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자들을 위한 인문학 강좌] 성태용 건국대 철학과 명예교수
[불자들을 위한 인문학 강좌] 성태용 건국대 철학과 명예교수
  • 정리=박인탁 기자
  • 승인 2019.05.22 1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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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밝은 스승 만나 각자 근기 맞는 수행법으로 정진해야”
5월7일 성태용 건국대 명예교수가 ‘서유기의 수행세계와 현장법사의 실크로드’를 주제로 한 실크로드 인문학 리더스클럽 강좌 10번째 강의를 통해 각자 근기에 맞게 수행정진할 것을 당부했다.

‘서유기의 수행세계’ 주제 강연

붓다의 수행 목적지와 방편을
무시한 채 자기 근기 맞지 않는
수행한다면 엄청난 고생만 해

불교기도는 달라는 기도 아냐
기도대상이 나에게 옮겨온 뒤
힘이 발현되면서 기도 성취돼

삿된종교는 금방 효과 나지만
기도만 매달리는 노예만 양산

한국철학회장을 역임한 성태용 건국대 철학과 명예교수가 지난 3월5일부터 5월21일까지 매주 화요일마다 불광미디어 부설 인문과학원 학림이 주최하는 ‘실크로드 인문학 리더스클럽’에서 ‘서유기의 수행세계와 현장법사의 실크로드’를 주제로 강의했다. 10번째 강의로 지난 7일 조계종 전법회관 교육관에서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서 공주로 변신한 옥토끼를 사로잡다’를 소주제로 강의를 이어갔다.

성 교수는 “부처님께서 목적지를 밝혀주고 8만4천가지 다양한 방편을 제시해 주셨는데도 자기 근기에게 맞지 않는 수행방편을 선택한다면 엄청난 고생만 하게 될 뿐”이라며 “눈 밝은 스승을 모시고 각자 자기에게 맞는 방편으로 수행정진하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이 강의도 이제 9부 능선에 왔다. ‘위산구인 공휴일궤(爲山九仞 功虧一篑)’라는 고사성어가 있다. 이는 ‘아홉길이나 되는 산을 만드는 공이 한 삼태기의 흙 때문에 무너진다’는 의미다. 즉, 마지막이 되면 정말 조심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막바지니깐 편안하게 여겨서, 급한 마음으로 인해 사고가 난다.

<서유기>에서도 급한 마음을 먹으면 안 된다고 강조하고 있다. 공자의 말처럼, 욕속즉부달(欲速則不達), 즉 너무 빨리 가려다 가는 오히려 달성하지 못한다고 했다. 또 소불인즉난대모(小不忍則亂大謀)라. 사소함을 참지 못하면 큰 일을 꾀하기가 어렵다고 했다.

쉬운 일이 끝나면 어려운 게 오기 마련이다. <서유기> 마지막 부분에서도 ‘여색의 관문’이 2개 더 나온다. 그 중 하나는 ‘쥐’요괴가 현장법사를 납치해서 결혼하자고 난리를 피운 일이다. 조사를 해보니 쥐요괴가 탁탑천왕(托塔天王)을 모시고 제사를 지낸 흔적이 쥐요괴가 거주하는 동굴에서 발견됐다. 손오공이 천궁으로 쳐들어가 ‘탁탑천왕에게 당신을 모시는 쥐요괴가 자신의 사부를 납치해갔다’고 항의하자 탁탑천왕은 펄쩍 뛰며 자신은 아무것도 모른다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이후 조사를 통해 과거에 탁탑천왕이 쥐요괴를 토벌하려다가 애절하게 살려달라고 하소연 하길래 그냥 놔준 적이 있음이 밝혀졌다. 그 쥐요괴는 그 게 너무나 고마워 자기 스스로 탁탑천왕을 아버지로 모시고 해마다 제사를 올렸던 거다. 근데 그것조차 ‘혐의’가 돼 탁탑천왕이 꼼짝없이 끌려와 싹싹 빌고 아들까지 데려와서 수사에 협조하게 된다.

