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 불화] <7> 베제클릭석굴사원 마니교 벽화
[동아시아 불화] <7> 베제클릭석굴사원 마니교 벽화
  • 김정희 원광대 고고미술사학과 교수
  • 승인 2019.05.06 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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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크로드서 번성했지만 지금은 잊혀진 마니교 ‘생생’
베제클릭 석굴사원 38굴 중앙벽. 세 그루의 나무를 중심으로 12인의 인물이 그려진 벽화다.

90년대 일본인 위구르 명문 해독 
38굴의 정면벽화 박락 매우 심해

생명수 중심으로 좌우 12명 그려
마주 앉은 남녀 무릎 꿇고 ‘공양’

이외에도 마니교 석굴 18개 존재
불교로 개종한 위구르인의 융합성

아름다운 벽화로 장식된 베제클릭 석굴사원에 가면 특이한 석굴이 하나 있다. 바로 38굴이다. 암벽을 깎아서 만든 이 석굴은 석굴 안에 또 하나의 다른 굴이 있는 이중굴로 이루어져 있는데, 특이한 점은 석굴의 내부 벽이 온통 흰색으로 칠해져 있다는 점이다. 벽의 표면은 울퉁불퉁하고 마무리가 깔끔하지는 않지만, 벽에는 흰색의 칠이 엷게 칠해져 있는 게 눈길을 끈다.

또 이 석굴의 정면 벽에는 화면 중앙에 있는 세 그루의 나무를 중심으로 12인의 인물이 그려진 벽화가 그려져 있어, 석가모니의 전생이야기를 주제로 한 서원화나 천불도, 열반도 등으로 장엄된 다른 석굴과는 사뭇 달라 보인다. 

이 석굴은 1990년대 초반에 일본의 보리아츠 다카오(森安夫)가 석굴 안에 있는 위구르 명문을 해독하여 마니교 석굴임이 밝혀졌다. 불교사원으로 알려진 베제클릭 석굴사원에 마니교 석굴이라니 무척이나 흥미롭다. 하긴 투르판에 정착한 위구르인들이 마니교를 신봉했던 사실을 떠올리면 베제클릭 석굴사원에 마니교 석굴이 있다는 것은 그리 놀랄 일은 아니다. 

38굴의 정면벽화는 박락(剝落) 이 매우 심한 편인데, 화면 중앙에는 세 그루의 나무를 중심으로 좌우에 각각 6명씩 총 12명의 인물들이 무릎을 꿇거나 서서 나무를 향해 합장하고 있다. 세 그루의 나무는 연꽃대좌 속 화염보주와 포도송이로 장식되었는데, 줄줄이 달려있는 포도송이를 보니 투르판의 특산물인 포도가 떠오른다.

이 세 그루의 나무는, 마니교 경전 중 하나인 <거인(巨人)의 서(書)>에 ‘선(善)의 근원으로 빛의 왕국을 상징하는 생명의 나무가 동, 서, 북의 세 방향으로 뻗어나간다’고 기록되어 있는, 바로 그 생명수(生命樹)이다. 환웅이 풍백, 우사, 운사를 거느리고 그 아래로 내려왔다는 단군신화 속 신단수(神壇樹)나 석가모니가 깨우침을 얻은 보리수처럼, 생명수는 마니교에서 성스런 나무이자 교주 마니를 상징했다고 한다. 

마니교 벽화.

나무 앞에는 커다란 공작 두 마리가 서로 반대방향을 향하고 있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공작은 목까지만 표현되었는데, 석굴사원에 공작이라니 뭔가 생소한 느낌이 든다. 그런데 공작 그림의 주변에는 ‘공작새의 모습과 같이, 나 Svita가 썼다. 죄가 없기를 … 보호받기를!’이라는 위구르 명문이 적혀있어, 이 새가 공작새임을 분명하게 해준다. 마니교에서 공작새는 생명수 아래서 노니는 존재로 알려져 있으며, 이 벽화 외에 다른 그림에서도 종종 발견된다. 

이 벽화에서 가장 흥미로운 것은 생명수를 중심으로 좌우에 그려진 12명의 인물들이다. 나무의 좌우 모두 앞줄에는 4명의 인물이 무릎을 꿇고 앉아있고 그 뒤에는 각각 두 명의 인물이 서 있다. 나무의 왼쪽 아래 줄에는 갑옷을 입고 조관(鳥冠)을 쓴 남성과 머리는 박락되었으나 가슴 앞에 두 손을 모은 인물과 그와 유사한 자세를 하고 있는 코끼리 얼굴의 가네샤, 뾰족한 장식이 달린 투구를 쓴 남성이 있고, 뒷줄에는 보관을 쓴 인물과 상투를 틀어 올린 인물이 서 있다.

또 나무 오른쪽 앞줄에는 조관을 쓴 여인, 긴 수염과 날개가 있는 남성, 화려한 옷에 흰색의 높은 모자를 쓴 인물, 붉은 두건을 두르고 연봉 형태의 모자를 쓰고 있는 여성이 있으며, 뒷줄에는 날개 달린 옷을 입은 남성과 고사리 모양의 장식이 달린 화려한 보관을 쓴 여성이 서 있다. 

