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시간이라도 공부할 수 있으니 늦복이지”

세연스님은 1980년대 전등사 주지 소임을 마친 후 2500일에 이르는 주력 수행, 안거를 마치고 다시 돌아왔다. 팔순을 앞둔 사숙을 조실로 예우해주는 회주와 대중들에게 늘 고마움을 갖고 정진을 늦추지 않는다. 아침 공양은 거처에서 손수 짓고 주변 청소도 직접 챙기는 편이다. 김형주 기자 cooljoo@ibulgyo.com

‘준제다라니 주력 2500일’
은사-조카상좌 중창 사찰
最古 도량서 조실로 정진

“젊은 시절 한 3년 힘있게
밀어부처야 한소식 할 것
업은 조금 비워졌는지…” 

전등사 조실 세연(世衍)스님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유서 깊은 절에서 가장 오랜 전통을 가진 주력수행을 하는 대종사 가운데 한 분이다. 흔히 주력수행 하면 주술사를 떠올리기 쉽지만 염불, 참선과 함께 우리나라에서 행해지는 대표적인 의례이자 수행법이다. <대지도론>에서는 외도의 주술은 업력과 원한을 늘게 하지만, 불교의 주력은 해탈을 얻는 것이 근본목적이라고 설하고 있다. 

주력(呪力)은 ‘진실한 말의 힘’을 의미하며 한자로 진언(眞言)이라 번역된다. ‘다라니는 산스크리트어를 음사한 말로 총지(摠持)로 번역되며, 능지(能持), 능차(能遮)라 의역되기도 한다. 거룩한 부처님의 말씀이 담겨 있는 언어이자 불교의 수승한 진리를 내포하고 있는 진언 염송을 통해 깨침을 얻는 수행이 바로 주력, 진언, 다라니기도 수행이다. 

일반인들은 가족의 건강을 기원하거나 학업성취, 사업번창과 같은 현세적 소원을 빌기도 하지만 진언과 다라니 염송을 통해 부처님의 경지로 가는 것이 궁극의 목표다. ‘준제진언’ 주력 수행으로 그 길을 가고 있는 세연스님을 지난 5월22일 강화 전등사에서 만났다. 

“종사의 마루 종(宗)자는 최상을 의미하는 갓머리() 밑에 보일 시(示)가 합쳐진 말이니, 최상을 보이는 것을 ‘종’이라 할 것입니다. 부처님처럼 깨닫지는 못할지라도 조사 스님들처럼 깨달아야 ‘종’자를 붙일 수 있는 것이죠. 중노릇 한 40여년에 나이 한 70살 넘으니 ‘대종사’라 해주시는 데 사실 부끄러운 일이죠.” 

스님은 지난해 5월 종단의 최고 법계인 대종사 법계를 받게 됐지만 스스로 세운 원력을 제대로 성취하지 못했기 때문에 얼굴 내밀기 부끄럽다며 손사래를 치다 인터뷰에 응했다.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학교를 제대로 다닐 수 없었던 사춘기 소년을 절로 이끈 것은 친구 형님의 서점에서 접한 이광수의 소설 <원효대사>였다. 한문이 즐비했지만 열다섯 살 때부터 <동몽선습> <명심보감> 등을 익혔기에 전혀 걸림이 없었다. 

“원효대사와 사복과의 대화를 보니 참 멋있고 좋아. ‘이게 불교구나’” 하는 생각이 출가에 대한 꿈을 꾸기 시작했다. 이후 <불교사전> <마의태자> <선관책진> 등 서점에서 불교관련 서적은 닥치는 대로 읽어냈다. 큰아들이라 출가를 만류하는 어머니에게 ‘3년만 공부하고 온다’고 속이고 집을 나서고 말았다. 

가슴에 원효대사를 안고 집을 떠난 22살 청년이 처음으로 찾아간 마산 광산사는 대처승 절이라는 사실을 알고 단호하게 발길을 돌렸다. 정화이후 대다수 사찰이 곤궁하던 때였다. 향곡스님이 주석하는 묘관음사에서는 이틀 밤을 기다렸지만 받아주지 않았다. ‘한 입 더’ 챙기기 부담스럽다는 이유였다. 

