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한번 세상에 나면 입안에 모두 큰 도끼가 있다. 
그것으로 자기와 남을 찍을 때 그 입안에서 나쁜 말이 나온다. 

- <정법념처경> ‘십선업도품’ 중에서


봄비 내렸다. 온다는 말은 이유도 없이 나는 그저 좋다. 창에 흐르는 빗물, 물안개 속에 잠기는 산등선, 법당 두드리는 빗방울…. 그래 좀 와도 좋다. 너무 가물었다. 먼지가 가시고, 목마름이 가시고. 그러고 보면 오는 것과 가는 것이 동시(同時)라는 게 얼마나 좋은가. 봄비 따라 몰려오는 흙냄새가 좋고, 봄비 덕분에 마음도 해야 할 일의 억압에서 투두둑 풀려났으니 좋다.

봄비 가신 뒤 땅심도 노글거리며 풀어졌다. 호미를 들고 밭에 나갔지만 풀이야 손으로 뽑아도 잘 올라온다. 파종을 하고 입을 삐죽 내밀어 산비둘기를 놀리고. 녀석은 콩싹을 노린 게다. 감자잎은 파릇파릇하니 됐고, 군데군데 난 달래를 뭉텅이로 캐다 옮겨 심으며 씨를 바랐다.

나이 탓인지 지나친 것들이 왜 귀해 보이는지. 모두 봄비에 녹아내린 땅심의 영향이거니와 젖는다는 것은 굳은 것이 풀리고 맺힌 것이 부질없어지는 일. 그대의 고운 말에 젖는 일도 부디 그러하기를 바라는 건 보살의 마음이다. 

[불교신문3488호/2019년5월15일자]

도정스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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