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롭게 오가고 편지라도 교환하면…그게 바로 통일”
“자유롭게 오가고 편지라도 교환하면…그게 바로 통일”
  • 수원=엄태규 기자
  • 승인 2019.05.17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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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 부처님오신날 앞둔 수원사 탈북동포모임 법회
북한이탈주민 3만명 시대, 부처님오신날을 앞두고 지난 4월27일 수원사에서 만난 북한이탈주민들은 북에 있는 가족들을 다시 만날 수 있기를 발원했다. 가족들의 건강을 부처님 전에 발원하는 북한이탈주민.

월1회 모임 갖고 신행활동
<부모은중경> 독송하며
北에 있는 가족들 건강과 평안
부처님 전에 발원

지난해 4월27일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판문점에서 손을 잡았다. 남북 정상의 역사적인 만남으로 한반도에는 평화의 바람이 불었다. 대립과 반목의 시대를 끝내고 화해와 평화의 시대가 올 것만 같았다.

하지만 북미정상회담이 성과 없이 끝나고 남북관계도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곧 북측에 있는 가족들을 만날 수 있으리라는 기대도 실망으로 바뀌었다. “남북 지도자들이 만나서 악수할 때만 해도 곧 평화가 찾아오겠구나, 평화가 찾아오면 곧 고향에 갈 수 있겠구나 생각했어요. 지금처럼 소득이 없을 줄은 몰랐죠. 그저 시간만 흐르고 있으니 답답합니다.” 지난 4월27일 수원 수원사에서 만난 북한이탈주민 이경희(가명) 씨는 이같은 심정을 토로했다.

2018년 통일부 북한이탈주민 입국 인원 현황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로 들어온 북한이탈주민 수는 현재 3만2042명으로 추산되고 있다. 이 씨와 같이 북한이탈주민들은 대부분 북측에 가족을 두고 온 경우가 많다. 고향에 가서 가족을 만나고 싶다는 꿈, 많은 북한이탈주민들이 가슴에 품고 있는 꿈이다. 부처님오신날을 앞둔 지난 4월27일 수원사에서 열린 탈북동포 모임 현장을 찾았다.

종교 자유를 인정하지 않는 사회에서 생활하다 남으로 넘어 온 북한이탈주민들은 국내 입국 과정과 사회정착을 위한 하나원 교육과정 기간 동안 불교를 접하게 된다. 하지만 하나원 퇴소 이후 불교와의 인연을 이어가는 일을 생각처럼 쉽지 않다.

수원사는 북한이탈주민들의 사회적응을 돕고 심리적 안정을 지원하기 위해 지난 2017년부터 북한이탈주민 여성쉼터인 연꽃쉼터를 운영하고 있다. 또 월1회 탈북동포모임을 통해 북한이탈주민들의 신행활동을 돕고 있다. 한 달에 한 번 수원사에서 모이는 날, 행사 전부터 수원사 관음전을 찾은 북한이탈주민들은 서로의 안부를 물으며 이야기꽃을 피웠다. 의정부, 남양주, 평택 등 곳곳에서 수원사를 찾은 이들은 30여 명. 고향에 가족을 두고, 사선을 넘어 남으로 넘어온 이들. 같은 아픔을 겪고 있는 이들이기에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금세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홍성란 북한이탈주민정착지원사무소 상임포교사의 집전으로 법회가 시작됐다. 여느 사찰 법회와 달리 찬불가 대신 ‘우리의 소원’이 관음전에 울려 퍼졌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 꿈에도 소원은 통일/ 이 정성 다해서 통일/ 통일을 이루자”

북한이탈주민 법회에서만 볼 수 있는 특별한 풍경이었다. 북한이탈주민들에게 통일을 바라는 이유는 정치나 이념과 같은 거창한 것이 아니었다. 단지 가족들을 다시 만나고 싶은 마음, 함께 모여 같이 밥을 먹고 잠을 자고 하는 지극히 단순한 이유에서다. 많은 사람들이 가족과 함께 누리고 있는 소소한 일상과 행복이 북한이탈주민들에게는 허락되지 않고 있다. 통일을 염원하는 부르는 ‘우리의 소원’. 북한이탈주민 법회에서 이 노래가 빠지지 않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북에 있는 가족들 생각에 노래를 부르는 목소리가 떨리기도 했다.

