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도스님, 계 받을 준비하고 나오십시오”

소수림왕 5년 2월, 왕은 
성문관 자리에 사찰을 세우고 
순도를 주석하게 했다 
사찰은 ‘초문사’라고 했다 

이어서 국내성 남문밖에 
사찰 하나를 더 세운 뒤 
아도를 주석하게 했다 
‘이불란사’라고 했다 

정식으로 사찰이 건립되자 
불교를 배우고자 하는 이들이
앞 다투어 찾아왔다 

초문사는 부처님 가르침을 찾는 
모든 이들을 향해 
문을 활짝 열었다 
반면 이불란사는 
스님들을 위한 사찰이었다

아비 없는 아기

“저분은 아도스님이시잖아? 무슨 일이지? 갓난아기와 함께 입궁을 하시다니.”

“그러게 말입니다. 산파 할멈까지 궁에 데려온 모양입니다.”

아도와 산파가 대전에 들 때까지 수군거림은 계속되었다. 남몰래 아도를 연모해온 궁녀들은 눈물을 글썽이기도 했다. 왕이 아도에게 물었다. 

“아도스님, 오랜만에 뵙습니다. 이 아기는 누구입니까?”

“전하의 자식이옵니다.”

아도의 대답에 대전이 술렁거렸다. 왕과 왕후 사이에 자식은 없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일이었다. 게다가 왕은 후궁조차 두지 않고 있었다. 어쩌면 저 갓난아기가 장차 고구려의 왕위를 물려받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대신들은 혹시 궁 밖에 왕이 은밀하게 정을 준 여인이 있는가 싶어 미간을 찌푸리며 풍문을 더듬었다. 하지만 그런 소문을 들어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사이 숨을 고른 아도가 다시 말을 이어갔다.

“태어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어미를 잃은 아기입니다. 사정이 너무 안타까워 외면하지 못하고 데려오게 되었습니다. 전하께서는 만백성의 아버지시고, 왕후께서는 만백성의 어머니이시니 부디 은덕을 베푸시어 이 아기를 거두어 주시옵소서.”

아도가 말을 마치자 안도의 한숨이 퍼져나갔다. 대신들은 고개를 숙인 채로 ‘그럼 그렇지, 우리 전하께서 남몰래 궁 밖에 자식을 두셨을 리가 없지’ 하는 눈빛을 주고받았다.

“아기의 어미는 죽었다 했는가?”

왕후가 아도에게 물었다.

“그렇사옵니다. 소승이 직접 시신을 화장해주었습니다.”

“아기의 아비는 보지 못하셨습니까?”

아비가 누구인지를 묻는 왕후의 질문은 아도의 가슴을 바위로 내려치는 것처럼 고통스러웠다. 왕후의 의도가 무엇인지 알지만 그래도 가슴이 아팠다. 

“어미의 장례를 치르는 동안, 아기 아버지는 보지 못했습니다. 마을 사람들이 말하길, 처음부터 아기의 어미 혼자 그곳에 와서 지냈다고 하였습니다.”

“아비는 본 적도 없고 태어나자마자 어미까지 잃다니 가엽기도 하지. 스님의 기도로 아기의 어미는 극락에 갔을 것입니다.”

왕후와 아도의 대화를 잠자코 지켜보던 왕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이 아기는 왕후가 맡아서 기르도록 하시오. 왕실에서 선행을 하면 고구려의 백성들에게 복이 가지 않겠소. 아, 그대들은 기왕 모인 김에 앞으로 고아의 구휼을 어찌하면 좋을지에 대해서 더 철저하게 논하도록 하시오.” 

“그리하겠사옵니다.”

대신들은 영민하고 자비로운 왕을 향해 허리를 굽혔다. 

아기의 이름

그날 저녁, 왕과 왕후는 아도를 다시 불렀다. 

“순령이의 아기를 제 손으로 키우고 싶어 스님께 참 힘든 부탁을 드렸습니다.”

“아닙니다. 마땅히 제가 해야 할 일입니다.”

아도는 고개를 저으며 슬픈 눈으로 아기를 바라보았다. 이미 어미가 된 것처럼 아기를 품에 안은 왕후의 얼굴은 관세음보살을 닮아있었다. 

“혹시 순령이가 아기의 이름에 대해서 남긴 말은 없었나요?”

“ … 도령이라고 했습니다.”

“도령이요?”

“좋은 이름입니다. 아주 잘 어울리네요.”

왕은 잠든 아기의 얼굴을 바라보며 왕후에게 말했다.

“아도스님의 도(道)와 순령이의 령()에서 한 자씩 따온 것이로군요.”

왕후는 그제야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지었다.

