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하룻날 새벽이면 항상 와서 기도하고 가시는 노보살님이 있다. 한동안 안 오셔서 어디가 편찮으신가 했는데 오후에 따님 차를 타고 오셨다. 한 손엔 지팡이를 짚고 따님의 부축을 받아 겨우 다니셨다. 밀린 인등비를 쌈지에서 꺼내 주시며 “시님, 이제 이 할매는 다리가 아파 절에도 못 오겠심니더. 우짜든지 우리 아들딸들 잘 되게 기도나 잘 해주이소” 하셨다.

“네, 보살님. 걱정 마세요. 보살님 안 오시더라도 제가 부처님께 잘 말씀드릴게요. 그리고 가끔 따님과 함께 절에 바람 쐬러 오세요. 보살님 나이에 이렇게라도 절에 오시는 것이 얼마나 다행입니까? 그렇지요?” “하하하, 우리 시님 말씀 듣고 보니까 진짜 그러네요. 고맙심니더.” 차 한 잔 드린 후 보살님 손을 잡고 차까지 모셔 드리니 기분 좋아하며 내려가셨다. 

두 친구가 술집에서 만나기로 했다. 한 친구가 뒤늦게 도착해서 막 가게로 들어서려는데, 입구에서 꽃을 팔던 할머니가 다가왔다. 아픈 손녀 약값을 마련한다며 꽃을 팔기에 달라는 돈보다 더 주고 꽃을 사 자리에 앉았다. 먼저 온 친구가 말했다. “저 할머니 사기꾼이야. 손녀딸 아프다며 저기에서 항상 꽃을 팔거든? 그런데 저 할머니 아예 손녀딸이 없어.” 

그러자 속았다며 화를 낼 줄 알았던 그 친구의 표정이 환해졌다. “정말? 손녀가 없어? 그러면 저 할머니 손녀딸 안 아픈 거네? 정말 다행이다. 친구야, 한잔 하자. 건배!” 이 이야기는 일본의 한 CF에 나오는 글이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별일 없이 순탄하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러나 ‘삶’은 ‘죽음’이란 사건을 끝으로 비로소 막을 내린다. 이생에 몸을 받은 이상 어차피 겪어야 할 일들은 겪어야만 한다. 다만 관점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인생의 행복과 불행이 결정되는 것이다. 주어진 조건과 환경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것, 더 큰 화를 입을 뻔 했는데도 이 정도로 그친 것, ‘그래도 그만하기 다행이다’라는 생각이 내 인생을 다채롭게 바꾼다. 

[불교신문3491호/2019년6월1일자]

동은스님 삼척 천은사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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