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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타쿠’에 인류 미래 있다?[부처님오신날 특집] “먼지 한 톨에 온 우주”…“누구나 주인공 세상의 중심”
  • 김성철 동국대 경주캠퍼스 불교학부 교수
  • 승인 2019.05.10 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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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타쿠. 일본어로 お宅(おたく)라고 쓴다. 외출은 하지 않고 집(宅)에만 틀어박혀 컴퓨터 앞에 앉아서 게임이나 애니메이션을 즐기면서 시간을 보내는 젊은이를 부르는 신조어였다. 일본어의 높임말 접두사 ‘오(お)’자가 붙어 있지만 가상세계에 푹 빠져서 생활하는 외톨이를 비하하는 호칭이었다. 그런데 최근 들어서 오타쿠의 의미에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집에만 박혀 있는 외톨이’를 넘어서 자신이 좋아하는 특정 취미에 몰두하여 일가를 이룬 사람을 일컫기도 한다. <편집자>

기성세대 상상 못하는 덕후 세계 
콜럼버스 신대륙 부르주아 탄생
제2신대륙엔 오타쿠 인재 상륙

‘상인’에서 ‘덕후’로 계급 이동해
BTS 성공 비결도 오타쿠 전략

우리나라에서는 오타쿠를 미화(美化)하여 ‘타쿠’와 발음이 유사한 ‘덕후(德厚)’라는 말을 더 많이 사용한다. 덕후란 “덕이 두텁다”는 뜻이다. 의미의 반전(反轉)이다. 서양의 덕후를 지칭하는 ‘양덕(洋德)’이라는 용어도 인터넷에서 자주 눈에 띈다. 역사 덕후를 의미한다는 역덕, 일본애니메이션광인 오덕, 스타크래프트 게임에 빠진 스덕, 밀리터리 군사문화에 심취한 밀덕, 연애인 덕후라는 연덕, 뮤직 덕후의 뮤덕, 포켓몬스터 덕후인 포덕 … . 그야말로 별의 별 덕후들이 다 있다.

기성세대는 이해할 수도 없고 상상조차 하지 못하는 덕후들의 세계가 열리고 있다. 아니, 이미 열려 있다. 컴퓨터와 인터넷, 스마트폰과 같은 정보통신문명의 기기들의 출현으로 급격하게 증식하고 있는 가상의 세계, 어마어마한 의미의 세계다. 그리고 오타쿠적 성향의 인재들이 이를 주도한다. 오타쿠. 가상세계를 개척하고 선도하는 전위병이다.

동서를 막론하고 유사 이래 인류는 혈통으로 사회적 신분을 결정하였다. 그런데 그 잣대를 혈통에서 금력으로 전환시킨 일대사건이 발생하였다. 1492년, 콜럼버스의 아메리카대륙 발견이었다. 유럽인의 관점에서는 ‘신대륙의 발견’이라고 불렀다. 아메리카 대륙 발견의 소식이 유럽에 전해지자, 곧이어 수 천 척의 배가 신대륙으로 떠났다. 배에는 대개 무기가 실려 있었고 탑승했던 사람들 대부분은 성에 살던 도시인들이었다. 

침탈과 채굴을 통해서 엄청난 양의 재화가 유럽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유럽 면적의 4배가 넘는 남북아메리카 대륙의 재화가 유럽에 집중되었다. 금괴나 은덩이와 같은 화폐대용물(Bullion)이 남아돌기 시작하였다. 이렇게 남아도는 재화를 캐피탈(Capital)이라고 불렀다. 이를 운용하여 부를 증식시키면서 캐피털리즘, 즉 자본주의가 시작되었다. 근대의 시작이기도 했다.

초창기에 신대륙 개척에 나섰던 사람들은 왕이나 귀족과 같은 정치권력이 아니라 성에 살던 도시인들이었다. 즉, 상업인들이었다. 이들은 1789년 발생한 프랑스대혁명의 주도세력이 되었다. 이들 상업인들을 일반적으로 시민(Civil)이라고 부르지만, 도시인 성(Burg)에 살던 사람이라는 의미에서 부르주아(Bourgeois)라고 부르기도 한다. 과거에는 권력과 금력을 모두 혈통귀족들이 쥐고 있었다. 그러나 신대륙 개척을 통해 금력이 이들 부르주아에게 집중되면서 자연스럽게 구체제(Ancien Régime)가 전복되었다.

