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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인에세이] 꿩을 잡지 않은 매의 마음 

기독교의 최대 기념일인 부활절, 스리랑카에서 발생한 연쇄 폭발 테러로 300명 가까운 사람이 목숨이 잃었다. 외신에 따르면 이날 오전 콜롬보에 있는 성 안토니오 성당을 시작으로 외국인 이용객이 많은 주요 호텔 세 곳에서 거의 동시에 폭발이 일어났다. 부활절을 맞은 교회가 주 타깃이었다. 

이번 테러도 극단적인 종교분쟁의 소산일 가능성이 높다. 물론 종교를 앞세운 테러집단의 만행이지만, 그 근거에 폭력적인 신앙이 자리 잡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를 늘 안타깝게 한다. 아니, 사실은 안타까움을 넘어 분노에 가까운 것이다. 사회와 역사의 굴곡진 배경을 감안하더라도 집단의 폭력성은 어떤 합리화라도 받아들이기 어렵다. 이제 우리에게는 차원이 다른 사랑의 거듭남이 진정 필요하다. <삼국유사>에는 이런 이야기가 전해 온다. 

신라 신문왕 때인 683년, 재상 충원공(忠元公)이 장산국(山國)의 온천에 목욕을 갔다 집으로 돌아올 때였다. 장산국은 지금의 부산 동래이다. 동래는 그때부터 온천으로 유명했다. 일행이 울산 근처인 굴정역(屈井驛)의 동지(桐旨) 들에 이르러 잠시 쉬었다. 문득 한 사람이 매를 날려 꿩을 쫓게 하는 것을 보았다. 꿩 사냥을 하는 것이다.

꿩은 금악(金岳)으로 날아 지나가더니 아득히 자취가 없었다. 충원공과 사람들이 매의 방울 소리를 듣고 찾아갔다. 굴정현의 관청 북쪽에 있는 우물가에 이르자 매가 나무 위에 앉아 있고, 꿩은 우물 안에 있는데, 온통 핏빛이었다. 꿩은 두 날개를 펼쳐 두 마리 새끼를 감싸고 있었다. 매도 불쌍히 여기는지 잡지 않는 모양이었다. 

이 이야기는 <삼국유사> 탑상 편에 ‘영취사(靈鷲寺)’라 제목 하여 실려 있다. 영취사라는 절이 어떻게 해서 만들어졌는가 보여주는 사찰연기설화이다. 주인공인 충원공은 여기서만 등장하는 인물이고, 영취사로 보이는 절터가 울주군 청량면 율리에 남아 있다.

우리는 여기서 ‘죽더라도 새끼들은 지키겠다는 어미 꿩’과 ‘한낱 짐승으로도 자비를 아는 매’를 지켜보게 된다. 그런데 하이라이트의 순간에 응불확치(鷹不攫雉), 매가 꿩을 잡지 않다는 말이 나온다. ‘꿩 잡는 게 매’라는데, 꿩을 잡지 않는 매라니 이상하지 않은가. 한낱 짐승으로도 자비를 아는 매라고밖에 설명할 수 없다. 

그런데 더 중요한 사실이 있다. 실은 매가 자비심을 일으켜 꿩을 마지막까지 공격하지 않았는지 알 길이 없다. 우물 깊은 곳이라 매가 날아 들어가지 못했을 수도 있지 않은가. 이 광경을 목격하며 충원공을 비롯한 사람들이 매의 행동을 자비심으로 해석했다는 것이 아름답다. 완악한 욕심만 가졌다면 사람들은 공격하지 않는 매를 보며 용렬하다고 여겼을 것이다, 꿩을 잡아오지 않는다고 화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이 광경을 매의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읽고 있다. 

나는 이것이 두 짐승 사이에다 ‘깨우침의 무릎을 꿇을 줄 아는 사람’이 어우러진 ‘어떤 메커니즘’이라고 여긴다. 그들은 절의 이름을 영취사, ‘신령스러운 매의 절’이라고 붙였다. 석가모니 부처님이 어느덧 신라 땅에 고요히 내려와 있는 모양새다. 우리는 그런 신라와 신라 사람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거니와, 세계가 이런 사랑과 깨달음으로 거듭난다면 더 바랄 나위 없겠다. 

스리랑카의 부활절 테러 소식을 들으며 새삼 드는 생각이다. 

[불교신문3488호/2019년5월15일자]

고운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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