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가요 ‘안동역에서’ 대박…불자가수 진성의 삶과 노래

지난 4월26일 법주사와 보은군사암연합회가 함께 연 ‘제11회 보청천 문화축제’에서 가수 진성이 열창했다.

질곡된 어린 시절 아픔 극복
‘메들리 4대 천왕’ 인기만점

뒤늦게 히트 친 ‘안동역에서’
노래방서 애창곡 11위 차지

곡조 탄 천수경 금강경 독경
스님 못지않은 실력 선보여

60대 후반까지는 노래하고
보육원 찾아 봉사 전념할 터

“바람에 날려버린 허무한 맹세였나/ 첫눈이 내리는 날 안동역 앞에서/ 만나자고 약속한사람/ 새벽부터 오는 눈이 무릎까지 덮는데/ 안 오는 건지 못 오는 건지 오지 않는 사람아/ 안타까운 내 마음만 녹고 녹는다/ 기적소리 끊어진 밤에….”

노래방에서 가장 인기 있는 성인가요(트로트곡) 가운데 하나인 ‘안동역에서’ 노랫말이다. 노래방 반주기업체인 금영노래방이 지난 4월22일 발표한 ‘주간 인기곡(4월14~20일 집계)’ 부문에서 11위에 이름이 올랐다. 특히 ‘성인가요’ 부문에서는 1위를 차지하는 등 국민가요로 손꼽히고 있다.

안동역에서 노래는 오늘날의 가수 진성을 만들어 준 인생곡으로, 2008년 안동시를 홍보하기 위해 만든 안동 사랑 음반에 수록됐다. ‘다함께 차차차’ ‘찬찬찬’ 등을 작사한 30년 지기 김병걸 작사가의 제안으로 수고비 50만원을 받기로 하고 악보를 받아들었다. 10여 분 연습하고는 곧바로 녹음실에서 녹음을 마쳤다. 괜찮은 노래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 곡으로 별도로 활동을 하지도 않았다. 

당시 그는 오랜 무명생활을 마치고,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트로트 메들리를 부르면서 ‘고속도로 메들리 4대 천왕’으로 손꼽히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애틋한 사랑을 담은 노랫가사에다가 구성진 트로트 가락이 더해져 국민들의 감성을 이끌어 내면서 인동역에서 노래는 인터넷을 통해 소리 소문 없이 퍼져나갔다. 

방송과 라디오 등에 안동역에서 노래를 틀어달라는 신청이 줄을 이었지만 정식 앨범으로 등록되지 않은 헌정 앨범이었기에 방송국에 조차 CD가 없어 틀지 못하는 웃지못할 사태가 발생했다. 인기가 점점 높아지자 또 다시 김병걸 작사가한테서 전화가 왔다. “이 곡을 달라는 가수가 많은데 네가 가져가서 불러라.”

진성은 ‘태클을 걸지 마’라는 노래로 활발하게 활동하던 시기였다. 3개월간의 고민 끝에 안동역에서 전주 부분을 편곡을 통해 고향역에 대한 애틋한 감정을 담아낸 뒤 정식 앨범으로 발매했다. 반응은 곧바로 나타났다.

1주일이 지나자 전국 고속도로 휴게소마다 안동역에서 노래가 흘러나왔다. 인기에 힘입어 2개월만에 TV에도 출연했다. 3개월이 흐르자 전국적으로 히트를 쳤다. “인기를 얻자마자 ‘히트곡이 이렇게 탄생하는 구나’라는 느낌을 받았었죠. 방송을 통해 인기를 얻은 노래는 시간이 흐르면 인기가 시들해지기 마련입니다. 안동역에서는 5년 9개월이 지난 지금도 인기가 여전합니다. 제 노래는 입소문과 귀를 통해 계속 이어졌기 때문이지요.”

안동역에서 발매 6년만인 2014년은 가수 진성에게 최고의 한해를 선사했다. 2014년 초 국내 음원사이트는 물론 검색사이트 검색, 노래방 선곡, 고속도로 휴게소 앨범 판매 등에서 1위를 차지했다. 