법회 참가자들이 통일을 바라며 ‘우리의 소원’을 부르는 모습

이어 <부모은중경>을 독송하는 시간. 부모가 아이를 낳고 기르며 성장하기까지 부모 은혜 열 가지를 설하며 부모에게 다함없이 효도하기를 강조하는 <부모은중경>은 북한이탈주민들이 가장 즐겨 독송하는 경전이다. 북한이탈주민들은 <부모은중경>을 독송하며 부모와 가족,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달래고 통일돼 다시 만날 그날까지 잘 살기를 부처님 전에 발원한다.

이날 법회에 참가한 30여 명이 한 마음, 한 목소리로 경전을 읽어나갔다. “부모의 크신 은혜 깊고 무거우니 베푸시는 크신 사랑 그칠 새가 없다네. 앉거나 서거나 마음에서 떠나지 않고 가깝거나 멀거나 생각 항상 따라가네. 어머니 연세 백살이 되어도 팔십된 그 자식을 항상 걱정하네. 이 같은 부모은혜 언제나 그칠런가. 두 눈을 감아야 비로소 다하려나….”

<부모은중경> 독송을 마치고 북한이탈주민들의 어머니 역할을 하는 홍성란 포교사가 법회 참가자들을 위해 깜짝 선물을 꺼냈다. 바로 수원사 신도들이 손수 만든 연등이다. 생각지도 않았던 부처님오신날 선물. 형형색색의 연등에 북한이탈주민들의 얼굴에도 미소가 번졌다. 홍성란 포교사는 무명을 밝히는 연등의 의미를 설명하며 “수원사 신도분들이 여러분들을 위해 직접 연등을 만들었다. 부처님오신날을 맞아 모두들 마음의 등불을 켜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이경희(가명) 씨는 “남으로 온 지 1년 반 정도 됐다. 같은 언어를 쓰지만 외래어가 많아 이해하기 힘들 때도 있고, 여전히 북에서 왔다고 하면 색안경을 끼고 대하는 이들도 많아 적응에 어려움이 많다”며 “하나원에서 불교와 인연을 맺었다. 가족같은 분위기가 좋아서 매달 수원사 법회에 오고 있다”고 말했다.

홍순옥(가명) 씨도 “수원사에 오면 새로 온 동포들을 통해 고향 소식도 들을 수 있어 좋다. 특히 <부모은중경>을 한 번 끝까지 읽고 나면 마음이 후련해지고 개운해 진다”고 말했다. 이제 김연화(가명) 씨는 “편견으로 우리를 대하는 시선이 따가울 때가 있다. 벽이 느껴지기도 한다”며 “여기 오면 같은 아픔과 상황을 겪고 있는 동포들이 있어 마음이 편하다. 북에 있는 가족들을 생각하며 기도도 할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고향도 다르고 남으로 오게 된 이유도 각양각색이었지만 부처님오신날 발원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바로 남과 북이 하나가 되는 ‘통일’. “부처님오신날을 맞아 통일이 빨라지고 고향가서 가족들을 만나는 날이 오길 바랍니다. 남북이 문화 차이를 허물고 하나가 됐으면 좋겠습니다.(이경희 씨)”

“남북이 서로 자유롭게 래왕(왕래)하고 서신교환이라도 했으면 좋겠습니다. 통일이 어려운 게 아니라 그게 바로 통일이죠.(홍순옥 씨)”, “하루 빨리 가족들을 만나는 게 소원이죠. 70년 넘게 갈라졌는데 이제 더는 가슴 아픈 일이 없어야죠.(김연화 씨)”

수원사를 찾은 북한이탈주민들을 환영하는 주지 세영스님.

[불교신문3487호/2019년5월1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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