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마당을 벗어나 어둠을 헤치듯 안개가 가득한 들판을 향해 걷는다. 멀리 바라보이는 울창한 나무들이 인간의 슬픔을 보듬어 안 듯 다소곳이 머리를 숙인 것 같아 나도 화답을 하듯 고개를 숙였다. 밤새 속앓이를 하느라 조금은 겸손해진 것이리라. 

그러나 어젯밤 영선이와 나누던 통화는 여전히 내 머리 속을 어지럽혀서 자꾸만 제자리 걸음을 하는데, 내 발 밑에 아까부터 지네 한 마리가 꿈틀대는 것을 보고 나도 모르게 길을 비켜준다. 벌레가 무섭지 않고 하나의 생물체로 보인다는 것이 스스로도 놀라워 하늘을 우러른다. 동시에 그저 산다는 것은 저 희뿌연 하늘에 두루뭉술하게 걸려 있는 흰 구름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밤새 참담했던 마음이 얼음장 위에 눈 녹아내리듯 스르르 풀어지고 만다.

유끼꼬, 나는 내 엄마 이름을 가만히 불러본다. 내 딸 영선이가 감독으로 데뷔한 70분짜리 예술영화 ‘유끼고’는 작년 가을에 2018년 암스테르담 국제 영화제에 프랑스영화로 출품되었다. 비록 수상은 못했지만 지금은 유수한 국제영화제에서 러브콜을 받는 중이라고, 그 중에 한국에서도 초청을 받았다는 소식에 나는 한껏 들떴는데, 영선이는 침울한 목소리로 자신이 없다고 하더니, 그 이유가 엄마 때문이란다. 다시 엄마를 부르더니 어려서부터 엄마가 트라우마였다고 울먹였다.

나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아 숨까지 멈췄는데, 그 애는 고해성사를 하듯 줄줄이 풀어냈다. 친구 집에 놀러 가면 영선이라고 소개하지 않고, 내 친군데 엄마가 소설가라고 했고, 심지어 교내 글짓기대회에서 상을 탔는데도, 넌 엄마가 소설가여서 좋겠다는 말로 자기가 받은 상이 엄마 몫이 돼버렸다고. 

그래서 늘 엄마의 그늘에서 살고 있다는 생각 때문에 엄마 곁을 떠나자고 유학을 결심했었단다.

나는 눈앞이 캄캄했다. 철렁 내려앉은 가슴을 수습하기도 전에 영선이가 먼저 음울한 목소리로 엄마를 불렀다. 그리고 영화제에 나가면 감독과 주인공이 나란히 무대에 올라 함께 인사를 하는데, 자기는 그럴 수 없어서 속상하단다. 엄마가 강화로 이사하면서 이제는 아무것도 안하겠다고 해서 엄마이야기를 영화로 만들었는데. 엄마는 다시 소설을 발표했다고, 엄마가 소설가라는 걸 사람들이 알게 되면 자기를 어떻게 생각할지, 아마 예술가로서의 진정성을 의심할 거라고, 어쩌면 관객을 기만했다고 비난을 받게 될까봐 두렵다고, 더구나 엄마의 과거를 세상에 알리는 딸이 돼버렸으니 엄마에게 죄인이 된 기분이라며 흐느끼는데, 나로서는 어안이 벙벙할 뿐이었다. 

갑자기 머리가 혼란스럽고 정말 죄인이 된 기분이었다. 더 놀라운 사실은 외할머니 이야기를 영화로 만든 것은 엄마와 화해를 하고 싶어서, 엄마에게 보상심리를 만들어 주고 싶어서 제목도 외할머니 이름으로 정했다는데 나는 할 말이 없었다. 그러나 무슨 말로든 딸에게 사죄하고 싶었다. 그래서 내가 유관순을 쓴 것은 외할머니가 일본인이라는 사실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일이라는 말로 마무리를 하고 전화를 끊었지만, 내 마음속은 그 부분에서 뜨끔했었다.

나 역시 내 엄마가 트라우마였기 때문이다. 특히 삼일절과 광복절은 학교에도 가지 않고 방안에 틀어박혀 죄인처럼 숨어 지냈다. 그런 내 과거를 알고 있는 딸이 ‘왜 유관순이냐’고 물었을 때, 나는 그 순간 머릿속이 환해졌다. 어쩌면 그 보상심리가 나에게 유관순을 쓰게 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날이 밝으면서 여린 햇살이 어둠 같은 안개를 걷어내고 있었다. 나는 내 딸 이름을 부른다. 영선아, 우리 인간은 어느 누구도 슬픔을 비켜가지는 못한단다. 그러나 언젠가는 안개처럼 그 슬픔도 사라져버리지. 나는 그래서 그 슬픔을 놓지 않으려고 애쓰는지도 몰라, 그 슬픔이 없다면 이 세상은 너무나 삭막할 테니까….

[불교신문3486호/2019년5월8일자]

안혜숙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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