“그러게요, 고도령. 정말 예쁜 이름이네요.”

아도가 놀라 고개를 들자 왕은 왕후의 손을 꼭 잡으며 말했다.

“순령이의 아기에게 ‘고’씨 성을 내리기로, 진작부터 왕후와 이야기를 해 두었습니다. 우리 부부는 자식이 없으니 도령이는 우리 자식처럼 키울 것입니다.”

“아마도 이런 인연이 있으려고 부처님께서 자식 대신 순령이와 도령이를 제게 보내셨나 봅니다. 순령이는 너무 빨리 데려가셨지만, 도령이는 두고두고 제 손으로 키울 것입니다.”

왕후의 모습은 자애로운 어머니 그 자체였다. 눈가가 뜨거워진 아도는 고개를 숙이며 참았던 눈물을 쏟았다. 

“성은이 망극합니다.”

“아닙니다. 우리 부부와 고구려에 귀한 아이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왕과 왕비도 붉어진 눈으로 아도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계를 받다

도령이 왕과 왕후의 양딸이 되자 돌을 매달아놓은 것처럼 무거웠던 아도의 마음에도 바람이 통하기 시작했다. 어떻게 해야 이 은혜를 갚을 수 있을지 지금은 알 수 없었다. 아도는 순도가 있는 성문관으로 갔다. 

“오셨습니까, 스님”

가사와 장삼을 갖춰 입은 순도가 깍듯하게 아도를 맞았다. 

“오늘이 바로 그 날입니다. 아도스님, 계를 받을 준비를 하고 나오십시오.”

아도는 순도의 발에 이마를 대고 울음을 터트렸다. 순령을 만난 뒤 계를 받는 것에 대해서는 까맣게 잊고 있었다. 순령이 떠난 뒤에는 앞으로 어떻게 고개를 들고 살아야 할지 막막했다. 그런데 출가한 지 8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석아도’라는 이름 석 자를 갖게 된 것이다. 속세의 모든 인연이 이슬과 같고 꿈과 같다는 선사들의 법문을 이제야 조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어머니를 떠나 단계사에 남았을 때는 당장에라도 출가를 할 기세였다. 계를 주지 않는 스승 도안대사를 원망하기도 했다. 만약 머나먼 고구려에서 한 여인을 만나고, 자식을 낳게 될 줄 알았더라면 출가를 선택할 수 있었을까. 아니면 다른 길을 갔을까. 아도는 고개를 들었다. 백 번을 다시 생각해도 천 번을 다시 생각해도 자신은 이 길을 선택했을 것이 분명했다. 잡념이 모두 사라진 아도의 맑은 얼굴을 본 순도는 미소를 지었다. 

사찰을 세우다

소수림왕 5년 2월, 왕은 성문관이 있던 자리에 사찰을 세우고 순도를 주석하게 했다. 사찰의 이름은 ‘초문사’라고 했다. 이어서 국내성 남문밖에 사찰 하나를 더 세운 뒤 아도를 주석하게 했다. 사찰의 이름은 ‘이불란사’라고 했다. 정식으로 사찰이 건립되자 불교를 배우고자 하는 이들이 앞 다투어 찾아왔다. 초문사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찾는 모든 이들을 향해 문을 활짝 열었다. 반면 이불란사는 스님들을 위한 사찰이었다. 아도는 대중들과 거의 만나지 않은 채 경전 연구에 매진했다. 

순도는 초문사를 찾은 이들 중 학문에 뜻이 있는 사람을 이불란사로 보냈다. 백성들은 순도의 법문을 듣기 위해 초문사를 찾았고, 이불란사를 찾은 이들 중 대부분은 출가 수행자의 길을 걸었다. 고구려에는 국내성을 중심으로 승려들이 차츰차츰 늘어갔고 귀족들 사이에서는 집 안에 불당을 만들고 불상을 모시는 것이 유행처럼 번져갔다. 스님을 집으로 초대해 공양을 대접하는 일도 잦았다. 귀족들이 불교를 받들기 시작하자 백성들의 신앙심도 뜨거워졌다. 

고구려에 불교 열풍이 시작되던 소수림왕 14년, 진나라의 황제 부견은 한때 그의 신하였던 장수 요광에게 사로잡혀 죽임을 당했다. 순도와 아도는 자신들을 고구려에 보내준 황제의 극락왕생을 위해 기도했다. 몇 개월 후, 율령을 반포하고 태학을 설립하고 불교를 공인하고 사찰을 건립하는 등 많은 업적을 남긴 소수림왕이 승하하였다. 

[불교신문3488호/2019년5월15일자]

글 조민기  삽화 견동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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