이처럼 혐의라는 건 무서운 거다. 조그만 혐의라 하더라도 책임이 없는 게 아니다. 내가 일부러 시킨 게 아니더라도 책임을 져야 한다. 이 내용을 보면서 우리나라 정치인들도 반성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잘못한 것을 부하에게 책임을 돌리는 게 말이 되는 일이냐. 윗자리는 책임을 지는 자리다.

서유기의 마지막 색의 관문으로 쥐요괴와 함께 옥토끼도 나온다. 옥토끼는 달에 사는 토끼인데, 달에는 태음성분이 있다. 옥토끼는 하계로 내려와 현장법사를 취하는 채양보음, 즉 자기 수명을 연장하고 도력을 높이려는 술법을 쓰려다가 잡혀가는 게 묘사된다. 도가 높은 상대를 탐내는 옥토끼 입장에서는 현장법사가 장생불사를 꾀하는데 더없이 좋은 상대였다. 

서유기 마지막 부분에 또다시 색의 관문을 넣은 것은 그 만큼 성(性) 에너지가 통제하기 힘든 것을 보여주고자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성 에너지에 대해 주의를 주자는 취지이지, 죄악시 하자는 의미는 아니다. 성 에너지 또한 중요한 에너지원으로, 악으로 규정해서는 안 될 일이다.

현장법사 일행이 도착한 인도의 국경지역에서는 정월대보름을 맞아 엄청난 양의 향기로운 양젖기름을 짜서 부처님께 공양하는 전통이 있었다. 그들이 양젖기름을 큰 항아리 3개에 담아두면 밤사이에 부처님이 와서 가져가 공양한다고 믿었다. 하지만 양젖기름을 실제로 가져갔던 이는 부처님을 사칭한 요괴였다. 심지어 그 요괴는 현장법사마저 납치해갔다.

부처님께서 자신에게 좋다며 그 많은 양젖기름을 먹겠냐. 게다가 국민들에게 양젖기름을 힘겹게 만들어 오라고 하는 게 과연 부처님일까 하는 합리적인 의심은 온 데 간 데 없었다. 그런데 그들은 오랫동안 그걸 믿었다. 지혜가 빠진 말뚝 신심은 엉뚱한 결과를 낳는 걸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서유기를 보면 잘못된 종교의 모습도 나타난다. 애들을 죽인 뒤 약을 만들어 먹으면 불로장생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도사가 왕을 속이는 장면이 나온다. 감언이설로 목적을 내세운 채 애들까지 죽인 것이다.

잘못된 종교 양상을 보여주면 ‘그런 종교를 왜 믿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급하면 지푸라기에라도 매달리고 싶은 거다. 사교(邪敎)는 효과가 금방 나타난다. 하지만 고급 종교는 자꾸 여유와 자유를 준다. 더 위로 열어줌으로써 인간을 점점 높은 경지로 만들어 준다. 하지만 사교는 도덕적으로 묻지도 않고 이것만 믿으면 무조건 다 된다고 하는데, 그건 진짜 위험한 일이다.

불교의 기도는 달라고 해서 받는 기도가 아니다. 감응도교(感應道交)라 해서, 내가 기도하는 대상이 나에게로 옮겨오는 기도다. 그 힘이 나에게서 발현되면서 그 힘이 기도를 성취하는 원동력이 된다. 이를 통해 기도하는 존재 자체가 차츰 높아져 가는데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기도다. 하지만 잘못된 기도는 노예를 만든다. 게다가 잘못된 기도가 성취되면 정말 병이 된다. 일이 터지면 수습하지 않고 무조건 기도하러간다. 위험한 일이다.

우리는 수단과 목적의 관계를 잘 설정해야 한다. 올바른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이 정당화될 수 있다는 생각은 굉장히 위험하다. 개같이 벌어서 정승처럼 쓴다는 말이 있는데 굉장히 위험한 말이다. 개같이 벌면 개같이 쓰기 마련이다. 중간과정을 싹 말아먹고 목적만 성취한다고 되는 게 아니다. 삿된 방식으로 올바른 목적을 성취할 수는 없다.

우리의 삶은 수단이 아니다. 건강하고 참되게 채워나가는 게 우리 삶의 목적이기 때문이다. 큰 목적을 위해 참고 양보할 수는 있지만 목적과 어긋나는 삿된 짓을 하는 것은 굉장히 위험한 짓이다. 삿된 목적을 갖고 복 받을 일도 아닌데 복을 준다고 사기를 쳐서는 안 된다. 또 한편으로 무지해서 복 받을 일도 아닌데 복을 받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도 벗어나야 한다.