노래자랑과 노래교실 등 트로트곡이 나오는 곳이라면 안동역에서가 빠지지 않고 애창됐다. 이같은 인기에 힘입어 2014년 7월 안동역 광장에 ‘안동역에서’ 노래비가 설치돼 제막식을 거행했다. 안동 홍보대사 겸 안동명예시민으로도 위촉될 만큼 그에게 안동, 특히 안동역에서 노래는 남다르다.

고질적인 병폐인 영호남 지역갈등도 진성을 막지 못했다. 그는 전라도 부안 출신이지만 경상도 안동을 주제로 한 노래를 불렀기 때문이다. 

“경상도에서 무대에 올라 전라도 사투리 쓰면서 공연할 수 있는 건 남진 선배와 저밖에 없습니다. 제가 경상도 무대에서 관중에게 전라도 사투리로 물어보면 경상도 할머니들이 웃으면서 어설픈 전라도 사투리로 답을 해오죠. 반대로 제가 경상도 사투리를 쓰기도 합니다. 영호남이 소통하는데 제가 가교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셈이죠.”

전국을 누비며 승승장구하던 그에게 2016년 위기가 불어 닥쳤다. ‘림프종 혈액암’과 ‘심장판막증’ 판정을 받고 7개월동안 입원하며 수술을 받았다. 총 6차례에 걸친 항암치료도 견뎌야만 했다. 첫 번째 항암치료 후 머리카락이 다 빠져 새벽에 홀로 밖으로 나가 밤새 울기도 했다. 영원히 못 일어날까봐 걱정이 돼 잠을 이루지 못했다. 

지쳐서 쪽잠을 자다가 몽유병 환자처럼 넋을 내려놓고 병원을 돌아다니기도 했다. 의료진은 물론 환자들도 가수 진성을 알아보고 위로해줬다. 특히 병원에서 청소하는 환경미화원 아줌마들은 힘을 내라며 매일 바나나우유를 주고 가기도 했다.

이들의 격려를 통해 힘과 희망을 얻은 진성은 완치 개념이 없는 혈액암을 평생 함께 가야할 도반으로 여겼다. 마음을 편하게 먹자 건강상태는 호전돼 갔다. 투병생활을 떨쳐내고 무대에 오르자 친누나, 친이모 같은 마음에서 더 이상 아프지 말라며 선뜻 손가락에서 쌍가락지를 빼내서 건네주는 팬도 만났다. 팬으로부터 쌍가락지 3개나 선물 받은 몇 안 되는 가수인 셈이다.

경기도 고양시 자택 인근 농장에서 농삿일을 하고 있는 진성 씨. 신재호 기자

그는 혈액암이 재발하지 않도록 매일 아침마다 등산하며 농사도 짓는다. 고양시 자택에서 1km 떨어진 곳에 800여 평 규모의 농장에서 20여 가지 채소와 나무를 가꾸고 있다. 공연이 없는 날에는 하루종일 농장에 머문다. 

농사일을 하다가 힘들면 비닐하우스 내 간이 쉼터에서 휴식을 취하는 등 농장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면서 지친 삶을 재충전하고 있다. 마음이 공허할 때마다 불서를 보면서 위안을 찾고 있다고 덧붙였다.

진성은 어릴적부터 자연스럽게 노래를 부르며 컸다. 가정폭력을 겪던 어머니가 가출한 뒤 아버지마저 어머니를 찾아간다며 집을 나갔다. 그가 3살 때 이야기다. 동냥젖을 먹고 이 집, 저 집 친척집을 전전하며 천덕꾸러기로 성장했다. 5세 때부터 무명 홑바지를 입고 들판을 누비며 ‘기러기 아빠’ ‘개나리 처녀’ ‘수덕사 여승’ 등의 노래를 구성지게 불렀다. 

그 노랫가락을 들은 동네 어른들이 ‘뭔 사연이 많길래 저렇게 구슬프게 노래를 부르냐’며 진성을 불러다가 새참을 주거나 용돈을 줬다. 11세 때 외삼촌의 중재로 서울 삼천사 입구 삼천리골에서 어머니와 조우한 뒤 얼마 뒤 아버지와도 함께 살게 됐지만 그마저도 1년 만에 끝나버렸다.

