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할머니 손잡고 절에 가는 날이면 돌아올 때가 항상 걱정이었다. ‘할머니는 오늘도 지나가는 차를 세울 텐데, 지나가는 차가 그냥 자꾸 지나치면 어떡하지?’ 할머니는 바스락거리는 모시 치맛자락을 감싸고 손을 들어 가뭄에 콩 나듯 지나가는 차를 세우셨고 용케 얻어 타면 절에서 받아온 떡 한 조각을 부처님께 올린 것이라고 자랑스레 차주인에게 건네곤 하셨다. 그런 차 안 훈훈한 풍경은 스무 대 이상의 자동차를 떠나보내고 손녀딸의 입이 절에서 걸어온 길만큼 튀어나올 때쯤 만들어졌다. 

이제 할머니는 세상에 안계시고 그 길 위를 내가 차를 운전하며 다닐 때가 있다. 시골길을 지날 때면 이따금씩 연세 드신 어르신들이 길가에서 손을 드신다. 그 순간 할머니를 떠올리며 차를 태워드리면 어르신들은 주섬주섬 보자기를 풀어 사탕 하나라도 건네주셨다.

그런데 일명 추억의 카풀(car full)인 그런 일들이 가끔씩 차를 태워준 사람이나 올라 탄 사람에게 난감한 상황이 되기도 한다. 얼마 전 암자 아랫마을의 차를 가지고 계신 분이 일을 보러 나가다가 이웃사람이 걸어가는 것을 보고 태우고 나가다 사고가 나서 안타깝게도 돌아가시는 일이 생겼었다. 호의로 시작된 일이 이웃 간에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일이 돼버린 셈이다. 마을 사람들은 내게도 “쉽사리 차를 태우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한다. 

원치 않는 사고만 있는 것은 아니다. 차를 얻어 탄 사람이 갑자기 강도로 변해서 범행을 저지른 사건 기사를 대할 때면 하얀 모시저고리 사이로 나온 손을 들어 차를 세우시던 내 할머니가 자꾸만 생각이 난다. 얻어 탄 차 안에서 떡 한 조각 나누면서 웃음 가득한 장면도 말이다.

요즘 나는 차를 거의 운전하지 않고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편인데 조금 외진 곳에 갔다가 택시를 부르지 못해 계속 걸어 나올 수밖에 없어서 그 옛날 할머니처럼 지나가는 차에 손짓을 보낼 때가 있다. 씽씽 소리만 내고 지나치다 한참 만에 차를 얻어 탈 수 있었다. 나는 앞으로도 여전히 길가에서 손을 드는 분 앞에 차를 세우고 태워 드리고 주머니서 주섬주섬 꺼내주시는 사탕 하나를 받아먹을 것 같다.

[불교신문3489호/2019년5월25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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