역사상 최초로 무인(武人)에서 상인(商人)으로 권력의 ‘직종 이동’이 발생했다. 인도의 카스트로 표현하면, 세속적 힘의 중심이 끄샤뜨리야(왕족)에서 바이샤(상인)로 이동한 것이었다.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경작지를 소유한 혈통귀족이 아니라, 물건을 제조하고 이를 시장에 내다파는 상업인들에게 재화가 집중되었다. 우리나라의 어느 기업인이 말했듯이, 상업인들에게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았다.” 그 후 근 500년간 ‘기업가 정신’에 투철한 이들 상업인들이 인류의 부를 창출해왔고, 금력을 거머쥐고 있었다.

이제 지구상에는 더 이상 침탈과 개척을 기다리는 빈 땅이 남아 있지 않았기에, 새로운 계급의 출현은 가능할 것 같지 않았다. 그런데 컴퓨터와 인터넷, 스마트 폰이 대표하는 정보통신문명이 출현하면서 새로운 조짐이 보이고 있다. 

백설 공주나 신데렐라를 구원한 ‘백마 탄 기사와 같은 귀족’이나 포마드 윤기 반질반질한 올백 헤어스타일의 ‘진취적인 기업가’가 아니라, 컴퓨터 앞에서 자판을 두드리며 밤을 지새우다가 눈이 시뻘개진 ‘오타쿠적 인재’들 중에서 하나, 둘 거부(巨富)가 나타나는 것이다. ‘상인’에서 ‘덕후’로 계급의 이동이 일어나고 있다. 정보통신기기가 만들어 낸 제2의 신대륙, 가상세계를 개척하는 새로운 계급이다.

오타쿠적 인재들은 그 성취가 대인관계의 능란함에서 온 것이 아니기에, 외모에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공식 석상이든 사석이든 수염을 덥수룩하게 기르든지, 청바지에 잠바 하나 걸쳐 입고 나타난다. ‘준 거지 스타일’이다. 고전적인 기준으로 보아 소위 ‘잘 생긴’ 사람이 별로 없다. 외모를 드러내는 대인관계가 불편할수록 오타쿠적 성향은 강해져서 아날로그 세계로부터의 도피처인 가상공간에 몰입하기에, 디지털 세계의 속성에 더욱 정통하게 된다.

알리바바의 마윈(馬雲), 페이스북의 마크 저커버그(Mark Zuckerberg), 트위터의 잭 도시(Jack Dorsey), 더 멀리는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Bill Gates) 그리고 비트코인을 창시한 정체불명의 사토시 나카모토(Satoshi Nakamoto) 등이 그들이다. 방탄소년단(BTS)의 세계적인 성공도 그 비결은 오타쿠적 전략에 있었다. 

아이돌 그룹을 결성한 후, 세계 대중음악계의 중심으로 직접 달려드는 무모한 일을 벌이지 않고, 정성을 다하여 뮤직비디오를 제작한 후 유튜브를 통한 보급에 심혈을 기울였다. 바텀 업(Bottom up) 방식의, 지극히 오타쿠적인 접근이었다. BTS는 순식간에 세계 최고의 보이그룹으로 등극하였다.

“먼지 한 톨 [크기의 공간] 속에 온 우주가 들어있다.” <법성게>의 한 구절인 ‘일미진중함시방(一微塵中含十方)’의 우리말 풀이다. <법성게>는 의상(義湘)대사께서 <화엄경>의 핵심을 요약하여 도장의 형상으로 표현한 <화엄일승법계도>에 실린 경문을 일컫는다. 온 우주가 한 점 속에 들어간다는 말은 얼핏 들으면 신비한 가르침 같아 보이지만, 우리가 늘 체험하는 일상사를 새로운 각도에서 통찰한 서술일 뿐이다.