결국 첫 행자 도반에게 소개받은 상주 갑장사에서 정식으로 수행자의 길에 들어섰다. 하지만 은사 서운(瑞雲)스님은 총무원장을 역임했을 만큼 행정에도 뛰어난 분이라 늘 원주 총무 재무 역할 등 뒷바라지에 공부에 대한 갈증은 깊어만 갔다. 

“관심일법(觀心一法)에 총섭제행(總攝諸行)이라, 마음보는 한 가지 공부에 모든 것이 갖춰져 있다” 했으니 속가에서 한문을 봤던 터라 강원(승가대학) 공부에 대해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다. <원각경> <기신론> <금강경> 등은 소임을 보며 혼자 봤다. <선관책진>도 다 봐서 선방만 가면 됐지만 이상하게도 인연이 닿지 않았다. 마음이 급했던 것일까? 선방을 찾아 몇 차례 은사 곁을 떠났으나 자신도 모르게 발길은 이름 난 토굴로 향하기 일쑤였다.

“신묘장구대다라니나 츰부다라니나 ‘다라니’는 다 똑 같은데, 옛 어른들 말씀이 ‘준제다라니’ 하는 게 (성불하는 데) 가장 빠르다 했어요. ‘다라니’를 총지라 하죠. 다 총(總), 가질 지(持). ‘총지’는 모든 것을 다 갖췄다는 말로, 지혜와 복덕과 신통 모든 것을 다 갖추고 있는 게 다라니라는 말입니다.” 일심으로 염송하면 깨달음의 경지에 들어설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다. 

“옴 자 래 주 래 준 제 사바 하 부림’ 10자입니다. ‘사바’와 ‘부림’은 두자로 보이지만 한 음절입니다. ‘옴 자 래 주 래 준 제 사바 하’까지 아홉 자가 범자(梵字)고, ‘부림’은 지팡이 같은 역할을 한다는 의미입니다.” 10자를 그냥 크게 외우기도 하고, 준제보살 공덕을 관하면서 하기도 한다. 스님이 본격적으로 주력을 한 것은 전등사 주지 소임을 놓고서다. 40대 후반에 든 나이다. 

처음엔 하루 10시간 씩 염송했다. “10시간 하면 1만5000번 하는 거죠. 그렇게 하면 힘드니까 보통 하루에 1만 번 정도 해요. 1000일까지는 100일 채우고(하는 식으로). 나이 먹어서는 한 번에 70일, 50일, 한 달씩 그렇게 했는데…. 요근래는 아침에 1시간 하고. 아파서 계속할 수 없어요. 꾸준히 한 3년 해야 한소식하는 건데. 원력은 크고 그리 많은데도 제대로 잘 안돼요.” 

주력기도는 혀를 많이 움직이니 혀가 갈라지기도 할 정도로 결코 쉽지 않은 수행이기도 하다. 무상보리-대도를 이루고, 여섯 가지 신통과 복덕, 변제, 모든 중생의 병고 치유, 모든 중생들과 말이 통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는 것 등 8가지 원력도 세웠었다.

“아미타불은 48가지, 우리 부처님은 500대원을 세웠다 했잖아요. 약사여래부처님은 8가지 …. 말이 씨가 된다고 하죠. 말이 씨가 된다는 것은 언젠가는 그렇게 된다는 것이죠. 그래서 원력이 필요한 것입니다. 공부도 젊을 때 해야 힘 있게 치고 나갈 수 있어요.” 갑사에서는 은사 스님 장례에도 못가고 1000일을 마쳤는데 지혜가 열리지 않아 손가락 연비까지 했다. 

“<능엄경>에도 나와 있어요. 손가락 한마디 발가락 한마디를 연비하면 설사 견성하지는 못하더라도 전생의 죄는 다 갚는다고….” 추우면 손이 저리기도 하고 불편한 점도 있지만 조카상좌(전등사 회주 장윤스님) 덕에 만년에 길지에서 공부를 계속할 수 있으니 “늦복이 생겼다”고 스님은 미소를 지었다. 