대장정 막바지단계에서는 현장법사 일행이 영취산 소외음사를 앞두고 7~8리나 되는 격류와 마주친다. 그런데 외나무다리를 통해 건너야만 했다. 손오공을 제외한 나머지 일행이 외나무다리에서 머뭇거리자 뱃사공이 나타나 배로 건너주겠다고 제안했다. 그 뱃사공은 중생을 부처님 나라로 맞아들이는 조사로 부처님의 화신인 접인조사(接引祖師)였다. 그런데 그 배는 뱃전만 있고 바닥이 없는 무저선(無底船)이었다. 7~8리 외나무다리를 건너기보다는 뱃전이라도 잡고 건너는 게 낫겠다싶어 일행은 그 배를 탔다.

배를 타고 건너는데 물에 떠내려 오는 현장법사 시체와 마주 친다. 그 때 뱃사공이 현장법사에서 육체적 구속을 완전히 벗어던진 것이라며 축하의 뜻을 전했다. 지금까지 현장법사는 속된 몸을 벗지 못해 구름을 못 탔지만 이제 구름도 탈 수 있게 된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게 왜 길이 2개인지 살펴봐야 한다. 외나무다리는 7~8리 외길관문을 거쳐 가야 부처님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지만 부처님처럼 대근기나 건너갈 수 있는 길이다. 또 다른 길인 무저선은 뱃전이라는 형식을 빌렸지만 바닥, 즉 궁극이 없다. 형식을 빌리되 형식을 뛰어넘는 그 세계로 나가는 것을 무저선이 보여주고 있다.

외나무다리를 통해 건너거나 무저선을 타고 건너는 것 모두가 깨달음의 세계로 향하는 길이다. 부처님께서 외나무다리를 건너셨다고 해서 우리 모두가 외나무다리를 통해 피안의 세계로 가야하는 것은 아니다. 부처님께서 목적지를 밝혀주고 8만4000가지 방편을 제시해 놨는데, 우리는 각자 자기에게 맞는 방편을 선택해 그 길로 가면 된다. 그 많은 방편 대신 석가모니부처님께서 가셨던 힘겨운 길을 똑같이 가려는 분들도 있긴 하다. 하지만 자기 근기에게 맞지 않는 방편을 선택한다면 엄청난 고생만 하게 될 뿐이다.

자기에게 적합한 수행방편을 제대로 들지 못한 채 노력만 기울인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니다. 그래서 최소한 한번이라도 그 길을 먼저 가본 눈 밝은 스승이 있어야 한다. 목적지를 알지 못한다면 그 방편이 여기서 왜 필요한지를 모른다. <천수경> 서원 가운데 ‘원아조득선방편(願我早得善方便), 즉 좋은 방편을 빨리 얻기를 기원한다는 것도 이와 같은 의미를 담고 있다. 불자들은 염불, 화두, 사경, 다라니 등 자신에게 맞는 좋은 방편을 선택한 뒤 끊임없이 수행정진해야 한다.

실크로드 인문학 리더스클럽 강좌를 듣고 있는 수강생들.

■ 성태용 교수는…

성태용 교수는 서울대 철학과를 졸업한 뒤 1983년부터 2017년까지 건국대 철학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인문학 대중화에 기여했다. 한국학술진흥재단 인문학단장으로 ‘인문학 대중화’ ‘인문한국’ 사업 등을 시행하면서 인문학 진흥에 초석을 놓았다. 한국철학회장과 한국철학사연구회장 등을 역임하고 국보 제1호 숭례문 복원사업에서 상량문을 작성함으로써 문화 영역에도 많은 기여를 했다.

독실한 불자이기도 한 성 교수는 조계종 화쟁위원회 위원과 불교성전편찬추진위원회 상임위원 등을 맡아 불교발전에도 이바지하고 있다. 특히 2006년부터 2012년까지 우리는 선우 이사장을 맡아 재가불자운동을 펼쳐왔다.

[불교신문3490호/2019년5월29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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