예를 들어서 내 눈에 보이는 모든 풍경들이 사실은 검은 눈동자 한 가운데 뚫린 한 점 동공으로 들어와 망막으로 투사된 영상이다. 시야 전체가 한 점 동공으로 빨려 들어간다. 또 나에게 들리는 모든 소리는 사실은 내 귓구멍으로 들어와 청신경을 자극하여 들리는 것일 뿐이다. 시야 전체가 한 점 동공으로 수렴하고, 시방(十方)의 소리가 작은 귓구멍으로 들어온다. 내 눈동자나 귓구멍뿐만 아니라, 우리가 사는 3차원 우주공간의 그 어느 곳의 한 점을 잡아도 그 한 점 공간 속으로 사방의 모든 형상과 소리 등이 들어온다.

그래서 <법성게>에서는 곧이어 ‘일체진중역여시(一切塵中亦如是)’라고 노래한다. “어느 곳의 먼지 [크기의 공간이]든 역시 이와 마찬가지다.” 거대한 우주가 한 점 속에 들어가도 걸림이 없다. 사사무애(事事無礙)다. 이는 우리가 사는 물리적 우주, 3차원 공간에 대한 과학적 통찰에 다름 아니다. 차방정토(此方淨土)인 화장장엄세계의 참 모습이다.

그런데 컴퓨터와 인터넷, 스마트 폰과 같은 정보통신기기가 개발, 보급되면서 사바세계와 오버랩 되어있던 화엄의 사사무애 법계가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한 점의 공간이 온 우주를 머금듯이, 내가 소유한 컴퓨터와 스마트 폰 속으로 전 세계의 정보가 들어온다. 세계 각국의 네티즌들이 가상세계에서 만들어낸 온갖 정보들이 정보통신기기를 통해서 나에게 전달되며, 내가 가상공간에 올리는 모든 정보 역시 전 세계로 보급된다. 나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사람이 소유한 정보통신기기에서도 같은 일이 벌어진다.

그야말로 ‘일미진중함시방 일체진중역여시’인 화장장엄세계다. 누구나 주인공이고, 세상의 중심이다. 내가 주(主)가 되면 네가 객(客)이 되고, 내가 객이 되면 네가 주가 되는 화엄학 십현연기(十玄緣起)의 주반원명구덕문(主伴圓明具德門)에서 가르치듯이, 정보통신기기와 대면한 우리 모두는 누구나 정보의 생산자(Producer)이면서 소비자(Consumer)인 프로슈머(Prosumer)들이다. 

제2의 신대륙인 가상세계에서 일어나는 일들이다. 그리고 이 시대의 새로운 거부들 대부분은 정보통신기기가 만들어낸 가상세계의 신대륙을 개척하고, 가상세계에서 거주지를 건립하고, 이벤트를 벌이고, 소통을 중개하는 오타쿠적 인재들이다.

경작지를 소유한 지주에서, 상행위에 능란한 부르주아로 이동했던 재화가, 이제는 가상공간의 속성에 정통하여 이를 능수능란하게 활용할 줄 아는 오타쿠적 인재들에게 집중되고 있다. 아메리카대륙의 발견 이후 부르주아들이 세계를 주도하더니, 제2의 신대륙인 가상세계의 출현으로 오타쿠적 인재들이 인류의 부를 창출하기기 시작하는 것이다. 마르크스가 예측하지 못했던 새로운 계급의 탄생이다. 

인도의 카스트제도로 설명하면 이들 오타쿠들은 가상세계를 능숙하게 다룬다는 점에서, 종교적 가상의 전문가였던 브라만에 비견되리라. 가상세계에 나타난 화장장엄의 신대륙을 개척하는 오타쿠. 근대의 문을 연 부르주아를 대체하는 이 시대의 새로운 계급이다. 오타쿠적 인재가 인류의 미래를 개척한다. 오타쿠적 인재가 인류의 부를 창출한다. 오타쿠의 어깨에 인류의 미래가 달려 있다.

김성철 동국대 교수

[불교신문3487호/2019년5월11일자]

김성철 동국대 경주캠퍼스 불교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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