들기. 불교음식 및 발우 공양 체험 등 아도화상과 불교초전지 강의까지 알찬 프로그램을 운영해 아주 기쁘고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인지 ‘삭발한 중’이라는 표현이 더 마음에 거슬렸다. 도리사, 문수사까지 엮어 안내서를 만들어 각 사찰로 홍보 할 때 생각이 깊고 눈 밝은 한 분의 스님이라도 책임 있게 그 내용 하나하나를 감수했다면 이렇게 표현했을까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특히 어린이·청소년들이 이곳에 와서 삭발한 스님이라는 구어체보다는 ‘삭발한 중’ 이라고 인식할까 염려돼 해설사에게 수정을 간곡히 부탁했다. 직지사 소임자 스님께도 그 내용을 드리고 수정을 요청했다. 구미시설공단과 얼마나 조율이 될지 모르지만 다시 방문했을 때 ‘삭발한 중 이 아니라 ‘삭발한 스님’으로 표현된 전시관을 보고 싶다.

[불교신문3491호/2019년6월1일자]

정운스님 논설위원·보령 세원사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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