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루룩 파스타 같은 소나기가 차게 내린 오후
뜰 앞에 작약이 지며 접시가 깨지는 소리가 나는 
수박향 빨간 바퀴에 은빛 날개 달고
빛나는 바람을 휘감아 햇살들 집어 올린다

-서정화 시 ‘화령전 아멜리에’에서


이 시는 시조의 고유한 양식적 형식을 보존하면서도 조금의 변형을 가했고, 또 거기에 산뜻한 감각을 보탰다. 고아함을 벗어나지 않으면서도 이 시대의 언어를 과감하게 끌어다 썼다. 

시인은 소나기가 요란하게 내리는 오후에 수원 화령전 주변에서 본 바깥 풍경을 시의 안쪽으로 유입시킨다. 세차게 쏟아지는 소나기 소리는 파스타를 먹을 때 나는 소리를 닮았고, 빗줄기는 파스타의 가늘고 긴 국숫발과 흡사하다. 그리고 소나기에 작약의 붉은 꽃이 진다.

시인은 둥글고 큰 작약의 꽃잎을 접시에 빗대었고, 작약꽃의 낙하에서 접시가 깨지는 파열음을 예민하게 듣는다. 이 대목에 이 시의 성취가 있다. 소낙비가 그친 후 다시 바람이 불어올 때, 눈이 부신 햇살이 위쪽으로 가볍게 들려지는 것을 포착한 시선도 찬찬하고 세밀하다.

[불교신문3489호/2019년5월25일자]

문태준 시인·불교방송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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