12명의 인물 가운데 생명수를 사이에 두고 조관을 쓰고 마주 앉은 남녀는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모으고 있는 모습이 공양자처럼 보인다. 남자는 갑옷에 귀걸이를 한 무사형(武士形)이며, 하고자는 소매통이 넓은 치마를 입고 있는데 둘 다 조관을 쓴 점이 특이하다. 이들 남녀 뒤쪽에 표현된 인물들은 모두 무릎을 꿇고 두 손을 공손하게 모으고 서있는 모습이 마치 이들을 따르거나 수호하는 것처럼 보인다.

12명의 인물이 누구인지는 확실치 않지만 다행스럽게도 그림 옆에는 “이것은 수호령(守護靈)들의 모임이다.” “(그들이) 보호받기를!”, ”하찮은 내가 모셨다. 평안하시길...내 죄를 용서하시길..“ 등의 명문이 남아있어, 10명의 수호령(守護靈)이 나무를 사이에 두고 조관을 쓰고 앉아있는 공양자 부부를 수호하는 장면임을 짐작케 한다. 

일부 학자들은 마니교 그림에서는 갑옷을 입고 조관을 쓴 예는 발견되지 않아서 조관을 쓴 남녀는 죽은 사람을 표현한 것으로 보기도 한다. 명문 중 ‘평안하시길’이라는 내용 또한 이들이 망자임을 짐작케 한다. 여러 가지를 종합해 볼 때 이 석굴은 수호령들이 죽은 무사 부부의 영혼을 지켜주길 바라며 조영된 것으로 추정된다.

베제클릭 석굴사원에는 이외에도 마니교 석굴이 18개나 있다고 한다. 베제클릭 석굴사원에 남아있는 석굴이 모두 83개인 것을 생각하면 거의 4분의 1에 속하는 숫자이다. 그러나 38호굴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간단한 선이나 명문이 일부 남아있을 뿐 벽화는 거의 남아있지 않다. 

마니교 벽화.

반면, 투르판에서는 마니교의 경전화(經典畵)와 번화(幡畵) 등도 발견되고 있어 주목된다. 경전화는 경전의 삽도가 대부분이긴 하지만 세밀한 필치로 인물과 꽃, 다양한 문양들이 그려져 있어 회화의 수준이 상당했음을 짐작케 한다.

포도가 주렁주렁 달린 생명수 아래에서 경전을 읽고 있는 인물들은 흰옷에 흰 모자를 쓰고 있으며, 화려한 보관을 쓴 인물 뒤를 따르는 사람들 역시 흰 옷에 흰모자를 쓰고 있어, 38굴의 생명수와 흰 벽을 떠올리게 한다.

얼굴에 수염이 더부룩하며 길게 머리를 기른 모습은 서원화 속의 위구르인들과 비슷하다. 사원에 걸려있던 것으로 추정되는 번화는 불교번과도 유사하여, 투르판에 정착하면서 불교도로 개종했던 위구르인들의 종교적 융합성을 보여준다. 

이렇듯 베제클릭석굴사원의 벽화와 경전화 등을 남긴 마니교는 어떤 종교였으며 어떤 교리를 갖고 있었을까 자못 궁금하다. 마니교는 페르시아출생의 마니(Mani, 216~277)가 3세기 전반에 창시한 고대 종교로서, 그리스도교의 일파인 메소포타미아의 그노시스(Gnosticism, 영지주의)를 중심으로 조로아스터교, 유대교 등의 사상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마니교는 인간의 역사에서는 선과 악의 투쟁이 계속하여 발생하며 이 과정을 통해 선이 그 대립물인 악을 극복하고 마침내 빛의 세계로 되돌아간다는 이원론을 기본교의로 하고 있는데, 동쪽으로는 중국, 서쪽으로는 로마 제국까지 전파되어 3세기부터 15세기까지 약 1300여 년간 지속되었다. 

몽골고원에 살던 위구르인들은 8세기 중엽경 마니교를 수용하여 적극적으로 후원하였다. 그러나, 키르키즈에 의해 840년에 동위구르가 붕괴된 이후 위구르족의 일부는 투르판으로 남하하여 866년 이곳에 천산위구르 왕국을 세웠다. 이때 위구르왕국의 마니교도들도 위구르왕조를 따라 투르판으로 와서 새로운 거점을 마련하게 되었으며, 이에 따라 투르판에서는 마니교가 성행하게 되었다.

위구르왕국은 투르판 남하 후 국씨고창국 때 개착된 무르툭 계곡의 베제클릭석굴사원을 크게 중수하여 왕가의 사원으로 삼았는데, 이곳에는 불교석굴 뿐 아니라 위구르인들이 신앙했던 마니교 석굴도 다수 조성되었다. 현재 베제클릭 석굴사원에 남아있는 마니교 석굴의 벽화는 안타깝게도 대부분 없어졌지만, 그 가운데 벽화가 비교적 잘 남아 있는 석굴이 바로 38굴이라고 할 수 있다.

19세기 말~20세기 초 각국에서 파견된 중앙아시아 탐사대들은 베제클릭석굴사원에서 서로 경쟁하듯 벽화를 마구 절취해 갔다. 특히 독일 투르판탐험대는 상당량의 벽화를 절취해갔으며, 영국, 러시아, 일본 등에도 보내졌다. 그러나 마니교 석굴이었던 38굴에는 다행스럽게도 벽화가 남아있어, 실크로드에서 번성했던, 그러나 지금은 잊혀진 마니교의 모습을 잘 전해주고 있다. 

38호굴 서벽의 그림.

[불교신문3486호/2019년5월8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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