12세 때 또 다시 외톨이가 된 진성은 중국집 배달, 신문팔이 등 도둑질 빼고는 다 해봤다고 털어놨다. 유랑극단에 들어가 허드렛일을 하다가 16세부터 소위 ‘대타 가수’로 무대에 오르기도 했다. 17세 때부터 국일관 등 야간업소에서 노래를 불렀지만 돈벌이가 안 돼 새벽부터 리어카를 끌며 청운동 일대에서 과일을 팔았다. 

매일 아침 시끄럽다는 주민의 민원으로 파출소로 잡혀가길 반복했다. 야간업소 가수의 화려한 입담과 노랫소리에 6개월만에 주민들을 단골손님으로 사로잡기도 했다. ‘어머니 손맛’을 모르고 자란 진성에게 당시 50대 중후반의 한 주민이 정성껏 차려준 소꼬리찜의 맛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고 회고했다.

25세 때 처음으로 트로트 메들리 앨범도 출시했다. 진성은 정상적인 앨범은 15개 발매했지만 수백개의 메들리 테이프가 시중에 나돌았다. 1997년에는 다른 가수의 노래가 아닌 자신의 노래를 담은 ‘님의 등불’로 정식 데뷔한 뒤 ‘사랑은 장난이 아니야’ ‘내가 바보야’ ‘태클을 걸지 마’ ‘님의 사랑’ ‘안동역에서’ ‘잊을 수 없는 영아’ ‘고향’ ‘보릿고개’ ‘가지마’ 등을 잇따라 발매하며 국민가수로 성장했다. 

상당수 노래 가사는 직접 썼다. “가수는 멋이 아니라 깨어있는 혼을 전하는 직업입니다. 멋있다고 아무나 가수를 한다고 해서는 안 됩니다. 예술이라는 게 무서운 줄 알아야 훌륭한 가수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진성은 67~8세까지 노래 부르며 활동한 뒤 5년간 봉사활동에 진력을 다하겠다는 계획이다. 어린 시절 아픔을 겪었던 만큼 보육원 등지를 찾아다니며 꿈과 희망을 선사하고 싶다는 생각에서다. 제반여건이 형성된다면 불교 단체에서 신행생활을 하면서 자원봉사활동도 함께 펼쳐 나가고 싶다는 포부도 밝혔다. 

“제가 산사음악회에 가면 <천수경>이나 <금강경> <반야심경> 독경을 한번씩 하는데 곡조를 타면서 독경을 하니깐 불자님들이 맛깔난다며 정말 좋아해 주세요. 스님 독경 못지않은 독경 실력이지요. 가수 김용임, 박현빈 씨와 전국 콘서트 ‘2019 빅3콘서트’를 여는 것을 비롯해 많은 공연에서 좋은 무대를 선보일 수 있도록 더욱 정진할 것입니다.”

■ 가수 진성은…

1966년 8월 전북 부안에서 태어난 가수 진성 씨의 본명은 ‘진성철’이다. 가정 불화로 어릴적부터 질곡된 삶을 살아야만 했던 진성 씨는 유랑극단을 따라 전국 방방곡곡을 돌며 허드렛일을 맡으면서 틈나는 대로 무대에서 노래를 부르며 가수의 꿈을 키워나갔다.

1992년 ‘님의 등불’로 데뷔한 진성 씨는 ‘내가 바보야’ ‘태클을 걸지 마’ 등으로 ‘고속도로 트로트 메들리 4대천왕’으로서 이름을 알려나갔다. 2008년 만든 ‘안동역에서’가 뒤늦게 히트 치면서 국민가수로 등극했다. 2016년 혈액암으로 투병생활을 겪기도 했지만 안동역에서는 물론 ‘고향’ ‘보릿고개’ ‘가지마’ 등을 잇따라 출시하며 국민가수로서의 자리를 공고히 다져나가고 있다.

지난 2014년 MBC 가요베스트 올해의 노래상을 수상한데 이어 ‘제50회 가수의날 시상식 최우수 전통가요 대상’ ‘2017 KY 스타 어워드 대상’ ‘제16회 대한민국전통가요대상 전통가요상’ 등을 수상했다. 안동시와 영월군, 진안고원트로트페스티벌, 고양경찰서 등의 홍보대사도 맡아왔다.

[불교신문3487호/2019년5월1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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