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의 확고한 의지와 신념으로 ‘석보상절’ 간행”

초기 국어자료 불교 관계 깊어 
석보상절, 월인석보 한글 전파
신하들의 반대에도 세종 ‘관철’
창제이전 구결 99% 불교 자료

“훈민정음 창제 이후 초기 국어 자료 상당수가 불교와 관계가 있습니다. 또한 창제 이전의 구결(口訣) 가운데 99%가 불교 자료입니다.” 지난 5월20일 만난 황선엽(黃善燁) 서울대 국문과 교수는 국어사 연구에 있어 불교가 중요한 위치에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세종 당시 수양대군(훗날 세조)이 부처님 일대기를 한글로 편찬한 <석보상절(釋譜詳節)>과 세조가 간행한 <월인석보(月印釋譜)>기 국어사(國語史)의 기본 텍스트라고 강조했다. 두 작품을 연구하면서 관심을 둔 부분은 직역(直譯)과 의역(意譯)의 차별성, 불교 주석(註釋)과의 연계성, 국어학적 주석의 전문성이다.

황선엽 교수는 동국대 불교학술원이 불교학자와 국어학자들의 학제간 연구를 통해 진행하고 있는 <석보상절> 번역과 주해 작업에 참여했다. 지난해 10월5일 국회도서관 대강당에서 열린 ‘<석보상절> 주해본 간행의 성격과 가치’란 주제의 학술대회에 참석하기도 했다.

<월인석보> 권1에는 <훈민정음>과 <석보상절> 등이 실려 있어 중요하지만, 내용이 난해한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지난해 황선엽 교수가 상세하게 번역 및 주해를 해서 연구자들의 고민을 풀어주었다. <석보상절>과 <월인석보> 텍스트의 가치가 새롭게 조명받는 계기가 됐다는 평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세종은 조선의 국시(國是)가 억불숭유(抑佛崇儒)였기에 훈민정음 보급에 어려움을 겪었다. 황선엽 교수는 “세종이 타개책으로 삼은 것이 바로 불교 문헌”이라면서 “여기에 성리학자들도 거부할 수 없는 효도(孝道)를 앞에 세웠다”고 말했다. 즉 문종과 수양대군 등이 돌아가신 어머니 소헌왕후(昭憲王后)의 극락왕생을 기원하며 불경을 만들겠다는 뜻을 밝힌 것이다.

그러나 순탄하지는 않았다. 세종 23년(1441) 11월 흥천사 사리각에서 경찬회(慶讚會) 열고자 했지만 영의정 황희를 비롯해 사헌부, 사간원, 집현전, 성균관 등이 나서 상소를 올려 무산됐다. 이 경찬회는 이듬해 3월에야 겨우 시행됐다.

황선엽 교수는 “유학자인 신하들이 쉽게 반대할 수 없도록 불경 편찬이 효성에서 비롯됐음을 세종이 천명했다”면서 “그럼에도 신하들의 반대에 부딪히자 ‘못난 임금’을 자처하며 뜻을 관철했다”고 밝혔다.

세종은 재위 28년(1446) 3월28일 신하들에게 이 같은 뜻을 전했다. “그대들은 고금의 사리를 통달하여 불교를 배척하니 현명한 신하라고 할 수 있지만 나는 의리(이치)는 알지 못하여 불법을 존중하여 믿으니 무지한 임금이라 할 것이다 … 그대들이 혹 장소(章疏, 신하가 임금에게 올리는 글)를 올리더라고, 내가 친히 보지 않을 것이므로, 그대들의 뜻을 환하게 알리기 어려울 것이니 번거롭게 다시 청하지 말라.”

황선엽 교수는 “세종의 확고한 의지와 신념에 따른 행동이 없었다면 <석보상절>은 간행되기 어려웠을 것”이라면서 “즉 <석보상절>은 세종의 결단에 따른 산물”이라고 강조했다.

황선엽 교수는 국어사 연구 진행 과정에서 불교학자들과의 연계 중요성을 지적했다. “특히 초기 국어사를 연구하는데 있어 불교학자들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사실 불교 용어가 낯선 것이 사실입니다. 국어학자와 불교학자들이 서로 관심 영역이 다르지만 공동 연구 노력을 지속한다면 학문적 성과를 공유할 수 있다고 봅니다.”

향후 국어사 연구에 매진할 방침인 황선엽 교수는 특히 석독구결(釋讀口訣, 훈독구결)과 향가(鄕歌)에 집중할 예정이다.

황선엽 교수는 스님과 불자들의 관심을 당부했다. “거시적으로는 선조들이 남긴 불교문화유산에 대한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연구와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하면서 “짧은 기간이나 미시적인 과제도 여럿 있다”고 말했다. 각 분야 전공자들의 단기 연수나 학회 활동을 할 때 사찰 공간을 사용할 수 있도록 제공해주고 줄 것도 당부했다. 

“종단이나 사찰이 소장하고 있는 자료들을 열람하고 연구할 수 있는 편의 제공이 필요합니다. 자료의 디지털화와 영인본 보급 등 소장 자료에 대한 연구 및 역주(譯註)를 시행하고 지원해 주었으면 합니다.” 

■ 황선엽 교수는… 

1993년 2월 서울대 국문과 졸업, 1995년 2월 서울대 대학원 국문학과 석사 졸업, 2002년 8월 서울대 대학원 국문과 박사 졸업, 2004년 9월~2010년 8월 성신여대 국문과 교수, 2014년 4월~2015년 2월 일본 동경대 대학원 한국조선문화연구전공 특임준교수, 2010년 9월~ 현재 서울대 국문과 교수, 서울대 한국어 교육센터 소장. 주요 논문으로 <강아지풀(莠)의 어휘사>(2009), <명아주(藜)의 어휘사>(2009), <‘안민가’해독을 위한 새로운 시도>(2008), <향가에 나타나는 ‘遣(견)’과 ‘고(古)’에 대하여>(2002)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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