“‘나무아미타불’을 열심히 염송하든지 ‘신묘장구대다라니’를 열심히 염송하면 지혜와 복덕을 얻을 수 있습니다. 나무아미타불을 열 번 만 부르고 죽어도 극락에 태어난다는 말이 있지요. 이생에 깨치지 못하면 다음 생이라도 깨치겠다는 마음으로 전력을 다해야 합니다. 염불을 하는 것이 수행하기는 가장 쉽습니다. 앞서 말씀했지만 다라니로 열심히 주력을 하면 금생에 깨칠 수 있습니다. 참선하거나 주력을 하는 것은 금생에 깨닫기 위해 하는 수행입니다. 다라니를 ‘총지’라고 했습니다. 총지는 복과 지혜와 공덕을 고루 갖추었다는 의미입니다. 다라니 속에 다 들어있다는 말입니다. 외우기만 하면 우리 몸과 마음에 도화가 되어서 복도 생기고, 지혜도 생기고, 신통도 생긴다고 했잖아요. 각자 자기 근기와 적성에 맞게 염불을 하거나 경전을 읽거나 주력을 하거나 참선을 하시면 됩니다. 불자들은 수행을 열심히 하여 성불의 길로 들어가는 것이 최종 목표가 아닌가요.” 

스님은 이번 결제 때는 법문을 안했다며 예전 말씀을 다시 새겨 보였다. 

“부처님 법은 ‘중도(中道)’잖아요. 불편지위중(不偏之謂中)이라는 말도 들어봤죠, 한 곳에 치우치지 않는 것을 중도라 합니다. 한 쪽에 집착하면 온갖 괴로움이 생기지만 집착을 하지 않고 중도를 잘 지키면 마음이 편합니다. ‘제악막작(諸惡莫作) 중선봉행(衆善奉行), 나쁜 일은 일체 하지 말고 착한 일을 받들어 행하시라. 복혜쌍수(福慧雙修)라 했으니, 세상을 좀 더 편안하게 살아가려면 복과 지혜를 구족하면 좋겠다는 정도밖에 드릴 말씀이 뭐 있겠어요.” 스님이 다시 찻잔에 따뜻한 차를 채워 건넸다. 스님이 빗질하던 거처 극락암(極樂菴) 앞으로 나오니 주련이 새롭게 다가온다. 

有物先天地 無形本寂寥 
不逐四時凋 能爲萬像主 

“천지가 있기 전에 한 물건 있었으니/ 형체도 없고 본래 적적하고 고요하여/ 사철 변화에 따라 시들지도 않으니/ 능히 모든 만물의 주인이 되도다.” 

■ 세연스님은 …

1941년 8월18일 경남 하동에서 태어나 1962년 상주 갑장사에서 서운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1963년 직지사에서 고암스님을 계사로 사미계를, 1971년 범어사에서 석암스님을 계사로 구족계를 수지했다. 세연(世衍)은 법명. 법호는 정암(靜庵). 

동화사에서 사집과, 보장사에서 대교과를 마치고, 1992년부터 18년 간 묘적암 보리암 갑사 등에서 1000일 준제다라니기도를 성만했다. 특히 갑사에서는 왼손 손가락 하나를 연비하고, 다시 ‘여덟가지 원력’을 세운 후 원주 구룡사, 김포 약사사 등에서 500일 기도를 마치고 영동 삼봉산 토굴에서 10년 정진을 이어갔다.

남양주 흥국사ㆍ강화 전등사 주지, 중앙종회의원(제 8대) 등을 역임했으며 2018년 5월에는 종단 최고 법계인 ‘대종사’를 품수했다. ‘산승, 기억의 창을 열다’ 블로그에 올린 글을 엮어 단행본으로 출간하기도 했다. 

[불교신문3491호/2019년6월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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