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순례를 갔을 때다. 기원정사 천축선원에 있다가 북인도 ‘코사니’에 가기 위해 ‘곤다’역에서 ‘카타고담’행 기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대합실에서 파는 토스트와 ‘짜이’로 저녁을 먹었다. 그런데 도착시간이 되어도 기차는 오질 않았다. 인도니까 좀 늦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 여기며 짜이를 한 잔 더 시켜 먹었다. 한 시간 두 시간,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점점 답답하고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옆에 있는 사람에게 티켓을 보여주며 이 기차는 왜 안 오는지 모르겠다며 하소연을 했다. 그 사람이 유심히 티켓을 보더니 “No Problem”을 외치며 좀 더 기다리라는 것이었다. 

세 시간을 기다리다가 결국 역 사무실로 들어갔다. 왜냐하면 나는 도착역에 사람이 나와 기다리기로 약속이 되어있어, 기차가 연착되면 연락처도 모르는 그 사람이 돌아 갈까봐 불안했던 것이다. 기차표를 보여주며 항의를 했다. “왜 지금까지 이 기차가 오질 않느냐?” 하니 역무원은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면서 좀 기다리면 온다고 했다. 그래도 화가 덜 풀려서 “도대체 언제 온단 말이냐?” 하면서 “Problem” 을 외쳤다. 

역무원은 안색하나 안 바꾸고 대답했다. “당신이 타고 갈 기차는 제 시간에 출발해서 열심히 오고 있다. 다만, 오는 도중 사정이 생겨 이렇게 늦는 것이다. 저 밖에 있는 많은 사람들도 그 기차를 기다리고 있다. 모두 아무 말 없이 잘 기다리고 있다. 무엇이 문제냐? 오직 문제 제기를 하고 있는 당신이 더 큰 문제(Big Problem)”라고 했다. 순간 뒤통수를 한 방 맞은 듯이 정신이 번쩍 들었다. 

대륙의 수많은 역을 지나오며 이런저런 사정으로 조금씩만 지체가 되어도, 몇 시간쯤 늦는 것은 있을 수 있는 일이다. 최선을 다해서 오고 있는 기차를 내 입장만 생각해서 화를 낸 것이다. 어리석은 사람은 결과만 보고 화를 내지만 지혜로운 사람은 그 일이 있게 된 원인을 살핀다. 삶에는 늘 그럴만한 이유가 존재한다. 

[불교신문3485호/2019년5월4일자]

동은스님 삼척 천은사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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